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국경의남쪽 태양의서쪽
국경의 남쪽과 태양의 서쪽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아니면 연결시킬 수 없는 그런 공간들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절대적 존재의 연애소설은 어떤 것 일까? 처음에 이 책을 보고 제목이 참 흥미롭다고 생각했고 하루키의 소설이라 한번 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사실 하루키의 소설은 고등학교 때 ‘상실의 시대’를 본 것이 전부였다. 그때는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 지도 잘 몰랐고 그 작품하나로 그 작가가 어떤 글을 쓰는 사람인지도 잘 모르고 넘어갔지만 이제 와서 그의 책을 읽고 싶다고 생각하는 건 그냥 그 이름자체가 주는 안정감이라고 해야 하나, 신뢰감이라고 해야 하나 몸소 ‘하루키 효과’를 느껴보고 싶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두 번째로 읽는 그의 책은 처음 책을 읽었을 때 보다 내가 더 많은 것들을 보고 경험하고 난 뒤여서 그런지 참 글을 잘 쓰는 작가라는 것을 더 절절히 느낄 수 있었다. ‘하지메’라는 남자주인공의 열두 살 때부터 시작된 사랑이야기가 그의 성장과정과 함께 전개되어 나간다. 그리고 많은 여자들과 함께 진행되는 그의 사랑에는 언제나 ‘시마모토’라는 한 여자아이가 존재한다. 열두 살 때 만나 중학교 때 전 까지 길지 않은 어린 시절을 함께한 그 아이는 하지메와 같은 외동이었고 한마디로 엎어지면 코 닿는 가까운 곳에 살았으며 둘 다 음악과 책을 좋아했다. 집이 멀어지게 되고 성장하면서 자연스레 헤어지게 되었지만 하지메는 어느 여자를 만나건 간에 시마모토로부터 느꼈던 100명 중 한두 사람만을 매우 강렬하게 끌어당기는 숙명적인 냄새, 그 흡인력. 다른 사람들은 알 수 없는 그만이 느낄 수 있는 뭔가 특별한 것을 잊지 못한다. 몇 번을 그와 비슷한 것을 지녔다고 생각되는 여자들을 만났지만 언제나 시마모토에게서 느낀 ‘그것’과는 같을 수 없다고 생각하다. 하지메로 대변되는 작가는 시마모토와 함께 음악을 듣던 일, 이야기를 나누던 일, 함께 집에 돌아오던 일 등을 섬세하고 특별하게 표현하는데 그 중 나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시마모토와 10초정도의 짧은 시간동안 손잡고 있었던 일에 대한 묘사였다.
「그것은 열두 살 소녀의 작고 따뜻한 손일 뿐 이었다. 하지만 그 다섯 손가락과 손바닥 속에는, 그때 내가 알고 싶었던 것과 알아야 했던 것이 마치 샘플처럼 꽉 차있었다. (손을 잡았던) 그 10초 동안 나는 내가 완벽하게 작은 새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하늘을 날고 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높은 하늘 위에서 먼 곳의 풍경을 볼 수 있었다. 너무나도 멀어서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는 정확히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거기에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언젠가 그 장소에 갈 수 있게 될 것이다. 그 사실은 나를 숨 막히게 했고 가슴 떨리게 했다. 그 부드러운 감촉은 그 후 며칠 동안이나 내 마음을 따스하게 감싸주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나는 혼란스러워졌으며 당혹스러워졌고 애달파졌다. 그 따스함을 어떻게 해야 할지 어디로 가져가야 좋을지 나는 알지 못했던 것이다.」
처음 특별한 이성의 손을 잡은 남자아이의 감상을 이보다 더 담백하고 진솔하게 그려낼 수 있을까. 책의 초반부에 등장하는 이 부분이 내가 단숨에 책을 읽어내려 가게 한 원인이 되었음은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이처럼 귀중하고 조심스러운, 그러면서도 아직은 불투명한 하지메의 시마모토에 대한 마음은 그가 결혼하여 두 딸과 안정적 직장을 둔 모범적 가장이 되었을 때 우연히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되면서 선명해지게 된다. 시마모토는 알 수 없는 비밀에 둘러 쌓여있고 그에게 아무것도 묻지 말기를 부탁하지만 그도, 그녀도 서로를 단 한시도 잊을 수 없었다고, 유일하게 진정한 사랑이었다고 말한다. 처음과 끝은 있지만, 중간이 없는 그래서 만나면 되 돌이킬 수 없는 그들의 사랑은 하지메에게 모든 것을 다 포기하도록 하는 결정을 하게하고 둘은 그 완전히 함께하는 길을 택하기로 하지만 시마모토는 끝내 그녀의 비밀을 감춘 채 하지메에게서 사라지고 만다. 홀로 남겨진 하지메가 결국 가정으로 돌아가게 되고 시마모토와 같은 비, 어둠속의 광활한 바다에 아무도 모르게 내리는 그런 비를 생각하며 소설을 끝을 맺는다.
작가가 스스로 인정했듯이 시마모토의 현실적 존재에 대해 논하는 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는 것에 나 역시 동의한다. 그녀가 실존했던 하지 않았던 간에 시마모토라는 인물이 갖는 상징성은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굳이 프로이트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시마모토가 하지메의 유년기를 지배했던 리비도의 원천임은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일인 것이며, 시마모토와 이즈미라는 과거의 여성들이 결국 하지메에게 정신적 트라우마를 입혔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아무리 봉합을 꼼꼼히 한다 한들 상처부위에 생기는 반흔을 완벽하게 막을 수는 없듯이 서른일곱의 인생을 살아왔지만, 하지메의 상처는 아물지 않고 있었다. 주인공에게 놓인 건 죽음으로밖에 이루어질 수 없는 과거로의 회귀이던가, 아니면 이를 극복하고 현재를 진행시키는 것인가의 선택이다.
사실, 삶과 사랑에 대해 너무 진지하게 접근하는 작가의 태도가 조금은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무라카미 하루키는 무거운 주제에 그 스스로가 억눌리는 일 없이 멋지게 소설로 표현해냈다. 이른 아침 침대에 엎드린 채로 소설을 읽으며 나는 꽤나 감동받았다. 작가는 스스로 영미소설에 영향을 받았음을 고백하지만, 난 오히려 소설 속에서 일본적인 면을 많이 느꼈다. 『상실의 시대』로만 끝나버릴 뻔 했던 무라카미 하루키를 다시 만나게 되어, 그리고 그의 진면목을 보게 되어 기분이 좋았고 기회가 닿는 대로 그의 유명작들을 조금 더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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