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크 플로이드의 벽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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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프랭크 플로이드의 벽을 보고
바벨탑의 전설이 있다. 태초에 인간은 말로써 모든 것을 소통했다. 인간의 그 언어능력은 신의 권위에 도전했다. 하늘에 닺는 바벨탑을 건설 함으로서 신과 동등해 지려고 했다. 이것을 안 신은 분노해서 천둥과 폭풍우로 바벨탑을 부셔버렸다. 그리고 인간의 언어를 분열시켰다. 그 사건 이후로 인간은 언어에 사물의 본질을 담을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초래되는 소통의 불가능이 시기, 다툼, 기아, 전쟁 등으로 인간을 끊임없이 얽매고 있다는 전설이다.
인간은 소통의 부재 속에서 외로운 존재이다. 인간은 외로움을 극복하려고 발버둥 치지만 그 노력은 허무하다. 이념의 벽, 개인의 벽에 가로막혀서 아무것도 할수 없다. 인간은 너무나 답답하다. 이 영화의 락 음악의 샤우팅은 마치 답답한 벽에 갖힌 자의 비명처럼 들린다. 핑크 플로이드의 벽의 영상과 음악은 매우 인상 깊었다. 한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을 음악과 영상으로만 표현하고 있다. 첫 장면에서는 인간의 전쟁과 사회적 억압 같은 문제를 다루는 줄 알았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 볼수록 인간의 외로운 내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고 느껴 졌다. 이 격렬한 락음악들은 전쟁에 대한 분노의 목소리가 아니라 인간의 외로운 비명 이였다.
현대사회는 인간의 개인성을 획일화, 전체주의 속에서 처참히 무시한다. 영화 속 아이가 성장한다. 아이의 성장을 지켜 보는 것이 조마 조마 하다. 아이에게는 아버지가 전쟁 중 사망했다는 커다란 트라우마가 있다. 하지만 사회는 아이의 상처는 안중에 없다. 획일화된 학교의 교육은 그의 상처를 감싸지 못하고 덮어 버린다. 후에 그 상처는 곪아서 터진다. 그 상처는 아이를 외롭게 만든다. 이렇게 다른 개개인이 다른 교육을 받으면서 사회 속의 괴물로 성장한다.
우리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 이런 억압이 시작된다. 교육이라는 아름다운 미명아래 우리의 사고의 팔다리는 잘려 나간다. 교복 속에 자기를 가두고 그 안에 벽을 세운다. 영화 속 차가운 콘크리트 벽을 긁어 대는 장면은 충격적 이였다. 손에 피가 나도록 벽을 문질러 보지만 대답이 없다. 사회에는 많은 사람들이 존재 하지만 사실 하나도 존재 하지 않는다. 왜냐면 우리의 개인성은 제도화된 교육에 버려두고 왔기 때문이다.
인간은 끝없는 소통의 욕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현대 사회 ‘매트로 폴리스’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은 그 소통의 부재에 무감각하다. 핑크 플로이드의 벽에서 주인공이 티비만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장면은 현대인의 모습 그대로였다. 티비만 보다 지친 주인공은 여자와 섹스도 해보고 다 부셔도 보고 소리도 질러본다. 하지만 이 목마름을 채울 수는 없다. 이내 피 흘린 손을 하고 전 그 모습 그대로 티비를 보고 있다. 사람이 많은 도시는 영화 속에서 너무 황량하다.
세상이 뒤숭숭하다. 아동 성범죄에서부터 연쇄살인까지 무서운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사회는 점점 커지면서 이런 잠재된 인간의 위험을 제어 하지 못한다. 억압된 교육 속 소통의 부재 속에서 괴물을 만들어 내고 있다. 획일화된 교육으로 제어의 범주에 인간을 놔두려 하지만 오히려 트라우마들이 그 오만함을 공격한다. 억압과 소통의 부재가 영화 내내 락이라는 장르로 비명을 지르고 있다. 이 영화를 보고 다시 생각해본다. ‘외롭고, 외롭고 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