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인간 커뮤니케이션 -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읽고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읽고.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김봉규)는 나에게 너무나도 어려운 책이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굉장히 재미있는 책이었다. 만남-10차원의 행복 에서는 행복에 대해서 다양한 조명을 했다면, 이 책은 죽음에 관한 책이었다. 사실 이전까지만 해도 죽음이란 개념을 평소에 생각해 보기 쉽지 않았다. 나는 겨우 22살 밖에 되지 않았고, 상을 당하거나 주변에서 죽음이라는 소식을 접해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은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세월호 사건, 메르스, 각종 사건 사고들, 안전의식불감증. 이 일련의 단어들은 일반인에게 죽음의 공포를 불러 일으켰다. 나 또한 불안감을 느꼈다. 그리고 사회에서는 죽기 전에 잘하자 죽으면 아무것도 없다 등등 죽음을 상기시키는 말들이 자주 등장하곤 했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나 역시 ‘그래 살아있는 동안 잘하자’, ‘죽으면 무슨 소용이냐’, ‘더 열심히 살자’ 등등의 각오를 했었다. 그런데 책에서는 죽음은 소멸이 아닌 변화라고 말한다. 무슨 뜻일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죽으면 어차피 다 끝 아닌가? 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리고 책을 읽고 불완전하게나마 그 말의 뜻을 천천히 이해해 갔다.
수능을 공부하면서 자주 들었던 말이 있었다. 오늘을 소중히 여기자 오늘은 어제 죽은 누군가가 간절히 원했던 하루다. 간단히 말하면 공부를 열심히 하라! 라는 말이었다. 과연 어제 죽은 이는 오늘을 그토록 갈망했을까? 저 말에 의하면 나는 누군가 그토록 원하던 하루를 가졌으니 하루를 가치 있게 보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나도 내일 죽으면 어떻게 하지? 라는 생각 속에 오늘을 더 알차게 보내자! 라며 미래를 준비했다.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데 오늘 왜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가? 참 아이러니 하다. 내가 이해한 바도 이와 약간 비슷했다. 죽음에 취한 사람들은 죽음이 두려워 죽기 전에 뭔가 하나라도 더 성취하고 죽으려고 한다. 죽음에 맹목적인 의미를 두고 죽음을 회피하고 살아있는 동안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려는 것이다. 삶의 목표가 죽음이 되는 순간이다. 삶의 가치는 죽음이 아닌 삶의 한 가운데에서 발견되어야 한다고 이 책에 써져 있다. 맞는 말이다. 죽음을 생각하며 내 삶의 가치를 발견하게 되면 내 삶의 가치는 죽음이 되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죽음은 나의 삶을 위해 존재하는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독립된 실존적 사건으로 존재해야 한다.
특히 감명 깊게 본 파트가 있다. 이데올로기의 죽음이다. 최근에 홍콩의 우산혁명에 대한 언론사별 논조에 대해서 분석한 적이 있었다. 단순 호기심으로 시작한 분석에서 다소 논리의 비약이라고 할 순 있지만 놀라운 점을 발견했다. 현재 정부에 친정부적인 성향을 띄는 언론사(소위 말하는 조.중.동)와 친정부적이지 않은 성향의 언론사(한겨레, 경향신문)의 논조 차이었다. 우산 혁명은 지난 2014년에 홍콩이 반중국을 외치며, 그들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관철시키기 위한 평화 시위였다. 우리나라는 민주국가로서 홍콩의 민주화에 대해서 대중을 대표하는 언론사라면 지지성명을 펼쳐야 맞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당시, 시진핑 주석의 내한 등 한국 정부는 열렬한 친중 정책을 펼치고 있었다. 그런 이유였을까 친정부 성향의 언론사에서는 우산혁명에 대해서 한계점 지적과 경제적 손실 예측 보도를 계속해서 펼쳐냈다. 반대로 친정부적이지 않은 언론사에서는 그런 친정부적 언론사를 비웃는 듯이 민주화에 대한 적극적지지 성명 기사를 쏟아냈다. 우스운 일이었다. 지난 1960년대부터 우리 할아버지 아버지 들이 그렇게 외쳐왔던 민주주의가 지금에 와서는 실리에 맞게 나몰라라가 되었고, 상대방을 공격하는 도구가 되었다. 물론 열려있다는 것이 민주주의의 대표적인 사상이긴 하지만, 대중을 선동하는 언론지에서 표면적으로 그것을 드러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데올로기의 죽음은 상생, 공존과 평화, 정의 모든 것들의 근본적 동기가 인간의 이익추구라는 것에서 비롯된다. 아무리 합리적 이기주의라는 말을 갖다 붙여도 이기주의의 본질은 사라지지 않는다. 나 또한 역시 나에게 이익의 되는 사회를 원하고 있을 뿐이지 진정 정의로운 사회를 원하고 있지 않다. 우리 사회에서 죽음은 생명의 죽음 뿐만 아니라 가치의 죽음, 의미의 죽음, 인격의 죽음 등등 다양한 죽음이 존재한다. 너무나도 많은 것들이 죽어있기 때문에, 인간은 어쩌면 살아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더 살아있음을 느끼려고 죽음에 취해 살아가는 것일 수도 있다. 이때 죽음에 취한 것과 취하지 않은 것의 차이점은 아마 죽음에 대한 사유가 살아있는 사유인가 혹은 죽음을 쫓는 사유인가인 것 같다. 이 책에는 그 방법이 제시되어있다. 지금까지 간직해온 죽음의 개념을 버려야 한다. 첫째, 살아있음과 죽어있음의 개념을 단순한 이분법으로 구분해서는 안된다. 둘째 죽음의 개념은 다의적이다. 셋째 생명은 선이고 죽음은 악이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야한다. 넷째 심장의 멈춤만이 죽음이 아니다. 하나 하나가 주옥같은 말들이다. 내가 내 삶을 살아감에 있어서 위의 4가지 단계를 지키고 살아간다면 나는 죽음이 위한 삶이 아닌 삶을 위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어제 죽은 사람이 오늘을 간절히 원했을까? 라는 질문에 나는 No 라는 대답을 하게 되었다. 내가 만약 어제 죽은 사람이었다면 새로운 뭔가를 추구하려는 오늘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또 하나의 가치로 받아들이고 죽음에 대한 호기심과 함께 잠들었을 것이다. 내 인생은 죽음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기에 다시 죽음의 공포로 돌아갈 필요가 없다. 죽음은 죽음이고 내 삶을 내 삶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죽음과 함께 내 삶은 또 새롭게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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