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해도 괜찮아’를 읽고
평소 책읽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 ‘영화보다 재미있는 인권 이야기 불편해도 괜찮아’라는 책 제목은 한 눈에 흥미를 끌었다. 이 책은 여러 차별을 주제로 하는 책이다.
먼저 ‘네 멋대로 해라’는 청소년 인권에 관련 된 내용이다. 네 멋대로 해라. 말 그대로 청소년들 멋대로 하라는 것이다. 여기서 지랄 총량의 법칙 이라는 재밌는 용어가 나온다. 여기나오는 대로 말하자면 지랄 총량의 법칙은 모든 인간에게는 일생 쓰고 죽어야 하는 ‘지랄’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는 법칙이다. 참 신선하고 재밌는 용어다. 어떤 사람은 일생동안 써야 되는 지랄을 청소년기에 다 써버리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나이 좀 먹고 늦바람이 나서 그 양을 쓴다고 한다. 그러니 자녀들이 반항을 하거나 말 좀 안 듣는다 해서 너무 심각하게만 생각해서 아이들을 잡지만 말고 지랄 총량의 법칙을 생각하며 일생 쓰고 죽어야 하는 지랄을 쓰고 있겟구나 하고 생각하라는 것이다. 물론 그 정도가 심각하면 이해해 주는 게 아니라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리고 아이들의 조기유학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나라는 비교적 성공한 교수, 의사, 변호사와 같은 재정적으로 여유 있는 가정은 아이들을 유학 보내는 집이 많다. 대개 아이가 사춘기를 겪는 청소년 시기에 유학을 보내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주위는 목소리 때문이다. 부모 닮아서 아이도 공부 잘 하겠다는 종류의 말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사춘기가 와서 조금이라도 부모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주위의 목소리가 두려워 조기 유학을 보내는 것이다.
하지만 이상한 점은 유학을 보내서 평화로웠던 가정이 아이가 다시 한국에 오게 되면 또 다시 사춘기를 겪는 것 마냥 나쁜 길로 빠지는 경우가 꽤 있다는 것이다. 유학 갔을 때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한국에 돌아오면 그러니 참 이상한 일이다. 그 이유를 여기서는 우리사회가 정상이 아니기 때문이라 한다. 어떤 면에서 정상이 아니냐면 바로 대학 입시에 미쳐있는 점이다. 굳이 부모나 선생님이나 주변에서 공부해라 말을 안 해도 아이들은 충분히 분위기로 인해 압박을 받고 있는데 쉬게 해줘야할 부모님마저도 공부해라고 닦달하니 괜한 반항심만 커지는 것 같다. 공부하려고 마음 먹었는데 부모님이나 주위에서 공부하라고 하면 갑자기 더 하기 싫어지는 거와 같은 심리다. 그러한 압박감 때문에 사회가 미쳐 가는 것과 같이 아이들이 더 심한 사춘기를 겪는 것이다.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에서 주인공의 아버지가 주인공에게 ‘니 인생 자체가 잘못이야’라는 말을 한다. 자식에게 ‘네 인생 자체가 잘못이야’라고 하는 부모는 올바른 부모가 아니다. 자식이 어떤 잘못을 하더라고 부모만은 자식 편을 들어주는 존재가 부모라 생각한다. 많은 부모들이 이 드라마를 보면서 나는 저렇게는 말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많은 부모들이 직접적으로 ‘네 인생 자체가 잘못이야’라고는 말하지 않지만 빙빙 돌려서 우회적으로 자녀들에게 열등감을 주고 상처를 주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이 책의 저자는 자신의 딸에게 ‘네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을 가든 말든 상관없다. 그런데 목표했던 대학을 가지 못하면 평생 열등감에 빠져 살기 쉽다. 네가 그런 열등감에 빠지지 않을 자신만 있다면 공부 안해도 괜찮다.’ 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걸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공부 열심히 해라’다. 내가 생각하기에 청소년들에게 가장 스트레스 주는 말이 뭐냐 물었을 때 거의 대부분 ‘공부 열심히 해라’와 같은 공부 하라는 소리일 것이라고 장담한다. 우리 부모님도 항상 인생은 내가 혼자 사는 것이라며 네 인생 후회하며 살지 말라며 열심히 공부하라 하신다. 그리고 고등학생 때 부모님께서 대학만 가면 공부해라 말도 안할 것이라고 했으면서도 대학생이 된 지금도 여전히 공부하라고 하신다. 물론 그런 말 덕에 공부해 대학에 갈 수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그 말 자체는 평생 스트레스라고 생각한다.
