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타고라스 프로타고라스 줄거리 프로타고라스 독후감 프로타고라스 느낀점
플라톤(Platon) 지음/최 현 옮김
내용 요약
는 플라톤의 의 하나로 소크라테스가 프로타고라스와 지, 덕, 선에 대해 펼친 논쟁이 서술되어 있다. 프로타고라스는 당시 유명한 소피스트로 스스로를 부유한 청년들에게 민주정치하의 폴리스에서 유용한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길을 깨우쳐주는 덕의 교사 라 칭했으며 사상적으로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영향을 받아 ‘만물의 척도는 인간이다.’라는 주관적 상대주의를 역설한 인물이다.
책을 살펴보자. 책의 시작은 힙포크라테스가 새벽에 소크라테스를 찾아 가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부유한 집안의 자식인 힙보크라테스는 프로타고라스가 자신의 도시에 온 것을 알고 전 재산을 다 주어서라도 그의 가르침을 받기를 원했고, 그 길의 동행을 소크라테스에게 요청한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그런데 자네는 그가 어떤 인물이라고 알고 있는가? 그리고 찾아가는 목적은 무엇인가? 자네는 대체 무엇이 되기 위해 프로타고라스를 찾아가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이를 통해 힙포크라테스의 조급함을 일깨워주고 “소피스트란 대개 영혼의 양식인 학문을 마치 상품처럼 파는 자”라는 자신의 견해를 약간 피력한다. 이런 대화 후 소크라테스는 프로타고라스를 만난다. 소크라테스는 프로타고라스에게도 질문을 던진다. “힙포크라테스가 당신의 가르침을 받는다면 어떠한 성과를 거둘 수 있는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기를 바랍니다.”이에 프로타고라스는 “만일 그가 나에게서 학문을 배운다면, 그는 배운 당일부터 배우기 전날보다 훨씬 슬기로운 사람이 되어 집으로 돌아갈 걸세. 다음날도 마찬가지가 될 걸세. 따라서 그는 하루하루 발전하여 더욱 훌륭한 사람이 될 걸세.”라고 말하고 이에 또다시 소크라테스는 “어떤 면에서 더 뛰어나게 되며 무엇이 발전한다는 말씀입니까?”묻고, “그것은 바로 자기 집안을 올바로 다스리는 것이고 공공적인 일을 처리하거나 논하는 데 있어서는 물론이고 그 밖에도 유능하고 실력이 있는 사람이 되도록 익혀주는 것이라고 하겠네.” 라는 대답을 얻는다. 이 대화 직후에 내가 생각하기에 이 책에서 중요시 다루는 쟁점 중 한가지인 덕은 교육 될 수 있는 것 인가? 라는 쟁점이 나온다. 소크라테스는 “다른 사람에게 덕을 가르치기란 어렵다고 생각하였습니다.”라고 묻고 이에 프로타고라스는 신화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은 국가의 성립을 위해 이미 덕을 내제하고 있다고 말하며, 또 다른 방법으로는 징계의 예를 들어 “징계의 목적은 오직 미래에 두고 있다네. 징계를 받는 사람이나 징계를 하는 사람이 또다시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지 않겠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을 볼 때, 덕이란 가르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네. “ 이러한 이유라며 대답한다. 또 “왜 자기 자녀를 다른 사람들보다 더 뛰어난 사람으로 만들지 못하는가?”라는 질문에는 “사실 모든 사람들은 자기 나름대로 남에게 덕을 가르치고 있네. 훌륭한 사람의 자식도 보잘것없는 사람이 될 수 있고, 보잘것없는 사람의 자식도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네.”라고 대답한다. 덕을 교육될 수 있다, 라는 프로타고라스의 주장은 소크라테스도 일정 부분 수용하며 이 쟁점은 마무리 지어진다. 허나 소크라테스는 덕의 형태에 관해서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덕이란 하나이면서도 동시에 덕을 구성하는 여러 가지 부분이 있어서 정의라든지 절제라든지 경건이라는 것이 제각기 구분되는 것인지? 아니면 방금 말씀드린 모든 덕은 오직 하나이지만 여러 가지 이름이 붙게 되는 것인지?”라고 말이다. 이에 프로타고라스는 덕의 요소인 지혜, 절제, 정의, 분별, 용기는 얼굴의 요소인 눈 코 입과 같은 요소라고 말한다. 이를 소크라테스는 덕의 요소인 분별과 지혜 관계를 질문의 형식으로 반박한다. 질문을 통해 지혜와 분별이 다름과 반대되는 요소는 한 가지만 있음에 동의를 얻고, 지혜의 반대는 무분별, 무분별의 반대는 분별임을 통해 위에 가정에 모순을 찾아내는 방법으로 말이다. 이에 프로타고라스는 토론의 골자를 벋어나 장황한 말을 하며 불쾌한 내색을 표시한다. 이 때문에 토론이 끝날 듯 하나 주변의 성화로 다시 이야기를 시작한다. 새로 전개 되는 토론은 한 시인의 시를 가지고 나눈 대화이나 내가 생각한 이 책의 쟁점(덕은 무엇인가? 교육 될 수 있는 것인가? 덕의 요소인 지혜, 절제, 정의, 분별, 용기는 부분인가 하나인가? 덕과 용기와 지식의 관계? 