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문 빅 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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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영화 감상문 빅 대디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빅 대디
영화 빅대디의 첫 장면에서 주인공 쏘니의 아버지가 자고 있는 쏘니에게 전화해서 쏘니를 깨우면서 잔소리를 늘여놓는다. 번듯한 직장도 없는 놈이 게으르고 어쩌고 저쩌고...변호사라는 번듯한 직업을 가진 쏘니의 아버지는 쏘니가 한심하고 답답해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 첫 장면을 보며 대충 쏘니가 어떤 캐릭터를 가진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또한 쏘니에게는 바네사라는 여자친구가 있는데 그녀로부터 좀더 건설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사람이기를 충고받고, 그들의 사이에 대해 회의적으로 생각하며 쏘니를 떠나고자 한다. 쏘니에게는 가장 친한 친구이자 룸메이트인 케빈이라는 친구가 있으며 그는 코린느라는 약혼녀가 있다. 케빈의 약혼녀 코린느 역시 쏘니를 한심하고 케빈과 자신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으로 몰아붙이며 쏘니도 코린느가 예전에 일했던 술집을 들먹이며 서로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
그러던 어느날, 케빈 앞으로 줄리안이라는 5살의 꼬마가 퀵 서비스로 배달된다. 케빈은 쏘니에게 5년전 실수를 고백했고 쏘니는 약혼녀 코린느에게 난처한 입장에 처한 케빈을 위해, 또 자신을 떠나려는 바네사에게 줄리안을 맡아 돌보는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줄리안을 입양한다. 쏘니는 사회복지국에 전화하여 담당자 아서 브룩스에게 자신이 줄리안의 친아버지 케빈이며 줄리안을 입양하겠다고 말한다. 여기서 등장한 사회복지국의 줄리안 담당자 아서 브룩스가 사회복지국의 고용직원인지 공무원인지 사회복지사인지 정확한 직책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아이의 입양을 담당하는데 있어 입양절차와 ct의 입장을 아이 뿐만 아니라 아이의 양육권을 맡아야 하는 케빈의 입장, 양쪽사항을 고려하는데 있어 전문적인 기술을 이용하고 정부의 지원을 받는 것으로 보아 사회복지사라고 가정하며 비디오를 시청하였다. 아서 브룩스는 자신을 케빈(줄리안의 친아버지)이라 말하며 줄리안을 맡겠다고 한 쏘니의 전화에 “친아빠가 맡아서 키우겠다고 하면 더 바랄 것이 없죠.”하고 말하면서 입양문제를 마친다. 이 장면에서 아무리 친아버지라 하더라도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사회경제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인지 확인 과정을 거쳤는지, 또는 친자 확인 과정은 거쳤는지 궁금했다. 만일 친자 확인 과정을 거쳤다면 케빈을 사칭하여 쏘니가 아이를 입양한다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도 생겼다. 영화를 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쏘니의 의도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을 것임을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바네사의 마음을 돌려놓기 위한 계획만으로 아이를 양육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또한 바네사 역시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쏘니의 의도와는 달리 더욱 쏘니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과 제스처를 보이며, 늙은 새 애인을 소개하며 쏘니를 떠난다. 결국 쏘니는 더 이상 줄리안을 맡을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쏘니는 줄리안을 다시 사회복지국으로 보내려 하지만, 아이를 당장 사회복지국에 맡기면 양부모가 구해질때까지 양육원에서 생활하게 된다는 말을 듣고 양부모가 구해질 때까지만 줄리안을 맡기로 한다. 이 장면에서 쏘니가 아이를 일단 데리고 있겠다는 의지를 보이기 전에 양육원에 관해 물어본다. 