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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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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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독후감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고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고..
Ⅰ 서 론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의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징역의 열 가지 스무가지 장점을 일시에 무색케 해버리는 결정적인 사실, 여름징역은 자기 바로 옆사람을 증오하게 만든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사람을 단지 삼십칠도의 열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중의 형벌입니다.』
교수님께서 여러개의 도서를 나열하시면서 이러한 레포트를 내 주신 것은 거창한 철학적 이론을 찾아내길 기대하신 것은 아닌거 같다. 그리고 실로 나도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그런 기대를 스스로 저버릴 수 밖에 없었다. 철학이 일상과 떨어뜨려서 생각할 수 없듯이 이 책속에서 나는 일상의 깨달음을, 인생의 지표를-흔히 인생의 철학이라 말하는- 얻고자 한다. 그뿐이다.
이 세상에는 많고많은 인간관계들이 얽혀 있다. 그것은 우리에게 아주 좋은 인생경험이 되기도 하지만 때론 개인에게 심한 부담을 느끼게 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관계를 맺고 사람들을 대하는 이들이 많아질수록 나는 심한 실망감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착하다’라는 말을 싫어한다. 그리고 착한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착하다’의 절대는 없다. 그저 상대적일 뿐이다. 남들이 ‘착하다’라고 말하는 것은 내가 그의 의견에 반대하지 않고 그와의 대화에 있어 트러블이 없이 순순(順順)했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확신하게 된 것은 나또한 그런 생각속에 살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런 류(類)의 사람들에게 ‘착하다’란 주관적인 표현을 썼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난 착한 사람이기 보다는 성숙한 사람이 되길 바란다. 나의 이런 생각덕분에 개인의 성숙함을 목적으로 살아온 필자의 글을 순순(順順)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전반적으로 필자 (실은 예전에도 신영복이란 사람의 대한 관심이 없어서 인지는 몰라도 필자라고 말하는 것이 편하다.) 의 인생관과 더불어 그 인생 속에서 ‘나’의 위치, 인관관계에 대해 거의 대부분의 지면을 할애한 듯이 보인다. 철학이 말하고자 하는 것도 사실 필자가 말한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기에 어쩌면 이 책은 철학하는 사람이 읽음직한 책인 것 같다.
Ⅱ 본 론
필자는 감옥 안에서 그의 인생의 고독을 경험했다. 아니다, 그에게 고독은 경험한 것이 아니라 이미 학습한 것처럼 그의 몸에 습득된 것이었다. 습득한 자는 고독에 대한 정의도 역시 우리(필자와 같은 고독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와 달랐다. 우리는 흔히 고독은 혼자 남겨졌을 때 발생하는 심리적 불안쯤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필자는 고독이 우리가 생각하는 그것도 고독일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 속에서도 끈끈한 인간관계가 없었던 나폴레옹의 그것도 고독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고독의 형태를 그는 ‘조각살이’라고 말하고 있다. 난 이 말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참 재미있는 말인 것 같아서 내 머리로 이해해보려고 노력했다. 접시가 깨져 조각이 나면 그 하나하나의 조각들은 우선 모여 있지 않고 흩어지려는 성질이 있으니 그것들을 고독을 느끼는 인간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 조각들은 하나로 뭉쳐야 완전한 것이 될 수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인간도 그 공동체로 하나가 되어있을 때가 가장 완전한 모습이라는 것이다. 사람은 혼자 살수 없음에 반대하거나 의심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필자는 이 ‘조각살이’의 근거를 사유(私有)에 두고 있다. 우리의 ‘조각살이’에는 ‘니꺼내꺼’가 너무 많다. 그래서 생기는, 개인사이의 가까워질 수 없는 거리가 참 안타깝다. 그는 마지막에 ‘신발이 바뀐 줄도 모르고 집으로 돌아온 밤길의 기억을 나는 갖고 있다.’ 라는 말을 하면서 그 모두 함께 살면서 행복했던 기억을 그리운 듯 회상하고 있다.
필자는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중요시 하고, 또 몹시도 그리워 한 것 같다. 그가 쓴, 청구회의 6명의 꼬마들에 대한 추억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나도 한껏 웃음 짓게 하는 애틋함이 배어나온다. 그는 어릴 적 내가 경험했던, 무서움의 상징-나이를 유세(宥世)로 여기던- ‘어른’들의 인상을 바꿔놓는 듯 했다. 그는 소풍날 만난 6명의 꼬마들과 첫 만남을 잠시 잊었다는 이유로 엄청난 죄책감을 갖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들과의 만남을 매번 성실히도 준비하던 사람이다. 그런 모습은 인간관계를 소홀히 하고 피상적인 인간관계가 만연한 현대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것이다. 공자는 인간관계에서 서로를 사랑하는 인(仁)을 가장 중요시 하였다. 하물며 정치분쟁은 정치인들 사이에 서로를 이해하는 인(仁)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정치관에도 인(仁)의 개념을 접목시키는데 하물며 인간관계에서 인(仁)을 바탕으로 한 -서로에게 성실한- 인간관계가 어찌 중요하지 않겠는가.
침통한 슬픔이 지극히 사소한 기쁨에 의하여 위로된다는 사실은 참 신비롭다. 필자의 말이다. 그 말에 적극 동감한다. 사실 ‘기쁨’이란 것은 참 대단한 녀석이다. 큰 슬픔이 인내되고 극복되기 위해서 반드시 동일한 크기의 커다란 기쁨이 필요한 것은 아니니 말이다. 아무래도 그 이유는 슬픔이든 기쁨이든 우리의 모든 정서는 우리의 생명에 봉사하도록 이미 소임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명은 이 기쁨에 의한 것이다. 필자는 또 진정한 기쁨이 물(物)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믿을 수 없지만 사람관계에서부터 오는 것이라면 믿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말은 우리가 사람사이에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적어도 인간관계에서는 이익을 두고 만나서는 안된다. 서로에게 진실한 마음으로 대하고 기쁨을 주기 위한 만남이 되어야 한다. 친구사이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성경에서는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만큼 귀한 것이 없다고 말한다. 나에게 있어 이것만큼 보편타당한 당위명제는 없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