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감상문] 교사와 학생 사이 - 하임 G 기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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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교사와 학생사이
교사들은 누구나 효율적인 연장과 기술을 가질만한 자격을 갖고 있다. 이 책을 2년 전 처음 접했을 때는 도저히 하나도 이해가 되지 않는 말들로 가득 했었다. 그런데 짧게나마 일주일간의 교생실습을 두 번 마치고, 공부방 활동과 교회에서 주일학교 생활로 우리 아이들과 많이 만나본 후 이 책을 다시 접한 지금 아직 전부를 이해 할 수는 없지만 또 다른 가르침을 나에게 주었다. 연장과 기술, 과연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 있어서 이런 것들이 필요할 가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이 책에서 알려주는 많은 연장과 기술은 한가지로 통하는 것 같다. 아이들을 위한 사랑, 아이들을 위하는 마음, 내가 만나는 수백명 아니 수천명의 아이들의 미래가 나의 말 한마디와 나의 행동 하나 하나에 달려있다는 사실이 교사라는 것의 매력인 것 같다.교사는 일반적으로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교사가 되려는 지금 나는 생각을 달리 해야 할 것 같다. 교사는 아이들에게 가르치기만 하는 것이라 아니라, 교사 또한 아이들로부터 항상 배우는 존재인 것 같다. 일방적으로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과 생각 그 등등의 것들을 아이들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것과 나의 것이 서로 상호 보충되어서 아이들에게 더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교사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을 만나 보면 그동안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하나하나씩 배우게 된다. 그 동안 당연히 여겨왔던 것들을 아이들을 통해서 다시 생각해 보고, 그 존재의 의미에 대해서 또는 소중함에 대해서 느끼게 해준다. 나는 그동안 당연시 여겨왔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강요하는 방식은 내가 교사로서 가장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들 중 하나이다. 아이들은 참으로 호기심이 많다. 그리고 그 호기심을 바로 바로 표현을 한다. 교사는 아이들의 그러한 순수한 표현들을 반갑게 받아주고, 아이들의 생각을 더욱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확장시켜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는 아이들과 생각을 나눌 수 있는 방법들을 여러 가지 제시해 주고 있다. 교사는 아이들과 더 좋은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습관화되어 있는 언어를 잊어버리고, 새로운 받아들임의 언어를 습득해야 한다고 한다. 그냥 은연중에 하는 모든 말들 중에 있어 아이들에게 내가 줄 영향들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나는 너희들을 믿고 있고 있다는 사실을 아이들에게 표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최선을 다하는 교사들은 아이가 처한 상황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고 한다. 아이의 성격과 인격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성예언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내가 어떤 아이를 단순히 이렇다고 생각해버리고, 그 아이에게 그런 말과 행동을 보였을 때, 정말 아이가 그대로 된다는 정말 무서운 사실이다. 아이가 어떤 잘못을 보였을 때, 예를 들어 지각을 했을 때 넌 정말 게으르구나 이렇게 단순히 말하는 사실이 아이에게 잘못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교사는 단호하고 효율적으로 행동해야 하고, 그 대신 감정을 솔직하게 말해주어야 한다고 한다. 교사의 권위 때문에 아이들에게 솔직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과 생활하다 보면 뜻하지 않게 화가 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럴 때에 교사는 분노는 표현하되, 아이들에게 모욕은 주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강제적인 표현을 쓰지 않아야 한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아이들에게 하는 말 중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이 강제적인 표현이 아닐까 한다. 떠들지 마라! 숙제 해 와라! 등등 아이들에게 그동안 무언가를 하기만 강요했던 것 같다. 작년에 들었던 수업 중에 교수님이 하고 싶으신 말씀을 은유적인 표현으로 하시는 분이 계셨다. 얼핏 생각하면 그냥 직설적으로 하시지 왜 돌려서 말씀하실까 라고 할 수도 있지만, 제자의 입장에서 참 좋았던 것 같다. 떠들었을 때, ‘조용히 해라’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왜 무슨 일 있어?’ 라고 말씀하시며 허허 웃으시던 모습이 좋은 인상을 남기고 교수님을 더 신뢰하게 되며 수업을 들을 때마다 조심했던 것 같다. 교사와 학생과의 관계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이다. 교사가 학생을 믿고 학생이 교사를 믿는 사이에서의 교육은 어떤 새로운 교수방법보다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처음 내가 공부방에서 아이들을 만났을 때가 이제 막 교육대학교에 입학했을 때였다. 지금도 교직생활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들의 기분이 어떠한지 지금 왜 이런 행동을 보이는 지 완전히 이해 할 수는 없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 힘들었던 것 같다. 공부방이 위치한 곳이 전주에서 낙후된 곳에 있는 초등학교 부근이라 공부방에 오는 아이들의 대부분의 가정형편이 좋지 못하였고, 편부모 아래에서 자라거나 할머니, 할아버지와 살고 있었다. 