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아이들의 무서운 동화 장화홍련을 읽고
사씨남정기를 읽다보니 어릴 적에 재미있게 읽었던 전래동화가 생각났다. 바로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자매가 바로 원통한 귀신이 되어 나타난 장화 홍련이야기였다. 가족 내에서 일어난 음모와 권선징악스토리인 점에서 두 소설이 비슷하게 느껴졌다. 장화홍련은 지금 생각해보면 동화라기보다는 전설 따라 삼천리에 더 어울릴 것 같은 이야기인데 어린시절에 동화로 읽었다는게 더 이상하였다. 이 동화는 잔인하다 싶은 정도 어린이가 읽는 동화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장화와 홍련이 살해되는 것도 그렇지만 계모의 아들 장쇠가 호랑이에게 팔다리를 잃는 대목은 이소설의 잔인함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거기에다가 이 이야기는 실제 일어났던 일을 바탕으로 지어진 것 이라하니 이소설의 어둡고 잔인한 분위기는 아무래도 꿈과 동심을 심어줄 동화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최근에는 장화홍련이라는 동명의 영화로 우리에게 더욱더 친숙해진 이야기인 장화홍련을 다시 읽어보니 어린시절에 읽던 느낌과 사뭇 다른 느낌으로 느껴졌다. 다른 고전소설과는 많이 틀린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어찌 보면 이 소설의 주제는 살인과 복수로 느껴질 정도였다. 표면적으로는 권선징악의 이야기라고 하지만 고전소설치고 권선징악이 주제가 아닌 것이 어디 있겠는가 살인과 그것에 대한 복수라니 마치 여름이면 유행하는 공포영화의 줄거리를 보는듯하다. 장화홍련은 우리나라 최초인지는 모르겠지만 가장 널리 알려진 공포소설일 듯싶다. 이 소설을 토대로 최근에는 공포영화까지 나온 것은 우연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어린시절 읽었던 어느 동화에서도 사람이 죽고 귀신이 되어 나타났던 동화는 없었던 것 같다. 이런 이야기가 동화로 읽힌다는 게 신기 할 정도이다.
이소설의 또 다른 매력은 내가 어린시절 한참 빠져있던 추리소설과 비슷한 면이다. 귀신 이된 장화와 홍련은 정부사를 통해 자신들의 억울함을 알린다. 솔직히 난 이 대목에서 장화와 홍련에게 답답하였다. 복수를 하려면 자신들의 힘으로 할 것 이지 왜 애매한 부사들을 죽이느냐 말이다. 하긴 공포영화에서도 악당이 마지막으로 죽기 전에 수많은 엑스트라들이 죽는 그러한 이치인 듯싶다. 요새 나오는 공포영화들처럼 허씨에게 나타나 직접 복수했으면 더 통쾌 하였을 텐데 그럼 진짜 공포소설이 됐을지도 모르겠다. 암튼 장화와 홍련의 사연을 들은 정부사는 그때부터 탐정이 되어 사건을 조사하고 계모를 심문하기 시작하는데 이 또한 허술하지 않을 수 없다. 마땅한 증거를 잡지 못하고 알리바이까지 있자 돌려보낸다. 결국 보다 못한 장화와 홍련의 도움을 받고서야 결국 사실을 밝혀냈으니 탐정치고는 좀 허술한 구석이 있다 조금 미흡하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고전의 추리소설 인 것 같다.
암튼 다른 고전소설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점 때문에 많이 읽힌 것 같다. 또한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자극적인 요소들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게 한 원인인 것 같다. 하지만 이 소설은 어린시절에 동화로 읽힘으로서 아이들은 계모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갖게 된다. 어린시절에 읽은 동화는 가치관형성에 많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자매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새엄마는 지금 읽어도 무서운 존재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서양이나 동양이나 새엄마라는 존재는 선보다는 악인 쪽에 가깝게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백설 공주에게 독 사과를 먹인새엄마와 아이들은 버리게 만드는 헨델과 그레텔의 새엄마 그리고 가깝게는 콩쥐를 괴롭히는 팥쥐 엄마 그리고 심지어 최근에 방영되는 드라마에 못된 새엄마까지 사람들에게 알려진 새엄마치고 착한사람은 보지 못했다. 왜 이렇게 새엄마라는 존재는 악덕하고 아이들에게는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존재로 그려지는 것일까 소설은 그 시대를 반영 한다고 하는데 이소설이 지어질 당시에 나쁜 계모들이 많았기보다는 주 독자층을 고려한 것 같다. 요새 드라마를 봐도 소재를 주위에서 찾기보다는 시청자들이 좋아할만한 특이하고 자극적인 소재를 가지고 하지 않는가 장화홍련은 이와 같은 맥락에서 그 당시 소설의 주 독자층이었던 여성들의 모성애를 건들인 여서 학대받는 아이들을 증장시키고 그에 따라 못된 계모란 존재가 등장한 것 같다.
나는 못된 새엄마들이 나오는 동화를 쭉 보고 있자니 공통점이 발견되었다 바로 무능력한 아버지라는 존재였다. 나쁜 새엄마가 나오기 위해서는 무능력한 아버지가 필수조건인 것이다. 장화홍련에서도 허씨가 장화를 모함하지만 배좌수는 양반의 체통만을 중시 하여 사건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장화를 죽음에 이르게 만든다. 무능력한 아버지와 악덕한 새엄마사이에서 아이들이 고통 받는 것이다. 그리고 나쁜 새엄마는 결국 벌을 받지만 사실 불행을 방치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아버지들은 용서 받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무관심하고 무능력한 아버지는 사실 새엄마보다 나쁠 수 도 있겠다. 장화홍련전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가 약간씩 기형적인 성격을 소유하고 있다. 구태의연한 방법인 선인 악인의 대립을 심화시킴에 의해 흥미를 유발시키려 하지만 선인 자체도 약간의 문제성이 있다. 장화홍련은 극심한 어머니 콤플렉스의 소유자, 계모는 장화홍련과 그들의 어머니에게 열등감에 빠져 전처 소생에 대한 학대를 일삼고 자식인 장쇠까지 불행에 빠뜨린다. 배좌수는 우유부단하고 무능력한인물이라서 갈등을 풀지 못하고 가정을 파탄으로 몰고 간다. 이와 같이 장화홍련전에는 개별 인물의 왜곡된 성격 때문에 인물 간에 극도의 대립을 보인다. 이 문제를 풀 사람은 배좌수 밖에 없지만 그의 성격 또한 우유부단하기 때문에 중간적 존재로서의 역할을 못하고 파란으로 몰고 갈 뿐이다.
또한 장화홍련에서는 다른 고전소설과 달리 허씨를 흉악하게 묘사하여 허씨가 악인임을 직간접적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아름다운 장화와 홍련을 착한 인물로 묘사하여 선과 악을 나누는 기준을 외양의 미추로 나누는 편견을 심어주는 것 같다.
예전에 우리들이 어렸을 때 읽는 동화들이 우리에게 잘못된 편견을 갖게 한다고 했던 책이 있었다. 그 책에서는 아이들에게 외모지향적인 가치관과 신데렐라 콤플렉스등 많은 잘못된 가치관을 심어 준다고 하였다. 하지만 그러한 동화들이 많은 부작용(?)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동화는 우리에게 착한 사람이 결국은 이긴다는 진리를 가르쳐주기 때문에 오랫동안 사랑받는 것은 아닐까 그래도 장화홍련은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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