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나 를 찾아 떠나는 여행 행복으로 안내하는 지도
- 행복으로 안내하는 지도 -
1. 책의 목적
서론에서 밝힌 이 책의 목적은 “죽음의 진실을 깨달아 그 죽음에서 죽음으로써 다시 생명으로 살아나는 데 있다.” 겉으로 표현된 문장만 보면,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지, 죽음으로 어떻게 생명을 살린다는 거야??’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책을 읽을수록, 죽음에도 여러 죽음이 있으며, 내가 알고 있던 죽음이 진짜 죽음이 아니고, 내가 알고 있던 생명이 진짜 생명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부끄럽기도 하고, 한편으론 정곡을 찔린 것 같아 놀란 적도 있었는데, 책에서 나오는 ‘죽음에 취한 사람들’의 모습과 나의 모습이 흡사했기 때문이다. 아니 나가 ‘죽음에 취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한번 읽어서는 책의 내용이 마음 속 깊이 다가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기가 알고 있던 진실들이 이 책에서는 거짓이며, 내가 행복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행복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책의 목적대로 “죽음의 진실을 깨달아 그 죽음에서 죽음으로써 다시 생명으로 살아나”기 위해서는 이번 여행을 통해 ‘삭제 게임’을 하고, ‘죽음에 취한 자’가 아니라, ‘죽음을 취함’으로, ‘생명에 취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
2. 죽음에 취한 사람들
이 책에서는 죽음에 취한 사람들을 10개의 차원에서 보고 있다. 첫 번째는 ‘나(정체성)’의 관점, 두 번째는 행복의 관점, 세 번째는 몸의 관점, 네 번째는 향유의 관점, 다섯 번째는 관계의 관점, 여섯 번째는 인격의 관점, 일곱 번째는 이데올로기의 관점, 여덟 번째는 존재의 관점, 아홉 번째는 의미의 관점, 열 번째는 역사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우선 첫 번째로 ‘나(정체성)’의 관점에서, 우리가 ‘나’라고 생각하는 주체에 대해서 질문을 던진다. 평소에 나는 ‘나’는 무엇일까? 에 대해 막연하게, ‘나는 25살이고, 남자이며, 군대도 다녀왔고, 사람만나는 거 좋아하고, 고2때 크게 다친 적이 있는데 뭐 지금은 괜찮아, 이정도면 뭐 괜찮지?’ 이런 식으로 ‘나’를 정의했다. 하지만 책에 나온 바에 따르면, 이것은 경험의 덩어리지 진정한 ‘나’가 아니다. 그렇다면 세포와 세포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고차원의 생명체가 ‘나’인가? 이것 또한 ‘나’가 아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나’, 이 생각을 가능케 하는 뇌가 ‘나’인가? 이것도한 ‘나’가 아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나’란 무엇인가!!!! 책에서는
몸의 시각으로서 ‘나’도 아니고, 마음의 시각으로서 ‘나’도 아닌, 바로 ‘나’가 진정한 ‘나’이다. ‘나’는 우리의 몸 안 어디인가에 있는데, 보이진 않는다. 물질이 아닌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영’밖에 없다. 따라서 경험적 나가 아닌 ‘참나’, 그 ‘나’는 영이다.
다음으로 행복의 관점에서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행복이 행복이 아니라 행복감이라는 짝퉁 행복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행복감은 ‘내가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다. 행복감은 ‘대상이 나로 하여금 행복감을 느끼도록 만드는 것’이다. 행복감은 늘 사람을 굶주리게 하고, 그래서 필연적으로 인간을 행복감의 중독으로 이끈다. 행복감은 또한 이기적이다. 행복감을 행복의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되는 이유는 그것이 당신 삶 전체를 무의미한 것으로 변질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맞다. 나는 이 책의 말대로 행복감을 행복인 것으로 착각해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면, 기뻐하고 이루지 못하면, 분노하고 슬퍼했다. 하지만 진정한 행복이 아닌 행복감을 쫓은 사실은 불행하기 그지없었다.
다음으로 몸의 관점에서, 여기서 말하는 몸의 죽음은 단순한 심장사가 아니다. 몸의 죽음이란 내가 나의 주권을 포기하고 나의 마음을 몸을 위해 봉사할 때, 나의 행복이 행복감으로 전락해버릴 때, 그때 몸은 가장 살아나고 그때 몸은 그렇게 죽는다. 즉 우리의 뿌리가 ‘나’가 아닌 몸으로 향해있을 때, 마음과 ‘나’는 몸에 의해서만 초점을 맞추고, 짝퉁 행복인 행복감만을 좋게 된다고 한다. 가장 정곡을 찔려 가슴이 아팠던 부분이다. ‘나’는 몸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남을 위해 봉사를 한 것도 결국 나의 이기심 때문이었으며, 부모님의 말을 잘 듣고 효를 실천하자고 다짐한 것도 결국에는 나의 이기심에서 온 것 이었다. 여기서 오는 만족감을 행복으로 착각하고 내심 뿌듯해했다. 한편 이 부분에서 흥미로웠던 것은 뇌사에 대한 이야기였다. 현대의학에서 뇌사를 죽음으로 정의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많은데, 이는 생명을 인간 전체의 맥락에서 이해하지 못하고 부분을 전체로 확대해석한 오류의 결과다. 인간은 영과 혼과 몸의 전체적 존재다. 만약 뇌사자가 죽음을 향한 삶의 마지막 단계가 맞다면, 그에게 영혼은 아직 함께 있다. 결국 뇌사는 다양성과 창의성이 이기주의적 욕망과 결합할 때 초래할 수 있는 결과를 감각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저번 수업시간에 뇌사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봤다. 뇌사를 통해 생명과 죽음의 경계선에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그 중에서 눈이 띄는 환자는 팸이라는 환자였는데, 그녀는 의학적으로 죽어있는 상태에서, 수술도구의 모양새와, 집도의들의 대화내용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이는 단편적인 예이지만, 우리의 몸이 전부가 아니라 영이 있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