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목포 답사를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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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기행문 목포 답사를 다녀와서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목포 답사를 다녀와서
내가 듣는 교양 수업 중에 ‘전라도의 말과 문화’라는 수업이 있다. 강의 이름 그대로 전라도의 말과 문화를 배우는 수업인데 교수님께서 이번에 중간고사 대체용으로 전라도를 탐방해서 답사보고서를 써오라는 과제를 내주셨다. 과제를 받고 나는 잠시 고민했다. 전라도의 어디 지역을 가볼까. 평소에 가고 싶었던 보성을 갈까 땅끝마을 해남을 갈까. 그렇게 다른 지역들을 조사하던 중에 머리에 번뜩이는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내가 현재 살고 있는 지역, 목포였다. 생각해보면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지역이 어떤지, 이곳의 문화재는 어떤 것들이 있으며, 또 유적지는 몇 개인지 따위도 모르면서 다른 지역을 조사한다는 것은 조금은 역설적인 면이 없지않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나의 고향, 나의 삶의 터전인 목포에 대해서 답사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답사에 앞서 인터넷으로 사전조사를 하기위해 시청홈페이지를 들어가 보고는 나는 너무나 놀랬다. 나처럼 목포에서 거주하는 사람이 아닌 타 지역의 사람이 봐도 자세히 알 수 있는 문화재 지도와 또한 그것의 유래까지도 한 눈에 다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거기서 하나하나 클릭해가며 나는 내가 평소에 가보지 못했던 곳과 유명한 곳을 혼합해서 답사 일정표를 짜기 시작했다. 먼저 아침 10시쯤에 목포 문학관과 중요무형문화재전수교육관을 거쳐 목포시내에서 점심을 먹은 후 2시쯤 유달산으로 가서 노적봉과 이난영 노래비를 보고 루미나리에 거리를 거쳐 시장에서 사투리채록 후 5시에 시민문화체육센터에 도착하여 국악공연을 하나 보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방문할 곳들에 대한 자료를 미리 출력해 놓고 몇 가지 필기도구와 함께 가방을 싼 다음, 마치 소풍에 가는 아이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목포 사투리에 대하여
전라도 방언이래도 각 지방마다 다르다. 전북지방의 남부 산간은 경상도 말에 가깝고 군산 익산 족은 표준어에 충청도식 발음이 섞여 있고 전주지방은 표준어에 가까우며 목포지방은 억센 엑센트와 말투가 특별하다.
전라도, 특히 내가 살고 있는 목포가 속해 있는 전라남도 지방은 북도보다 더욱 화려한 문체를 자랑하는데, 대게 광주, 영광, 목포, 순천 및 여수, 구례 방언정도로 나뉜다고 한다. 먼저 ‘씻어’를 ‘씿어’로 발음한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인데 여수 쪽으로 내려가면 ‘씨꺼’로 발음하고, ‘~잉게’ 인 전북방언이 여기서는 ‘~인께’ 가 된다. ‘나는 안 그랬당께’를 예로 들 수 있겠다. ‘~그려나’ ‘~혀’ 이런 것은 옛날에는 많이 썼지만 요즘 세대(나를 포함한)에 와서 흔히 나타난 새로운 전남방언으로 ‘~그랬시야’, ‘~그래야’, ‘~해야’ 등 끝에 ‘~야’를 붙인다. 특히 광주나 목포지역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리고 목포로 오면 ‘배워’를 ‘배와’라고 하는데 고어의 현상이 두드러짐을 나타낸다. 가을은 원래 세모모양 반시옷이 을의 이응자리에 있었지만 전라도에서는 이게 이응이 아니라 시옷으로 변해 ‘가슬’이라고 한다. 그리고 북도나 충청도에서 하는 ‘허다’라는 말을 ㅓ=>ㅡ or ㅜ의 변화에 따라 ‘흐다’라고 한다. ‘~뜨리다’, ‘~트리다’를 ‘~치다’로 발음하는데 ‘떨어트리다=떨치다’, ‘흩트리다=흐치다’ 가 대표적인 예다. ‘아까’는 ‘아까침’에 라고 하며 ‘뿌리다’를 ‘찌클다(단 액체일 경우에만, 가루일 경우는 뿌리다)’, ‘묶다’는 ‘쨈매다’, ‘풀다’는 ‘끌르다’ 등이 있다. ‘~담서’ 가 ‘~함씨롱’, ‘~함시로’ 정도로 더 변화한다. 그리고 ‘너네’가 ‘느그’가 되며 니기가 되기도 하며 ‘느그 엄니 저그 계신다’ 로 번역될 수 있다.
또, 전라도 사투리는 비유와 은유가 적당히 섞어져 있어 수식어가 많은 편이며 바다와 인접한 곳은 다소 억세고 거친 발음이 생겨나는데, 특히 목포는 바다와 인접해 있기 때문에 더욱 억양이 세어 보이는 것 같다.
목포의 유래
부족국가시대에는 마한에 속하였고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물아혜(勿阿兮)군이었으며 통일신라시대에는 무안군으로, 고려시대에는 물량군(勿良郡), 또는 무안군으로 불리웠다. 이러한 이름들은 지금의 목포시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무안군과 함께 더불어서 불렀으며, 오랜 세월동안 이 고장의 행정구역은 여러 번 바뀌었으나 조선조에 이르러 나주목의 속현으로 이어왔다.「목포」라는 이름은〈고려사〉라는 역사책에서 처음 나오는데, 땅이름의 유래는 정확하지 않다. 나무가 많은 포구라 하여 목포(木浦)라고 불렀다고 하고, 목화가 많이 난다하여 그렇게 불렀다는 설도 있으며, 서해로부터 육지로 들어가는 길목이라고 하여 목포라고 불렀다고 하는 등의 주장이 있으나 이는 모두 근거가 없는 내용이다. 조선 세종21년 1439년에는 「목포만호」가 설치 되었으며, 임진란 때에는 목포 고하도에 이순신장군이 친히 수군진을 설치하여 108일 동안 머물렀고, 1897년 10월 1일 목포항은 개항 하였다.
그후 1910년 일제가 국권을 빼앗던 해의 10월 1일「목포부」로 고쳐 부르게 되었으며 1932년에는 무안군 일부지역을 더하여 8.6㎢의 도시면적에 인구 6만인 전국 6대 도시의 하나로 성장하여 一黑(김), 三白(면화, 쌀, 누에고치)의 집산지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