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복지론 - 영화 감상문 - Away From Her
Away From Her
우리의 기억은 얼마나 불완전한가. 생화학적 작용을 통해 저장된 기억은 물리적 시간 속에 감퇴되고 인간의 상상력이 더해져 왜곡되기 일쑤다.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나는 학창시절을 기억하고 있소’ ‘나는 친구와 바닷가에 놀러간 일을 기억하고 있소’ 만약 당신이 어떤 사건을 회상할 수 있다면 그것은 추억이다. 추억은 기억보다 온전하고 태양보다 찬란하다.
여기 찬란한 추억 속으로 걸어가는 한 여성이 있다. 그녀의 이름은 피오나. 그녀는 숙녀중의 숙녀로 아마도 알츠하이머란 병에 걸리기 전까진 남편 그랜트와 함께 평온한 여생을 보냈으리라. 그러나 불행히도 그녀는 자신의 기억력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고, 남편을 위해 스스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알았다.
방 안을 환하게 비춰주던 촛불이 하나씩 사라져간다. 방 안은 촛불이 사라질 때마다 조금씩 어두워지고 마침내 한줌의 빛마저 어둠에 잡아먹히고 만다. 알츠하이머는 그런 병이다. 최근 기억부터 사라져간다. ‘와인’이란 단어가 생각나지 않고, 프라이팬을 냉장고에 넣는가 하면, 화재가 났을 때 어디로 전화를 걸어야 하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생각나지 않고, 낯선 길 위에서 마침내 내가 누구인지조차 잊어버린다.
반면 추억은 선명하다. 그랜트가 교수 재임시절, (피오나의 표현에 의하면) 천박하기 짝이 없는 화장과 옷차림으로 그에게 열렬히 사랑을 구애한 여학생이 있었다. 어쩌면 다른 교수들처럼 어린 학생의 유혹에 넘어가 자신을 버리고 떠날 수도 있었지만 끝까지 신뢰를 지킨 그랜트에게 피오나는 늘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요양원으로 가는 길, 문득 그 날의 일이 떠오르는 그녀이다.
그랜트와 피오나는 무자녀 가정이다. 구체적인 이유는 나와 있지 않지만 비자발적인 이유로 아이를 갖지 못한 듯 보인다. 그러나 이 노부부는 누구보다 서로에 대한 애착이 강하고, 상호존중하며 함께 하는 법을 잘 알고 있다. 아침이면 테이블에 마주앉아 차를 마시고 오후에는 산책을 나간다. 저녁이면 잠 못 드는 아내를 위해 책을 읽어주고, 겨울이 되면 스키를 타러 가곤 한다. 이처럼 44년을 함께 한 노부부에게 준비되지 않은 이별은 사고 그 자체이다.
한 달 후, 설레는 마음으로 요양원을 찾아간 그랜트는 자신을 남처럼 대하는 아내의 태도에 당황한다. 한 달의 헤어짐 동안 그녀의 머릿속에서 자신은 얼마나 지워진 것 일까. 부부사이에 처음으로 ‘거리’가 생겼다. 그리고 그녀의 옆에는 애인처럼 보이는 남자가 앉아있다. 그의 이름은 오브리. 피오나는 이제 남편이 아닌 그와 모든 것을 함께 한다. 마주앉아 밥을 먹고, 산책을 하고, 웃으며 포커게임을 한다. 피오나에게 그랜트는 더 이상 남편도, 가족도 아니다. 현실이 다른 혼란스러운 존재일 뿐이다.
피오나에게서 멀어져가는 자신을 보면서 그랜트는 상실의 감정을 느낀다. 오브리를 질투하기도 하고, 자신을 피하는 피오나에게 ‘내가 남편이야!’ 하고 소리도 질러본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피오나는 자신에게서 도망쳐갔다. 그랜트에게 현실을 수용하는 것은 너무나 힘들고 가슴 아픈 일이다. 오브리가 퇴소하고 시름시름 아파가는 피오나를 보면서 그랜트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한다. 그리고 메리언에게 남편(오브리)을 입소시켜달라고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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