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루쉰 무덤 줄거리 ★ 루쉰 무덤 감상문 ★ 루쉰 무덤 독서감상문
루쉰이 세상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그리고 그 시절 서양 사상, 과학, 철학, 역사 등 고전들에 대한 독서는 그의 세계 인식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 하는 점은 ‘무덤’에서 여과 없이 나타난다.
‘무덤’의 내용에는 수많은 중국의 고전들이 인용되는데, 이는 ‘자신의 언어’로, 제국의 힘을 이룬 서양의 역사와 철학, 근대의 과학 기술의 발달에 대하여 자신의 시대가 속한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서구의 강력한 힘은 어디로부터 기원하는 것인지에 대해 고민한 흔적들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껍질을 깨고 성숙하는 데 중요한 자양분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행위들은 진지하게 중국을 사유하는 시간들이며, 전혀 다른 세계 역사의 구도를 공부하며 철저하게 주입되어진 중화의 틀을 벗고 자기 밖에서 자기를 보는 안목을 형성하는 시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작업은 철저한 ‘자신의 깨어짐’의 연속을 수반하는 것으로 자신과 자기를 구성하는 과거를 부정하는 엄청난 작업인 것이다.
모든 사유와 그 집적으로서의 사상은 현재라고 하는 순간을 지반으로 삼아 자신을 형성한다. 그렇기에 사상가에게 있어서 자신이 서 있는 현실 지반에 대한 바른 이해가 가장 선행되어져야 함은 분명하다. ‘옛 근원에 대해 잘 아는 자는 마침내 미래의 샘물과 새 근원을 찾게 될 것이다.’ 의 초두에 나오는 인용은 루쉰에게 있어서 고전 독서의 명확한 이유를 설명하는 문구로 여겨진다. 이러한 토대를 바탕으로 루쉰의 독서는 중국에서 벗어나 세계로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루쉰의 사상이 성장하기 위해서 거쳐야 할 자연스러운 사상적 확장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렇기에 웅대한 가슴을 지닌 대문호가 자신의 물리적 시간과 공간을 죽이고, 역사의 시간과 사상의 시간으로 그리고 세계라는 공간으로 나와 전하는 메시지가 궁금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이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루쉰이 중국의 오랜 글쓰기 전통인 ‘우언(愚言)’의 변용된 형태를 빌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언’이라는 것은 우선 어떠한 사물, 사실을 들어서 ‘앞선’ 이야기를 구성하고 이 ‘앞선’ 이야기를 설명의 틀로 삼아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는 글쓰기 방법이다. 물론 ‘앞선’ 이야기의 소재에는 제한이 없고, 하고 싶은 이야기에 잘 부합되며 글의 완성도를 높이는 곳에 초점이 맞춰지면 될 것이다. 이것은 루쉰이 접하는 일상으로부터 글을 시작하고 그것을 통해 중국의 사회, 그 속에 내재된 정신을 구현하는 오랜 관념적 사유의 근본을 캐내며 또한 바로 그 일상으로부터 시작해서 중국 사회와 중국 인민들에게 메시지를 던지는 것으로 사유의 확장, 발전을 보여준다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는 마치 성서 속에서 예수가 유대 백성에게 천국의 복음을 전할 때 일상의 가장 흔히 접할 수 있는 것을 비유의 소재로 사용하여 설명하는 것과 흡사하다.
모든 제국주의 시대의 식민지 지식인들이 그러하였던 것처럼 루쉰의 글쓰기 역시 두 가지 차원에서 두 개의 상이한 대상을 향해서 펼쳐지고 있다. 한 대상은 제국주의 열강이고 다른 하나는 계몽의 대상으로서의 중국 인민이다. 루쉰의 글이 당시의 지식인 사회의 쇄신을 통해, 중국 인민 계몽을 위한 것에 목적이 있었다면 우리는 이 목적이 구체적으로 그의 글 속에서 어떻게 문제의식으로 표출되고, 어떠한 행동으로 드러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여기서 보고자는 ‘계몽’이라고 하는 용어의 정립이 중요한데, 왜냐하면 ‘계몽’이란 용어는 근대의 부산물이며 근대 계몽주의자들이 보여주는 것과 루쉰의 태도는 다르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루쉰이 생각하는 중국의 변혁이 단순한 외적 근대의 표방이 아니라 자신까지 아우르는 스스로의 존재와 사유의 기반이 되는 ‘중국’이라는 자기 사유의 토대를 향한 철저한 제반성에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포함한 중국 인민에 대한 자기반성을 촉구하고 그 연장선에서 비판적으로 외부를 수용하는 것, 이것이 루쉰의 글쓰기를 더 정확하게 표현하는 말이 될 것이다.
결론은 ‘무덤’에서 보이는 루쉰의 태도는 비관적이며 관조하는 것은 아니며, 자기 속에서 습득된 서구의 근대를 음미하면서 중국적 근대의 재창출을 꿈꾸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변혁의 토양을 중국과 서구 그 어느 것에 치우침 없이 모두를 아우르는 자유로운 수용의 자세로서 하나하나 그 해답을 찾아나가고 있는 것이다.
- 특히 인상을 준 작품들에 대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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