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1  서평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1
 2  서평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2
 3  서평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3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서평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우리나라 역사에서 왕권다툼과 당파싸움이 치열했던 시대가 있었다. 바로 조선 중반의 당쟁기 인데, 이것은 일제치하에 놓일 때까지 계속된다. 이러한 조선 중반의 당쟁은 국가 대사와는 무관하였으며, 정파간 건전한 정책대결과도 거리가 멀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멀지 않다. 송시열을 위시한 당쟁가 들은 주자학이라는 명분적 구실을 바탕으로 나라를 말아먹었다는 것이 작가의 생각인듯 하다.
송시열은 조선의 역사에 남을 당쟁가이자, 유명한 주자학자로서 그 시대의 한가운데에 존재한다. 그는 노론의 주요 인물로서 주자학을 정치적 이념으로 내세워 조선 왕조의 발전과 변화에 오래도록 커다란 영향력을 행세해왔다. 이는 조선 왕조 실록에 그에 대한 언급이 3000번 이상 등장하고, 그의 생애에나 그 후에나 그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았음에도 알 수 있다. 훗날에 노론이 득세하고, 그것은 조선이 망할 때 까지 계속되기 때문에 오늘날까지의 송시열은 거의 성인처럼 받들어지고 있다. 그러한 시대의 흐름에 따라 대부분의 출간물들이 송시열을 위대한 주자학자, 혹은 뛰어난 정치가 정도로 묘사하여 그들과의 공존관계를 이루려 하는 와중에 이러한 책이 나왔다는 것은 우리들 스스로가 기뻐할 일이며, 우리는 작가의 용기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작가는 그러한 거물급 존재에 대한 평가를 통해 조선 후기의 붕당정치의 실태를 보여주고 비판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제 송시열을 하나의 인간으로 끌어 내려 보자. 인간적인 면에서, 송시열은 두가지로 표현될 수 있는 사람이다. 위대한 당쟁가와 뛰어난 주자학자. 위대하다는 뜻은 작가도 표현하듯이 성인처럼 추앙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후세에 까지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송시열은 위대한 당쟁가였다. 조선 역사상 그만한 당쟁가가 없었다는 말에서도 그의 영향력을 알 수 있고, 사후에도 끊임없이 양 붕당에서 구설수에 올랐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에 나타나는 송시열은 현실보다는 명분에 더 의미를 두고 개인과 당파의 이익을 위해 갖가지 방책들을 실행하는 꽤나 사리에 밝은 정치가적인 면이 확실하게 드러난다. 어제의 친구가 오늘날에는 적이 되고, 그 적을 쓰러뜨리기 위해 주자학을 동원하고 흑백논리, 때로는 패권주의적 성향까지 보이면서 힘으로라도 굴복시키려는 그의 모습은 분명 여태까지의 서적에서 등장하는 송시열의 신화적인 모습이 아닌 극히 인간적인, 현대의 정치가 등과 비교되는 것이다. 주로 ‘위대한 인물’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던 기존의 의견에 비해 작가는 당시의 현실에서 송시열이 취한 행동들은 자신과 노론, 즉 그들만을 위한 나라를 이끌어 나갔다는, 어찌 보면 상당히 신랄한 비판을 하고 있다.
구양수는 그 에서 소인은 무붕이고 군자라야 유붕이라고 하였다. 소인들은 붕당을 만들 수 없고 군자만이 붕당을 만들 수 있다는 말이다. 왜 그럴까, 소인은 이익을 위해 당을 만들어 이해관계가 상충되면 그것이 깨져버리고 말지만, 군자는 같은 이념으로 뭉쳐 그 붕당이 견고하다는 말이다. 군자들은 붕당간의 대립보다는 신념의 실현을 우선시하고 그것을 위해서라면 다른 사상을 가진 이들과도 적극 합류할 수 있는 것이다. 과연 그렇게 주자학적인 면을 따졌던 송시열이 이와 같은 군자의 대열에 낄 수 있는지, 그의 당쟁가적 성향을 볼때 의문이다.
또한 송시열은 뛰어난 주자학자 였다. 사실 그의 당쟁 역사 역시 주자학적인 측면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그는 주자학적인 사상과 지식을 당쟁에 적극 이용했던 것이다. 여기에서 작가는 "당시 주자학은 이미 기능을 다한 학문"이었다고 평가한다. 사대부 기준으로 세상을 해석하는 주자학 대신 평민 자리에서 세상을 해석하는 새로운 학문질서가 필요한 시기였다는 것이다. 조선은 군주국가 였음에도 불구하고, 군주를 최고권력자로 보면서도 끊임없이 군주의 권력을 견제하고 비판해야 한다고 보는 주자학의 정치철학이 그 기반이 된 탓에 조선조의 선비들은 군주란 백성의 부모라는 도덕적 명분으로 걸핏하면 군주의 행동을 마치 어린애 나무라듯 질타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신하와 군주의 역전이 일어나는 것이다.
송시열의 권력 역시도 당시 임금들의 권력을 뛰어넘을 때가 많았다. 그런 권력을 민간복지와 국민의 생활 안정을 위해 사용하기 보다는 그것을 상대 붕당으로부터 지켜내는데 급급했던 사람이 송시열이다. 또한 송시열은 자신과 생각이 조금이라도 다르면 주자학적 명분을 내세워 한때의 친구마저 적으로 몰아 죽이기를 서슴지 않았다. 이념이 다른 사람들 사이의 대립은 당연한 일이지만, 이쯤 되고 나면, 이것을 단순히 이념이 다른 사람들 간의 대립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때의 명분은 자신의 위신과 당파적 이익을 위한 음모와 배신의 구차한 구실일 뿐, 더 이상 떳떳한 명분도 아닐뿐더러 그가 그토록 신봉해 마지않던 주자학의 이념에도 맞지 않는다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