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문 달과 6펜스
용기. 나는 지금의 평온한 내 삶의 틀을 깨고 무언가를 찾기 위해 나설 수 있을까.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 해도, 나는 과연 삶의 틀을 내 손으로 직접 깰 수 있는 용기가 있을까.
서머셋 모옴의 장편소설 ‘달과 6펜스’에서의 주인공 스트릭랜드는 중년의 틀에 박힌 일상을 직접 깨 버리고 자신만의 가치를 찾아 떠나게 된다. 그것은 그림이라는, 지금까지 자신이 일구어낸 모든 확신 있는 것들과는 달리 불확실하고 미래가 불투명한 것으로의 매우 무모한 모험이었다. 중년의 남자에게 아내와 두 자녀가 달린 가정과 증권회사라는 번듯한 직장을 모두 버리고 맨몸으로 어딘가로 떠나라는 것은 사형선고와 다름이 없지 않을까.
하지만 스트릭랜드는 조금의 주저도 없이 모든 것으로부터 떠났고, 단 한번도 그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았다. 왜 가족들을 버렸느냐고 물어보면 별 감정 없이 그림을 그리면서 살고 싶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어떻게 보면 여태 자신이 이뤄 놓은 것에 대해 애착이 없는 것으로도 볼 수 있고, 그의 행동들을 보면 실제로 그랬던 것 같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그림에 대한 열정이 앞섰다고 하는 게 옳을 것이다. 그의 그림에 대한 열정은 그의 두 눈과 귀 정도는 쉽게 가리고도 남을 엄청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성격은 매우 독특했다. 매우 이기적이었으며, 냉정했다. 남을 전혀 배려할 줄 몰랐으며, 심지어는 자신을 인정하고 매우 친절하게 대해준 거의 유일하다고 할 수 있는 친구마저도 무시하고 배신했다. 그림의 영감과 소재를 얻기 위해서는 자신이 신세를 지고 있는 친구의 아내와 불륜을 저지른다 해도 마다하지 않을 정도니, 사람의 됨됨이는 정말 형편없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의 입장에서 다시 생각해 보면 그리 보이는 것만큼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우선 가정을 떠나면서부터 항상 궁핍한 생활을 해 왔다. 그림 그리는 도구와 재료들을 사기 위해 거의 가진 돈의 모두를 투자 했으며, 그 이후에는 매우 넉넉지 못한 생활을 하며 간신히 생계유지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본국에 남아있는 아내에게 짐이 될 만한 행동은 하지 않았다. 그는 병이 나서 생사의 갈림길에 서게 되는 상황에 이르러서도 영국에 남아있는 가족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요구한 적이 없다. 또한 그 당시 가까이 살던 친구 스트루브에게 역시 마찬가지다. 친구 스트루브가 발견해서 자신의 집으로 데려 오기까지 그는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구하지 않았다. 스트루브를 무시하는 것도 그의 입장에서 보자면 능력이 없는 것을 욕하는 당연한 행동이라 생각한다. 스트루브의 아내도 또한 그렇다. 자신은 그림을 그릴 소재로서의 그녀를 원했지만, 그녀는 그에게 사랑을 요구했고 결국에는 자살에 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스트릭랜드로서는 친구 스트루브나 그의 아내나 모두 그들 자신의 잘못에 의한 것이라는 생각인 것이다. 자신만의 기준과 철학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절대 그 자신만의 기준을 어기지 않는다. 그림에 대한 열정과는 대조적인, 냉소적이고 차갑게 사람들을 대하는 그 성격이 이 스트릭랜드라는 인물에 더욱 빠져들게 하는지도 모른다.
그는 그림에 추구했던 만큼 최고의 그림을 그리길 희망했다. 그리고 타히티섬에 들어가 은둔하며 그림을 그리던 노년의 어느날, 그는 실명된 상태에서 최고의 걸작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는 곧 타히티 섬에서 만난 그의 새 아내에게 그 최고의 그림을 불태우라고 말한다.
인간의 욕망이란 끝이 없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것에 집착하는 것이 인간이기에 스트릭랜드는 그의 그 최고의 작품조차도 오래가지 않아 최고의 자리에서 물러날 것이라 여겼던 모양이다. 무엇이든 계속 보다보면 단점이 보이기 마련이고, 그 순간 그 단점이 보인 작품은 이미 최고의 자리에서 물러나 있는 것이다. 왜 스트릭랜드가 그 작품을 불태우라고 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는 아마도 자신의 최고의 작품이 최고에서 내려오는 것을 두고 보지 못해서였을 것이다.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