등등)과는 다른 부분인 듯 하여 생략한다. 소크라테스도 또한 이 논쟁을 끝내고 본래의 논쟁으로 돌아가길 바라면서 덕의 요소의 관계에 대해 다시 질문을 한다. 이에 프로타고라스는 “그 다섯 가지는 덕의 부분을 이루는 것으로서 그 속의 네 가지는 비슷한 것이지만, 단지 용기만은 어느 것과도 매우 다른 것이네. 그 까닭은 이렇다네. 세상에는 굉장히 불량하고 불경건하며 방탕하고 무지하지만 어느 누구보다도 뛰어난 용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볼 수 있기 때문이네.” 라며 자신의 의견을 변경한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사람은 무조건 선한 것(쾌락)을 행하려고 하고 악한 것(괴로움)을 피하려고 한다. 를 가정하고 용기를 가지는 것은 선한 것 이고 이를 행하는 것은 선악을 측량하여 하는 것 이며 이러한 측량하여 하는 것을 지식(측량술)즉 지혜라 보고, 용기가 있는 것은 지혜가 있는 것이다. 라는 결론을 통해 덕은 지식(측량술, 지혜)을 전제하며 용기도 다르지 않다고 반박한다. 이에 프로타고라스는 대답을 회피하였고 소크라테스는 “제가 당신에게 이 모든 것을 물은 것은, 다름 아니라 덕에 대해 여러 가지의 문제를 생각해보는 동시에 그 덕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고찰해보고 싶었을 뿐입니다. 이것은 저로서는 잘 알 수가 없습니다. 이것만 분명하게 해결되면, 덕을 남에게 가르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도 분명히 잘 해결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고 말하고 자신은 자신이 처음 제시한 덕을 교육 될 수 있는가에 대해 자신의 대답을 얻고, 프로타고라스는 덕은 교육 될 수 있다는 자신의 의견에 반대로 덕은 지식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교육될 수 없다는 투로 말을 하는 것 같다며 다음의 이야기를 하자며 토론을 끝 마친다.
느낀점
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소크라테스는 공손하고 자신을 낮추는 어투를 통해 상대에게 질문을 던지고 이를 통해 상대의 의견이 잘못 되었음을 스스로 깨닫게 해주는 화법을 구사한다. 처음 얼핏 느끼기에는 프로타고라스가 지나치게 휘둘리는 느낌에 소크라테스에 말투가 상당히 거슬리고 프로타고라스가 불쌍하게 느껴졌다. 허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철학 시간에 배운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이 생각났다. 즉 산파법 즉 산모가 아기를 낳고 있을 때 옆에서 도와주는 산파처럼 상대에게 질문을 던짐으로써 질문을 받는 사람이 답변을 하는 과정에서 진리에 도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법임을 기억해냈다. 또한 그 산파법을 구성하는 질문과 대답은 형식논리학에 근거하고 삼단논법의 형태를 띄고 있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고 자신 또한 위대한 지성이고 다른 모든 이에게 뛰어난 지식인임을 인정받는 그가 자신을 낮추는 모습의 그의 겸손함을 느낄 수 있었다. 새삼 다시금 소크라테스의 위대함을 느꼇고, 나 또한 그와 같이 겸손함과 완성된 화술을 가지고 싶다. 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또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올리면서 상대에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모습을 보면서 연말 의회의 싸움 현장이 떠올랐다. 정치인들도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높여주고 그러면서도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또 다툼을 피할 수 있는 소크라테스의 화술을 구사하여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좀 더 성숙한 의회의 모습을 바라기도 했다. 또한 여기서 말하는 주요 쟁점인 덕의 가르침에 관해서는 나도 덕은 교육 될 수 있으며 이는 지식(지혜)를 바탕으로 가능하다고 믿는다. 나 또한 어렸을 때 철없이 많이 싸우고 동물이나 벌레 등에게 잔인한 행동을 했는데 그런 행동이 잘못되고 하면 안 되는 일임을 배우고 나서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 경험으로 느낀 실례이다. 이런 덕의 교육가능성을 깨닫고 생각해보니 요즘 학생들은 덕성 보다는 입시 교육에 휘둘려 너무 어린나이에 입시를 위한 공부만을 한다는 것이 맘이 아파졌고, 나를 조금 이나마 좋은 길로 가도록 힘써주신 선생님들께 감사의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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