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하고 통쾌한 교사 비판서를 읽고 - 독후감
‘발칙하고 통쾌한 교사 비판서’라는 책은 독일에 사는 네 아이의 엄마가 학부모의 입장에서 교사들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쓴 글이다. 이 책은 교사도, 학생도 아닌 어찌 보면 제 삼자인 학부모의 입장에서 교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겠다 생각해서 고른 책이었다.
이 책의 앞부분을 읽으면서 예비교사의 입장인 나로 써는 기분이 나쁘고 불쾌했다. 저자는 베듸르프티히 선생님과 트링크아우스 선생님과 같은 형편없는 교사들을 가지고 교사 전체를 싸잡아 욕을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책을 계속 읽어나가면서 학창시절 제대로 된 가르침을 실천하지 못하던 선생님을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나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학교에 잘 가르치는 교사와 못 가르치는 교사가 따로 분류되어있을 만큼 교사라는 집단이 이렇게 많이 부패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미래의 교사가 될 나에게 경계의 메시지를 남긴 몇 가지 내용을 소개하고 그에 대한 나의 생각을 밝히고자 한다.
「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학습한다는 사실이 학교에서는 전혀 이해받지 못한다. 어떤 아이는 지도가 필요하지만, 어떤 아이는 그저 경청하는 것이 최선의 학습법이다. 어떤 아이들은 새 단어를 배울 때마다 탁월한 암기력을 발휘하지만, 어떤 아이들은 철자를 대충 건너뛸 때 더 쉽게 배운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위에서 수줍은 성격의 아이는 조별로 공부해야 할 때 난감해할 수밖에 없다. 」
저자는 전체 교육제도가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와 같다고 표현한다. 프로크루스테스는 지나가는 나그네를 온갖 감언이설로 꼬여 집으로 유인한 뒤 붙잡아 침대에 누인다. 그리고 나그네의 키가 침대보다 작으면 딱 맞을 때까지 잡아 늘이고, 침대보다 길면 침대에 맞게 몸을 자른다. 아이들은 이런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와 같은 교육 행위에 따라 획일화 되어간다. 저자는 교육제도가 이러한 오명을 얻게 된 것은 교사들이 신뢰할 만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하는 교육적 책임감이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나도 그녀의 생각에 어느 정도는 동의한다. 교사라면 아이들이 배우기 쉬운 방법으로 즐겁게 가르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또한 교사로서 그가 이끄는 반 아이들을 세심히, 책임감을 가지고 살펴서 그 각자에 맞는 학습법을 알고 그에 맞게 가르치는 게 교사의 임무가 아니던가? 하지만 현실은 이상과 상당히 동떨어져 있다. 교사가 한반에 30여명 되는 아이들을 다 각자 어울리는 방식으로 학습 시킬 수 있을까? 자신의 아이가 흥미로워 하는 방식으로 교사가 아이를 학습시키는 것은 학부모의 이상이고, 30여명의 학생이 교실에 빽빽이 채워져 있는 것은 현실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교사는 나름의 중간선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 하지만 가끔 교사 때문에 어떤 과목을 좋아하기도 한다. 머릿속에 새로운 문이 열리고 새로운 전망이 열리는 것, 회색 세포들이 활동을 시작하고 저절로 질문이 떠오르는 것을 느끼면서 자신감을 촉진하는 숨어있는 욕망이 고개를 든다. 그러면 깨달음의 빛이 켜지고, 그 빛 속에서 세상은 이해할 수 있는 무엇으로 모습을 나타낸다. 이런 기적은 훌륭한 교사가 길을 닦아줄 때만 일어날 수 있다.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학교에서 그런 기적이 그토록 드물게 발생하는 것 같다. 」
나 역시도 이러한 생각을 머릿속에 품고 있다. 내가 제일 싫어하던 과목인 수학을 즐겁게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선생님 덕분에 수학이 좋았던 경험이 있다. 또한 영화‘홀랜드 오퍼스’라는 영화에서 주인공인 홀랜드는 아이들에게 음악을 흥미롭고 재미있게 가르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또한 학생들은 그를 통해서 락에서부터 클래식까지 즐겁게 배울 수가 있었다. 그는 아이들에게 깨달음의 빛을 주었고, 그를 통해서 아이들은 새로운 세계에 발을 딛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선생님들처럼 자신이 가르치는 과목을 열심히 연구하고, 아이들에게 재밌게 알려주기 위해 노력하는 선생님이 많이 있었다면 나는 더 많은 과목을 좋아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교사는 가르치지 않는다. 다만 반복할 뿐’이라는 문구가 있다. 아이들에게 더 많은 내용을 알려주기 위해 스스로 책을 찾아보는 선생님은 찾기 어려운걸까? 나도 혹시 이런 선생님이 될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과 씁쓸함이 들게 된다.
「 열린 수업 원칙의 가장 좋은 점으로 꼽을 수 있다는 것은 스스로 결정하는 학습으로 학생들을 일찌감치 해방시켜주는 것이 그만큼 교사의 부담을 대폭 덜어준다는 사실이다. 학생들이 저희끼리 수업의 일부를 준비하여 진행하고…교사는 학생들 틈에 아무 데나 앉아 있거나 창가에 서서 진행 할 수 있고… 」
저자는 요즘의 교수법을 좋은 시각으로 보지 않는다. 열린 수업이라 불리는 교수법은 선생님들에게 쉴 틈을 주는 교수법이며, 아이들에게 필요한 지식을 전달하지 않는 수업이라고 본다. 또한 놀이 위주의 수업은 아이들에게 공부는 뒷전이라는 생각을 심어준다고 말한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에도 이 열린 수업이 유행했었다. 모두들 책을 들고 교정에 자리 잡고 책 읽는 시간을 가졌고, 가까운 산에 등산하면서 자연탐사를 했었다. 물론 어떤 선생님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이러한 수업을 진행했느냐에 따라서 수업의 질과 아이들이 배운바가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겪은 열린 수업은 그녀의 생각과는 다르다. 책상에 멍하니 앉아서 선생님이 설명해 주는 내용을 그냥 받아 적고 듣기보다는 직접 만져보고 관찰해보면서 또는 친구들과 토론해가면서 공부했던 것이 기억에 남고 무엇보다도 나의 흥미를 자극했었다. 학부모의 입장에서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 내내 놀다 온 것만 같아 속이 쓰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초등학생 아이들에게 많은 양의 지식을 담아주는 것만이 다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러한 수업진행으로 아이들이 지식 이상의 더 많은 걸 느끼고 깨닫고 또 무엇보다도 흥미를 갖게 된다면 이 수업은 그 나름의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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