중세 교회의 여성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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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중세 교회의 여성관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중세 교회의 여성관
- 목 차 -
서론
본론
Ⅰ. 중세 초기의 여성관
Ⅱ. 중세 후기의 여성관
Ⅲ. 중세 여성의 지위와 생활
결론
서론
313년 기독교가 공식적으로 허용되었을 때, 기독교 내에서 여성의 위치는 자명했다. 그들에게 아담의 갈비뼈로 만들어진 이브는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에 불과했다. 또한 이브는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나쁜 뱀의 유혹에 빠져 남자에게 열매를 건네었기 때문에, 여성은 유혹자였으며, 죄의 근원이었다. 결국 여성은 인간에게 하나님의 저주를 가져왔고 그들의 사랑은 천박한 욕망이었으며, 그들의 자식은 원죄로 묶여있었다. 또한 사악하고 경멸스러우며, 음탕하고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였다.
여성에 대한 이러한 부정적 관념은 그들의 순수한 발명품은 아니었다. 중세인들이 물려받은 로마사회, 게르만사회에서도 사회에서 여성의 위치는 열등한 것이었다. 교회에 맡겨진 역할은 단지 새롭게 형성되기 시작한 여성의 역할과 지위에 대해 이론적으로 설명하는 일이었다. 여성들은 당시 사회를 좌지우지한 종교적 우두머리 권한 하에 종속되었다. 그리고 교회는 여성을 무엇보다도 이브로서, 즉 사악하며 열등한 존재로 규정함으로써 여성의 낮은 지위를 합리화했다.
여성의 본질과 본령에 대한 이데올로기는 중세 교회의 대변자이면서 동시에 로마제국 멸망에서부터 종교개혁에 이르기까지 지적 영역을 주도했던 성직자들에 의해 형성되었다. 역설적이게도 그들은 대다수 여성의 삶에는 가장 무지했던 사람들이었다. 중세 교회의 특성상 대부분의 성직자들은 여성에 대한 ‘경험’이 적었다. 특히 기독교 사회에 강한 호소력을 가졌던 덕망 높은 성직자일수록, 어린 나이에 청원자로서 교단에 입회하거나 성직자의 길을 걸었기 때문에 그가 기억하고 있는 유일한 여인은 어머니였다.
결국 여성에 대한 무지와 경우에 따라서는 인간 접촉에 대한 공포감, 특히 여성과의 교류가 성적 접촉 내지는 성적 상상력을 유발 시킬 수 있다는 두려움은 결국 성직자가 여성들을 의도적으로 회피하는 현상을 초래하였다. 이러한 그들의 목소리는 교서, 교훈서, 문학작품, 법전 속에서 새겨지고, 여성 삶의 모든 영역에 파고들었다.
본론
Ⅰ. 중세 초기의 여성관
여성의 대한 인식은 교회사의 초기 단계에 예수의 가르침이 아니라 사도 바울의 가르침을 그 뿌리로 해서 교부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바울은 낙원에서 속아서 죄를 짓게 된 것은 아담이 아니라 이브였으므로 원죄의 장본인은 이브라고 생각했다. 즉 이브(여성)는 인간의 타락 과정에서 육체의 죄인 유혹을 대표하며, 이 세상에 악을 가져온 악의 도구라는 것이다. 바울은 그 같은 관념에 기초해서 여성의 예배집권권리를 부정하고, 남성에 대한 여성의 예속을 당연시했다.
중세는 기독교가 지배하는 사회이므로 이러한 바울의 가르침을 따른 교부들의 여성관은 중세 내내 중요한 이론적 토대가 되었고, 후대의 신학자들은 이를 그들의 학문적 자양분으로 받아들였다. 중세인은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항시 ‘권위’있는 옛 것에 의존하려 하였고, 그 결과 성경과 교부들의 저서는 지식의 원천으로 여겨졌다. 특히 교부들의 권위적 해석은 법률이나 교황칙령과 동등한 효력을 지닌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교부들의 여성관은 중세 성직자들에게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이런 이유로 여성의 해악성을 강조하여만 했던 상당수의 중세 성직자들은 ‘늑대와 같은 존재들’을 가급적 멀리 쫓아 버리기 위해서 권위적인 교부의 문구를 인용하기 시작했다.
2세기 교부인 테르틀리아누스는 이브를 표현하는데 여성 혐오사상을 강력하게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