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상 찔레꽃 독후감 그래도 세상 살만하지
그래도 세상 살만하지?
- 정도상, 찔레꽃 -
-그 여자가 사는 법-
소설의 주인공인 충심은 평범한 처녀이다. 그 나이대의 처녀들이 그렇듯 충심역시 정해진 미래와 사랑에 대한 고민을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가난하긴 하지만 우리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웃의 삶이다. 이런 충심의 인생이 갑작스럽게 엉키게 된 것은 남양의 이모 집으로 떠나고 나서 부터다. 여름방학을 맞아 남양에서 중국물건을 사다 팔아보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희망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남양의 사정역시 여의치 않았다. 자신을 도와줄 거라 생각했던 이모의 집은 빚더미에 올라앉아있고, 사려고 했던 아동복은 시세차이가 얼마 나지 않아 이문이 남지 않는다. 그런 충심에게 조선족 아낙이 제안하는 두문에서의 삶은 꿈(희망)과 같은 것이다. 결국 충심과 이종사촌인 미향은 두문으로 떠나기로 결심한다. 중간에 이것이 ‘인신매매’ 임을 알게 되지만 상황은 충심에게 선택권을 주지 않는다. 유일한 탈출구였던 재춘 오빠의 도움도 충심에게 닿지 못하고, 몇 발의 총성과 함께 안개처럼 사라져버린다. 여기서부터 충심의 유랑민의 삶이 시작된다. 두만강을 건넌 충심일행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갑봉과 춘구라는 전문 인신매매범들 이었다. 미향과 충심은 손때가 타지 않은 새가이(처녀)라는 이유로 비싼 값에 해림의 신흥촌과 광명촌으로 팔려간다. 그곳에서의 일 년 남짓한 삶은 지옥과도 같은 것이었다. 젊은 남편과 시아버지에게 번갈아가며 유린당한 미향은 남편과 시아버지의 칼부림을 보고 임신한 채로 미쳐버리고 만다. 몸은 지켰지만 충심역시 상습적인 폭행과 희망 없는 삶속에서 절망한다. 그런 이들에게 갑작스러운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이가 바로 춘구였다. 춘구의 도움으로 충심과 미향은 탈출하여 기차에 오르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삶에 지쳤던 미향은 열차에서 아기를 쏟아내며 세상을 떠난다. 그 자리에서 공안에 붙들려간 충심은 갑봉의 도움으로 선양에 안마사로 정착한다. 이 정착은 불안정한 정착이다. 호구라고 불리는 신분증이 없는 상태에서의 정착은 충심의 하루하루를 불안 속에서 살게 만든다. 미나라고 이름을 바꾼 충심이 품는 유일한 희망은 열심히 돈을 모아서 한국으로 건너가는 것이다. 그러나 힘들게 모든 돈을 빌려준 김화동과 최옥화는 돈을 갚지 않기 위해 충심을 탈북자로 신고한다. 겨우 뿌리 내렸던 충심의 삶은 또다시 깨어져버리고 만다. 결국 한국행을 결심한 충심은 선교사 일행에게 거액을 지불하고 험난한 월경 길에 오른다. 한국에 도착한 충심은 희망에 부푼다. 이곳이라면 자신을 받아줄 것 같다. 운명을 자신의 손으로 정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제는 미나에서 은미가 된 그녀의 삶은 여전히 뿌리내릴 수 없는 부평초와 같다. 같은 민족임에도 탈북자를 바라보는 우리의 싸늘한 시선은 은미를 노래방 도우미, 매춘부로 전락시킨다. 정착금마저 월경을 도운 선교사일당에게 빼앗겨버린 은미의 삶은 더 이상 나빠질 수 없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은미는 오늘을, 그리고 내일을 살아가기 위해 밥을 우겨넣는다.
-인간성의 상실-
필요한 것은 사랑이 아니라 신분증이었다. 중국 공안에 끌려가지 않을 신분증만 있다면 평생 사랑 없이 살아도 좋았다. -p.154-
사람답게, 나이에 어울리게 살고 싶었다. 좋은 남자를 만나 사랑을 하고, 가족들과 함께 즐겁게 저녁을 먹고, 예쁜 옷을 입고, 곱게 화장하고, 동무들과 밤마실을 다니며 수다 떨고 남의 흉도 보면서, 어린시절 꿈꾸던 것들을 위해 열심히 살며, 무엇보다도 신분증 없이 떠돌지 않으며, 아무리 늦어도 돌아갈 집이 있는 삶을 충심은 간절히 소망했다. 그러나 충심의 그 작은 소망은 모조리 금기에 속했다. -p.157-
조선족과의 혼인을 통해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얻은 충심은 그곳에 뿌리내리지 못한다. 가장 큰 이유는 호구(신분증)이 없기 때문이다. 호구가 없는 사람은 사회의 일원으로서 인정받지 못한다. 공안을 보면 두려움에 떨어야 하고, 돈을 빌려주고 돌려받을 권리조차 없다. 힘들게 닦아놓은 삶의 터전도 자신의 것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이곳에서 호구의 획득이란 충심이 간절히 바라는 뿌리내림과 인간성의 회복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나중엔 배가 고파서 양을 한 마리 잡아먹었어. 양 때의 주인이 말을 타고 나타나 채찍을 휘두르는데, 살이 쩍쩍 갈라지더라니까. 절도죄로 몽골의 경찰한테 데려다주면 좋겠는데 실컷 때리고는 그냥 가버렸어. -p.156-
함흥에서의 삶 이후 탈북자의 삶은 비인간적인 삶의 반복이다. 해림에서의 충심은 한 인간으로서가 아닌 5만 위안 이상을 받을 수 있는 상품으로 취급받는다. 먼저 월경한 상숙언니의 말에서도 탈북자는 인간이 아닌 가축보다도 못한 존재로 그려진다. 그들은 양을 훔쳤음에도 법적인 처벌대상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저 짐승처럼 채찍에 두드려 맞을 뿐이다. 월경을 도와줄 선교사일행의 눈에 비친 탈북자 역시 인간과는 거리가 멀다. 그들은 충심일행을 자신들의 선교활동을 도와줄 선전도구 쯤으로 여긴다. 그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탈북자들의 고통이 아닌, 월경시켰을 때 들어올 짭짤한 수입과 효과적인 선교활동을 위한 촬영. 오직 그것뿐이다.
-21세기 유랑민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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