이런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려면 대한민국 교육 시스템을 바꿔야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많은 선진국들의 교육 시스템을 연구해 우리나라에 맞게 바꿔서 적용하는 것과 같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시스템 개혁 뿐 만 아니라 부모들이 자기 아이만 잘되기를 바라는 이기심과 이중적 태도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건 어쩔 수 없는 본능이라고 하지만 선한 의도와는 달리 자기 아이를 지치게 하는 것 같다. 교육시스템의 또 다른 문제는 고등학교3학년 19세라는 나이가 진로를 선택하기에는 너무 이른 나이라는 점이다. 19년 동안 수능을 위해 공부만 했을 아이들이 무엇을 안다고 인생에서 중요한 진로를 결정하도록 하는 걸까. ‘인생이 걸린 일이니 신중하게 결정하라’라고 하는 말이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을 더욱 혼란스럽게 하는 모순된 말이다. 대한민국의 대다수의 학생들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주변의 압력에 떠밀려, 취업률이 높다는 이유로, 재수하기 싫다는 이유로 성적에 맞춰 대학을 간다. 나또한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었고 내가 뭘 잘하는 지도 몰라서 성적에 맞춰 대학에 갔다. 내가 적성에 맞는 대학에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간 대학이 내적성이 되는 이상한 시스템이다. 이 책의 저자는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내 적성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대학에 진학하게 되면 인생 몇 년이 늦어지게 되는 것이 정말 아무 일도 아니라고 말한다.
생각해보니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휴학 하거나 편입해서 중간에 대학을 옮기는 경우도 많이 봤다. 우리 언니도 성적에 맞춰 역사학과에 갔다가 도저히 적성에 맞지 않다고 학교를 휴학하고 1년을 공부해 영어과로 편입했다. 적성에 맞지 않으면 대학에 진학하게 되면 어떻게 해서든 자기 적성을 찾기 위해 시간이 흘러간다. 그러니 내 적성을 정확히 찾아서 대학에 진학 하는 게 전혀 늦지 않고 문제 될 것이 없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그런데 이러한 천천히 대학 가는 것의 문제가 취업에 있어서의 나이 제한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30세 전후의 취업연령 제한이 있다. 나이가 들면 그만큼 배운 것도 있을 테고 경험도 있을 텐데 그런 사람의 취업 길을 막는 것이 나한테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러니 취업에서의 연령제한을 없애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렇듯 청소년 인권에서의 많은 문제와 청소년 시기의 문제로부터 발생해 성인기 까지 영향을 끼치는 문제들도 있다. 청소년은 우리나라의 미래다. 그러니 청소년들에게 더욱 따뜻한 관심을 가지고 문제가 되는 요소들을 조금씩 고쳐 나가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 한다.
다음으로 ‘왜 이렇게 불편할까?’라는 소제목이 있다. 무엇이 불편할까. 바로 성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다. 성소수자에는 동성애자,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등이 속한다.
‘와니와 준하’라는 작품은 주인공이 아닌 인물을 동성애자로 설정해 남자들 사이의 사랑을 언뜻언뜻 보여주듯이 흐릿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이성간의 사랑이든 동성 간의 사랑이든 사랑하고 싸우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과정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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