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과교육 - 굿 윌 헌팅
굿 윌 헌팅 (Good Will Hunting)
대학에 와서야 영화를 보기 시작했던 나는, 사실 ‘Good Will Hunting이라는 영화가 있다는 것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사실 알았다고 해도 특수효과가 작렬하는 액션영화나 멜로영화들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런 영화는 빌려서 볼 생각도 전혀 하지 못했을 것이기도 하다. 이런 장르의 영화를 처음 본 것이나 다름없어서 한 번에 이렇게 정의한다면 우습지만, 감상의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영화, 그냥 영화 감상자로서도, 예비교사로서도 느낀 점이 많았다.
주인공 ‘윌’은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소년이 아니다. 잦은 입양과 양부모의 폭행에 사회 반항적인 기질이 다분한 아이다. 폭행과 절도로 수 차례 입건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감출 수 없는 천재성은 그가 청소하는 MIT대학교에서 아무도 풀지 못한 수학 문제를 풀어냄으로써 드러나게 된다. 사실 윌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천재이지만, 어렸을 때의 불우한 가정 환경이 그를 제도적인 배움의 길로 이끌지는 못했을 뿐이었다. 불우했던 어린 시절 경험들로 인해, 윌은 자신의 천재성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자신의 주변 사람들을 경계하고 세상을 경계하면서 바라만볼 뿐 세상에 뛰어들지는 않는다. 상처를 마음속에 간직한 채, 머리는 비상한 천재지만 정신은 아직 사회화되고 성인화 되지못한 서투른 청년으로 자라나 버린 것이다.
이렇게 방황하던 윌은 폭력사건에 휘말려 들어 감옥에 가게 될 상황에까지 처하게 된다. 그러나 자신의 천재성을 알아차린 램보 교수 덕분에 감옥에 가지 않고, 심리치료 목적으로 여러 심리학자들을 만나게 되다가 심리학 교수 숀을 만나게 된다.
교대를 다니고 있기 때문일까, 가장 집중해서 보게 되었던 게 이 영화에서 나오는 두 명의 저명한 교수들의 의견대립이었다. 둘 다 윌에게 도움을 주고, 그를 훌륭한 인재로 키우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것을 이루는 과정과 방식은 상이하다. 역시 아무래도 바람직한 쪽으로 보이는 것은 내면의 진정한 자아를 꺼냄으로서 자기가 갈 길을 스스로 결정하도록 도와주려는 숀 맥과이어 교수이다. 그렇지만 저번 레폿을 쓸 때도 느꼈듯, 역시 나는 공리주의자인 것인가 보다. 내가 숀 맥과이어 교수처럼 정신과에 능통한 이가 아니었다면 나도 당연히 제라드 랭보 교수처럼 윌의 천재성을 하루라도 빨리 개발해 내는 것이 전체 인류차원에서도 이익이라고 생각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윌은 숀의 방식을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친구들이 생일 선물로 준 “ugly”한 자동차를 타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찾아 떠난다. 자신의 상처를 극복해 낸 것이다.
이렇게 바람직하고 아름다운 결말은 좋았지만, 어떻게 보면 공리주의적 입장인 랭보 교수도 십분 이해할 수 있는 나는 ‘만약, 그가 수학 교수 랭보의 방식을 받아들였다면 어떤 삶이 펼쳐지고, 어떤 인물이 되었을까?’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사람은 평생을 걸쳐서 배움이라는 단어와 함께한다. 혼자가 아니라 공동체를 이루면서 사회라는 테두리 속에서 사회성을 학습하는 사회적 동물이다. 호기심이 많고, 보다 더 좋고, 보다 더 나은 것을 추구하고 갈망하는 것은 모든 인간들에게 나타나는 공통된 특징들 중 하나이며, 이러한 특징덕분에 인간을 끊임없이 배우고 알아나가며 발전하는 것은 아닐까. 그가 자신의 천재성을 발휘할 수 있는 좋은 가정환경에서 자라났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이미 이렇게 된 거 수학연구에 몰두했다면 거기서 또 삶의 즐거움을 느끼면서 스스로의 상처를 극복할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유리 상자 안에서 세상을 훤히 내다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알지만, 직접 경험하기는 두려워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은 채 그 안에 갇혀 사는 윌. 그리고 그에게 자아를 일깨워주고, 사람 사이의 사랑이 무엇인지 가르쳐준 스승 숀. 이 영화를 보고, 아니 정확하게는 숀 맥과이어 교수의 인간애 가득한 치료를 보고, ‘나는 앞으로 만날 나의 학생들에게 어떤 교사가 되어줄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교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한 학생이 촉망받는 인재가 될 수도,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말 교사가 아이를 두 손 안에서 기르는구나 하는 사실에 두려움마저 느껴지기도 했다. 숀과 윌은 스승이 제자를 가르치고 주입시키는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었다. 그 둘이 서로를 치료하며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은 감동을 넘어서 나에게 내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까지 주었다. “Its not your fault!" 숀 교수의 절박한 외침은 지금까지 내 마음 속에서 메아리 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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