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유의 사설 감상문,

 1  한유의 사설 감상문,-1
 2  한유의 사설 감상문,-2
 3  한유의 사설 감상문,-3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한유의 사설 감상문,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한유의 사설 감상문
한유의 사설은 오늘을 살아가는 이 시대의 교육에 무엇보다 필요한 가르침일 것이다. 현대사회는 개별화, 개인화 된 사회이다. 그렇다보니 학습에도 영향을 미쳐, 다른 사람에게 배우려 하기 보다는 혼자 학습하기를 즐기게 되는 현상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이것은 우리의 지난 몇 십년 동안의 일제식 수업에 기인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교사에게 일방적으로 배우고 이것이 학습의 전부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과의 상호작용을 중시하지 않게 되었다. 더 나아가서는 나이가 어린 사람이나 지위가 낮은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배우고 스승으로 삼는 것은 생각도할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고, 심지어 부끄럽게까지 여기는 잘못된 생각을 갖게 되었다. 예전에 인터넷에서 본 기사인데, 한국인들이 가장 잘하는 말이 “너나 잘하세요”라고 한다. 한국인들은 나는 언제나 옳고 상대방은 잘못하며 틀리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 다른 사람이 자신의 부족한 부분이나 실수에 대해서 진심어린 충고를 해 주거나 조언을 하면 “너나 잘하세요”라는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다. 좋은 조언이나 충고를 들으면 그것을 감사하게 받아들이며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어 네가 뭔데, 감히 네가 나한테.......” 이런식으로 황당하게 생각하고 그것을 수치라고까지 여기니 무슨 말을 더 할 수가 있겠는가? 조금은 곁길로 세는 것같은 이야기이지만 우리는 나만 의롭다는 생각에 빠져 서로를 대적하고 있다. 나는 잘하는데 네가 문제여서 나라가 이렇게 어렵다는 등의 의견을 내세우며 나라 곳곳에서 진보와 보수가, 여.야가 정치인과 대통령이, 국민과 정부, 제자와 스승이 서로 격렬하게 대립하고 있다.
최근에 웹을 기반으로 하는 수업이나, 협동학습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협동학습은 비고츠키의 사회적 학습이론에서 시작한 것으로, 이 이론에서는 교사는 동료 학습자일 뿐, 학생은 친구와 부모, 교사와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발달해 간다는 것이다. 또한 협동학습은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다양한 지식을 습득하고 의사소통능력, 표현력, 문제해결력 등을 기르고 사회적, 정의적 태도 역시도 형성하게 한다. 한 발 더 나아가 웹 기반 학습은 웹을 통한 상호작용으로 나이와 신분의 상관없이 서로 친구, 스승이 되어서 학습하게 된다. 협동학습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지만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 교육에 남아 있는 일제식 교육(수업)을 지양하고 선생님과, 또래 친구들 등, 주위 모든 사람들과 학습에 있어서 또한 인성교육에 있어서 서로 상호작용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야 하겠다.
한유는 768년에 사람이었다. 학문이란, 시대를 뛰어넘는다는 것을 실감한다. 한유의 사설을 읽으며, 제자, 즉 배우고자 하는 사람의 태도 및 스승으로써의 태도, 배움의 중요성에 대해 되새기는 중요한 시간이 되었다.
古之學者 必有師 師者 所以傳道授業解惑也 - 배우고자 하는 사람의 위치에 대해 설명하며 그의 주장은 시작된다. 배우려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스승이 존재한다는 이문장이 아직 나의뇌리에 남아있다.
먼저 한유가 주장한 배우고자 하는 사람의 태도로써는 직업의 귀천을 막론하고, 의혹이 발생하면 그 부분을 해결해줄 수 있는 사람을 스승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옛날에 성인들이 보통사람보다 월등할 수 있었던 것이 이처럼 스승을 쫓아 가르침을 청하였기에 더욱 성인답고 성스러울 수 있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에 더불어 사람들은 사랑하는 자식에게 무엇이든 가려서 가르치려고 하면서 부모 된 사람들은 정작 배우기를 멈추고 배움에 있어 부끄러워한다고 말하였다.
한유의 주장과 같이 지금시대에도 이런 점이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점은 겸손하고 낮아진 사람만이 스승에게 귀한 것을 얻을 수 있고, 남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고 교만한 사람에게는 어느 누구도 가르침을 전해주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금도 가르침을 얻고자 자신을 굽히고, 배우려는 자세의 사람들이 많다. 나의모습은 어떠한가! 솔직히 그렇지 못한 부분이 많다. 사대부 족속들처럼 사람과 사람사이의 나이를 헤아려 보기 빠르고, 학문의 정도를 비교해보며, 나보다 앞선 사람에게만 가르침을 얻고자 하였다. 나또한 한유가 비판한 그들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공자처럼 훌륭한 성인들은 한유와 같이 예부터, 귀천을 막론하고, 스승으로 섬겨 배우고자 하였다고 한다. 이런 자세야 말로 시대의 인물로 발전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되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두 번째로 배울 점은 스승의 입장에서의 태도이다. 이 또한 제자라 하여 반드시 스승만 못한 것이 아니고, 스승이라 하여 반드시 제자보다 현명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우리에게 즉시 하도록 설명해주고 있다. 단지 삶에 이치를 깨닫는 선후가 있을 뿐이고, 종사하는 일의 전문가와 비전문가가 있을 뿐이라고 아주 명쾌한 해답을 제시해 주고 있다. 이처럼 스승의 위치에서도 자신이 모르는 부분이나 배워야 할부분이 있으면 스승의 위치에서 안주해 있는 것이 아니라, 배움의 자리에 서야함을 일깨워준다. 내가 삶에 있어서 스승의 자리에 서게 될 때, 제자 된 자에게 기꺼이 배울 점을 찾고, 나를 꾸준히 개발해간다면 함께 발전해 갈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유의 사설을 통해 배움의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나보다 어린사람과 직업의 귀천을 막론하고 배움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이 얻을 수 있는 큰 이익을 이글을 통해 전달 받았다. 살면서 배움을 부끄러워하여 손해 보았던 것이 참으로 많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