참 억울한 일이지만, 요새는 가정형편에 따라 아이들의 학력수준이 결정되는 것 같다. 우리 공부방에 오는 아이들이야말로 정말 개인지도가 필요하고 학원을 다녀야 하지만, 정작 우리 아이들은 다니지 못하고 학교에서조차 말썽꾸러기정도로만 인식되어 꾸준한 관심을 못 받고 있는 현실이다. 나는 3~4학년의 반인 새싹반의 선생님이었는데, 우리 반 아이 중 두 남자아이는 항상 우리 반의 고민이었고, 또 우리 반의 마스코트였다. 이 아이들을 처음 만났을 때는 학교 선생님들의 입장에서 보면, 정말 골칫거리였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가정에서의 돌봄이 부족하여 잘 씻지 못하여 냄새가 나기도 했고, 밥을 잘 못 먹는지 발육상태도 다른 아이들에 비해 좋지 못했다. 공부방에는 오지 않는 날이 많았고, 그나마 공부방에 오는 날은 공동체 시간으로 체육을 할 때였다. 그런데 이 아이들에게 내가 정을 주게 된 계기는 아마 아이들이 학교에서 잘못을 해서 선생님께 무작정 맞았다는 소리를 듣고 나서였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학교에서 도난 사건이 있었는데, 이 아이들이 그 사건의 주인공으로 정해진 듯 했다. 사실 아직도 우리 아이들이 잘못을 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선입견으로 인한 것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 때 나와 우리 공부방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만나 진지하게 그리고 솔직하게 이야기를 해보았다. 대화의 처음은 그러했다. 아이들의 행동이라고 섣불리 결정지어버리지 않고, 무슨 일이었는지 아이의 언어로 듣고 싶어 한다는 표현을 했다. ‘나는 너의 선생님 이다’라는 표현보다는 ‘나는 너와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친구 이다’라고 아이에게 계속 표현을 했다. 물론 아이와 이야기를 하면서 화가 날 때도 있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그 때 나의 분노를 아이에게 어떤 식으로 표현했어야 했는지 알 것 같다. 무작정 화를 내고 벌을 주고 하는 방법의 분노 표현은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주지 못한 다는 것을 알았다. 화를 내기도 하고, 아이의 엉뚱한 말에 웃기도 했던 그 시간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학생과 교사 사이는 사회에서 존재하는 여러 관계들을 다 포함하고 있는 것 같다. 어떨 때는 부모와 자식사이 같기도 하고, 친구 사이 같기도 하고, 연인사이 같기도 하다. 내가 만약 그 때 아이를 낙인 찍어버리고, 사회에서 그러한 것처럼 아이를 대해버렸다면, 지금의 그 아이는 계속 나의 고민으로만 남아있을 것 같다. 그런데 내가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이 아이의 위에 존재한다고 생각했을 때, 나도 아이에게 다가갈 수 없고, 아이도 나에게 다가 올 수 없었을 것 같다. 선생님으로써 아이들에게 먼저 다가가기란 참으로 어렵게 생각되는 것 같다. 선배와 후배사이가 그러하듯이, 당연히 나이가 어린 아이들이 다가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실제는 그러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공부방을 통해 이 책을 통해 느꼈다. 교사와 학생 사이는 상하관계가 아니라 서로 대등적인 존재이다. 다만 조금 어리숙한 아이들을 위해 교사가 먼저 꾸준한 관심을 보여야 할 것 같다. 이 책은 이론적으로 내가 배워서 알고 있는 것과 실제로 내가 아이들에게 하는 것들은 다르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이론적으로 배울 수 있는 것들을 훌륭하다고만 생각하는 것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밥을 먹으면 습관적으로 이를 닦듯 내 몸에 습관적으로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들도 남들보다 도덕적 성향이 뛰어난 성인군자가 아닌 보통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만나다 보면 항상 좋은 일만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안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아이들에게 변덕적인 선생님으로 보여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 공부방에는 오랫동안 아이들과 만나온 선배들이 있었다. 그 선배들을 보면 다른 사람보다 많은 이론과 지식들을 접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누구보다 아이들을 대하는 방법을 알고, 아이들과 이야기하는 방법들을 알았던 것 같다. 사실 그런 것 같다. 대학교에서는 교직에 대해서 제대로 준비를 시키지 못하는 걸 깨달았다. 그나마 우리 학교는 다른 교육대학교에 비해서 교육실습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1,2학년 때 아이들과 만나는 일주일동안으로는 제대로 된 준비를 하기에는 부족한 시간이 아닌가 싶다. 지금의 교육과정의 대부분은 실기가 아닌 이론들로 이루어져있다. 이론이 아닌 실제를 배우는 과목에서조차 내가 만나는 것은 실제 교실의 아이들이 아닌 같이 수업을 같이 듣는 동기들이다. 그렇다 보니 내가 배운 것들을 실제 나의 것으로 만들기는 어려운 것 같다. 나는 교육이론 중 피그말리온 효과를 가장 좋아한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하듯이 작은 칭찬이라도 계속적인 칭찬은 아이들을 바꾸게 하는 것 같다. 단순한 ‘넌 참 착하구나’ 정도의 칭찬이 아닌 칭찬에도 원칙이 있음을 알았다. 칭찬이나 꾸중에 있어 공통되는 원칙은 아이의 인격에 대해서 판결을 내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아이가 어떤 행동을 했을 때, 그 일에 대해서만 객관적인 칭찬과 꾸지람은 가능하지만 아이의 전반적인 인격에 대해서는 금물이라는 것이다. 아이에 대한 평가는 아이들 스스로 내리게 하는 것이 참 좋은 것 같다. 특히 초등학교 시절의 아이들은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내가 만나는 많은 아이들이 미래에 모두 같은 모습으로 같은 일을 하고 있을 리는 없다. 개개인 모두가 잘 하는 것이 다르고, 좋아하는 것이 다른데 공부만 잘하도록 지도하는 교육적 가치관은 아이들에게 있어 그리고 우리 사회에 있어 긍정적이지 못하다. 공부를 잘 하는 아이가 있다면 물론 기술에 능한 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