양육원이 고아원과 같은 곳이냐는 질문에 담당 사회복지사 아서 브룩스는 요즘은 고아원이라는 말은 잘 사용하지 않는다며 고아원과 양육원의 의미에 차별화를 두었는데 여기서 말하는 고아원의 개념이 양육에 대한 아무런 대책도 없는 최후의 경우에 가게 되는 곳이라서 최후의 방책의 의미이기 때문에 양육원과 차별화를 둔건지, 미국 사회에서는 고아원의 개념이 양육원으로 바뀌어서 단지 단어사용의 문제를 지적한건지가 궁금했다. 줄리안을 다시 데려오게 된 쏘니는 생전 처음으로 아이 때문에 아침 일찍 일어나고 좋아하는 농구 게임을 줄리안의 캥거루 비디오 때문에 양보하며 아이와의 삶을 하나하나 익히며 적응해나간다. 적응한다는 말은 아이에 대한 사랑과 관심으로부터 생활의 중심이 아이에게 맞춰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어느 날 복지국의 아서 브룩스는 줄리안의 양부모를 구했다는 소식을 전하려 케빈의 집을 찾아온다. 그러나 쏘니의 부재로 케빈이 그동안 줄리안을 맞아 길러준 사람과 동일한 사람이 아님을 알게 되고, 줄리안을 사회복지국으로 다시 데려간다. 쏘니는 줄리안을 통해 삶의 책임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사랑을 할 줄 아는 삶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며 사회복지국으로부터 줄리안을 되찾기 위해 재판장으로 나간다. 재판장에서 사회복지국 측의 변호인은 쏘니가 케빈을 사칭하고 줄리안을 데리고 있었던 죄를 주장하고 쏘니 측의 변호인들은 그동안 줄리안과 쏘니의 생활을 지켜보며 아이에게 쏘니는 꼭 필요로한 사람임을 설명한다. 쏘니측의 변호인으로 등장한 몇몇 사람중에 당연 기억에 남는사람은 줄리안이다. 줄리안은 어려서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하고 쏘니의 그릇된 행동을 따라한 경험을 이야기 하여 쏘니의 변호단을 당황하게 하지만, 끝내 쏘니와의 작별인사를 하지 않고 쏘니와 헤어지지 않겠다고 울며 매달린다. 불리한 입장에 처한 쏘니는 자신을 심문할 사람으로 자신의 아버지를 요청하며 쏘니의 아버지는 지금껏 아들의 행동과 태도에 있어서 자기자신의 처신 하나 똑바로 못하는 아이라며 아이를 키울 능력이 없다는 주장을 펼친다. 그러나 쏘니는 이런 아버지의 손을 살포시 잡으며 아버지가 그토록 실망하시면서도 계속 잔소리하시고 충고와 걱정을 늘여놓는 것, 또한 이 자리에 나오심 자체가 저를 사랑하시기 때문이죠? 하고 여쭙고, 아이를 양육함에 있어 실패할 것을 미리 추측하지 말고 아버지가 쏘니를 사랑하며 길러왔듯, 아버지가 쏘니를 걱정하여, 쏘니를 지켜주기 위해 재판장을 찾아왔듯, 줄리안을 사랑하며 키울 것을 다짐한다. 아들의 이런 성숙하고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고 아버지 또한 감동하며 아들이 줄리안의 양육을 허락한다. 그러나 결국 재판장에서 케빈은 줄리안이 자신의 아들임을 인정하며 죄책감과 책임감으로 힘들었다는 것을 호소하며 줄리안을 맡아 기를것임을 선포한다. 영화는 끝내 케빈과 코린느 사이에서 사랑받으며 자라는 줄리안의 모습과 함께 아빠같고 친구같은 써니가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을 그리며 해피엔딩으로 끝이 난다.
영화를 보며 내내 나는 우리나라의 사회복지 담당자는 이런 경우 어떤 방법을 취했을까? 하는 의문을 갖았다. 미국의 사회복지국 담당자는 친권을 확인하지 않고 아이를 넘겨버린 실수를 범하였지만 결국 아이의 친권이 아님을 알고부터는 적극적으로 아이의 양육권을 합당한 절차와 방법으로 되찾기 위해 노력하였다. 물론 영화에서는 모두가 양심적인 사람들이기에 결국은 해피엔딩의 결론을 맺을 수 있었지만 만일 사회복지 담장자가 모르는 척 넘기려했다면, 또는 써니가 끝내 책임을 다하지 않고 도중에 중도 포기하여 줄리안이 양육원으로 보내졌다면 어른들의 실수로 아이는 두 번의 상처와 아픔을 갖은 채 살아가야 했을 것이다. 이 영화를 통해 사회복지사가 주어진 임무를 합당하고 합법적인 절차를 따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었다. 사회복지사가 사람을 대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때로는 감정의 판단을 따르기 쉽다는 생각이 든다. 표면적으로 쏘니가 줄리안에게 필요한 사람일 것이라는 감정적인 판단으로 방치해두었다면 결국 사회복지사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양쪽 모두의 입장을 이해하며 공감 할 수 있었다. 재미를 추구하고 유쾌함을 주는 영화이기는 하지만 사랑과 정에 넘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슴 한편이 훈훈해짐을 느낄 수 있는 따뜻한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