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칼의 노래 를 읽고
이 책을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 나는 내가 생각하고 책에서도 읽을 것이라고 기대해왔던 이순신 장군과는 다른 인물을 마주해야해서 조금 놀랐다. 이순신의 위인전이 아니기 때문에, 어릴 적부터 시작해서 삶을 마감할 때까지를 시간 순으로 읊어주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시점이 이순신이 고문을 당하고 다시 백의종군하게 된 때일 것이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그 동안 ‘칼의 노래’라는 이름은 많이 들어보았으면서도 그 내용에는 정작 관심가지지 않았던 나를 탓하며 붙잡고 계속 읽는 수밖에 없었다. 내가 그동안 이순신 장군에게 갖고 있던 이미지는 광화문 앞에 세워져있는 위엄 있는 동상이나 100원짜리 화폐에 새겨진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가며, 특히 선조에게 핍박받는 이순신 모습을 계속 보면서 느낀 것은, 이순신이 칼레의 시민과 비슷한 모습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로댕은 그의 작품에서 칼레의 시민들을 영웅으로만 묘사하지 않는다. 그는 칼레의 시민들의 인간적인 면모에 더욱 집중했다. 자신이 자발적으로 적에게 나아가는 것임에도 그 속에 필연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생에 대한 열망, 두려움, 고뇌…. 이순신은 이 책에서, 적진으로 나아가는 것에 두려움을 느낄 줄 모르며 맹렬하고 용감하기만 한 모습은 아니다. 그는 ‘사각사각사각’하는 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적들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날카로운 모습을 보이기도하고, 아들 면과 어머니의 죽음에 슬퍼하며, 백성들을 두고 떠날 수밖에 없는 것에 가슴 아픈 안타까움을 드러내기도 한다. 때문에 더욱 이순신의 인간적인 면모와 그의 감정의 흐름에 집중하며 읽을 수 있었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집중하게 되는 관계는 단연 이순신과 선조였다. 맨 처음을 그렇게 시작하기도 하고, 마지막에 이순신이 죽으러 사지에 가게 되는 이유가 선조 때문일 것이라고 나는 추측하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선조는 책의 시작부터 말미에 이르기까지 시종일관 정말 너무하다. 이순신은 선조를 싫어했을까, 그래도 임금이라고 충성심은 있었을까? 그래도 확실히 이순신은 선조가 자신을 죽이고 싶어 한다는 것은 알았던 것 같다. 그러니까, 마지막 전투에 나가면서 죽을 것을 다짐했고 다시 돌아오려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어차피 돌아오더라도 자신은 선조에게 죽임을 당할 것을 미리 알았을 거다. 이렇게 생각하니 이순신의 운명이 가혹하다. 그는 썩어 기울어져가는 조선에 누구보다 충직했고, 나라를 위했고, 손수 백성들을 지켰고, 적들을 물리쳤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선조의 의심과 모진 고문이라니. 지금에 살고 있는 나는 선조의 사정은 잘 모르지만, 선조는 이순신을 더욱 아꼈어야 했다. 그는 자신의 충직한 신하를 더욱 믿었어야 했다. 마지막에는 선조와 이순신이 결국은 서로를 믿지 못하고 반목하게 된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 선조가 더욱 이순신을 믿고 아꼈더라면 어땠을까. 역사에서 어땠을까, 하고 추론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지만, 선조 시대에는 특히 안타까운 점들이 많은 것 같다. 선조의 아들 소현세자와 관련된 부분에 있어서의 추측도 그렇다. 선조는 정말 소현세자를 미워했을까? 그가 정말 자신의 왕위를 노리고 있는 거라고 의심했을까? 이순신의 경우와 비교해 보면, 선조는 의심이 많은 왕이라서, 있을 법한 일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사람을 쓰는 데 있어서 믿음을 중시하라는 옛 말이 이 순간 정말 와 닿았다. 더불어 인재경영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했다. 기업이 행하는 경영에 있어서 인적자원관리는 분명 중요한 부분일 것이다. 그들은 어떻게 봤을 때 앞으로의 수익을 창출하는 데에 있어 관리가 매우 중요한 하나의 자원이고, 따라서 기업은 그들을 적절하게 다루어야 한다. 하지만 선조는 그러하지 못했다. 그의 신하를 끊임없이 의심했고, 전쟁 상황 중에서 이순신이 공을 부풀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 자신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며, 또 백성들이 이순신을 더욱 믿는 것 같아 지자 그것에 마저도 시기하고 질투했다. 이것을 보며 느낀 것은, 사람에게 직책을 맡기면 그를 믿고 지켜봐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의심하지 않고, 그의 공을 적절히 치하하고, 또 힘든 상황에서는 격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선조가 전쟁 상황 속에서 남쪽에 있는 이순신의 상황이 별반 다를 바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이렇게 힘들게 있는데 이순신만 풍요롭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여 그에게 무기와 식량을 보내라고 명령하는 부분이, 치졸하다고 느껴졌다.
이렇게 선조와 이순신의 관계는, 이순신과 김수철의 관계와 대조되는 것 같았다. 선조와 이순신은 결국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는 상황에,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죽이려 한다고 생각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이순신과 김수철의 관계는 그와 같은 삭막한 관계가 아니었다. 그들은 서로의 건강에 대해 염려하고, 앞으로의 삶에 있어 전쟁 중 동료애를 나누는 사이었다. 이순신은 김수철을 신뢰하여 일을 맡길 수 있을 정도였고, 김수철은 이순신에게 거듭 죽지 말고 오래 살아 달라며 간청한다. 김수철은 이순신을 지극히 챙기며 공경하는 것처럼 느껴졌는데, 이러한 관계가 부럽고, 이런 신뢰를 쌓을 수 있는 이순신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내게 이에 버금가는 신뢰 관계가 있는 사람이 있는지 고민해 보았다. 하지만 가족처럼 특수한 경우가 아니고서야 이런 사람과, 신뢰 관계는 내게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한편으로, 이렇게 두터운 신뢰 관계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평탄한 시대와 삶이 아니라, 저런 격전의 상황이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기도 했다. 어려움이 있고 또 그 어려움을 함께 해쳐나간 상황이기에 감춰둘 수 없는 서로의 인물됨을 알게 되고 그를 바탕으로 신뢰를 형성할 수 있었을 거라고 추측해 본다. 이런 생각들을 거듭해 오면서 나는 늘 내 주위 사람들이 힘들 때 옆에 있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내 평범한 일상에 치이는 삶을 살고 있으면서, 그런 다짐은, 다짐으로서는 쉬우면서도 막상 행하기는 어려운 것임을 매 순간 느끼고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서로의 안부 묻기를 일상화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시간이나 요일을 정해두고 안부를 묻는 것이 너무 형식화되고 의무화되는 것 같아서 꺼렸었는데, 점차로 생각이 바뀌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시간을 정해두고 안부를 묻더라도, 그들에게 연락하는 그 마음이 의무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날짜를 고정해 두는 것에서부터 그 사람들에 대한 마음을 바로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어져 갔다. 사람들을 소중하게 여길 줄 알고, 애정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는 모습과 태도를 지녀야겠다.
이 책은 전쟁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때문에 계속 전쟁 상황과 마주하는 주인공을 두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는데, 사직과 조정 대신들에게는 분노를, 백성들에게서는 안타까움을, 그리고 이순신을 두고서는 안타까움과 그의 비장함을 동시에 느꼈다. 먼저 사직과 조정 대신들은 그저 한심하기만 하다. 내가 선조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형성하게 된 부분이기도 하다. 선조는 정말 여러 곳에서 그의 무능을 드러낸다. 과연 선조가 진짜 왜군이 쳐들어 올 것을 몰랐는지, 정말 몰랐다면 어찌 모를 수 있었는지에 화가 난다. 선조는 임금으로서 적의 침략으로부터 백성들을 보호하고 대신들을 잘 다스릴 책임과 의무가 있다. 하지만 그는, 조선의 임금으로서 그 자신도 매우 치욕스러운 일이긴 하였을 테지만, 백성들을 두고 의주로 피난을 간다. 때때로 이순신을 의심하고 그는 잘 지내고 있으며 자신의 명을 거역하고 나라에 반기를 드는 것이라 생각하면서. 이 때 명국은 조선을 도우러 군사를 파병했다고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은 하나 없다. 오히려 조선을 돕는다는 명분하에 조선 백성들의 식량을 수탈하고 백성들을 억압할 뿐이다. 이런 명국을 대하는 임금의 태도가 나는 더 기가 막혔다. 그런 명국의 신하에게 온갖 예를 다하며, 나라의 지원 없이 힘들게 전투를 이끌어 나가고 있는 이순신에게 오히려 명국에 숙이고 들어가라 이르다니. 이런 선조를 어떻게 감싸줄 수 있을까 싶다가도, 오히려 조정 대신들에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였던 왕을 생각하면, 인간적으로는 어쩌면 그럴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왕의 무게감에 그는 정신을 놓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는 자신의 의무를 다했어야 했다. 공정하게 대신들을 가려내어야 했고, 전쟁 중에 호의호식하는 명국 군사들이 아니라, 그들에게 핍박받는 자신의 백성들을 더욱 생각하여야 했다. 그리고 자신이 맡은 바 소임을 다해야 한다는 교훈을 다시 떠올렸다. 현대에 적용한다면 직업윤리와도 연관시켜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시대에는 자신의 직업을 돈을 벌기 위한 도구로 전락시켜 진정한 직업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렇게 흔들리는 직업윤리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고 고통 받을 수 있음을 지각하고, 사람들이 좀 더 자신의 직업에 윤리의식을 가지고, 또 사랑했으면 좋겠다. 어쩌면 선조는 자신의 백성들의 핍박을 조금이라도 줄여주기 위해 명국 군사들에게 극진한 예를 갖추었을지도 모르지만, 그 당시 유교의 관점에서 명국에 대한 사대의 예는 너무 지나쳤던 것이 아닐까. 영화 광해를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사대의 예와 같이 본질을 헷갈리는 일들이 가끔 발생하는 것 같다. ‘진짜’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모르고, 그저 관습에 따라 사는 것은 허망한 일이다. 사람들은 모두 각자 자신에게 진정으로 가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다시 되물어야 한다. 국가에게 가장 가치 있는 일이란, 모든 국민이 자신의 몫을 다하며 행복하게 사는 것일 테다. 어찌 다른 나라를 섬기는 일을 더 우위에 놓을 수 있겠는가. 나에게 진정으로 가치 있는 일은 어떤 것인지 스스로도 자문해 봐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전쟁 상황 속에서의 이순신에게 안타까움과 비장함이 동시에 느껴졌는데, 안타까움은 백성을 생각하는 그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고, 비장함은 백성들이 안타까우면서도 나라의 존망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들을 두고 떠날 수밖에 없는 그의 운명에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그가 아무리 나라를 위해 백성들을 어쩔 수 없이 두고 갈 수밖에는 없음을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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