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먼 사람의 마음은 험악해진다
- LUTHER STANDING BEAR(c. 1868-1939)
두려움은 부모가 아이들에게 어릴 때 스스로 즐기는 자유를 허용하는 것을 막고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두려움은 발달하는 아이를 자연의 완전하고 중요한 이득으로부터 분리해놓는 감정이다. 교통, 범죄, 낯선 사람(위험), 그리고 자연 자체의 두려움이다.
아이들의 삶의 테두리는 앞으로 더 답답하게 될 것이다. 2002년 조사에서, 미국 부모의 56%가 아이들이 10살이 될 때가지는 학교에 걸어가거나 자전거를 타고 가는 것이 허용된다고 말하지만 이들 부모의 단지 36%만이 자신의 자녀들이 그렇게 허용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경향은 또한 여기저기에서 증명되고 있다. 예컨대, 암스테르담에 있는 연구자 Lia Karsten은 몇십년간 아이들이 공간을 사용하는 것을 비교하였다. 그녀는 1950년대와 1960년대에 “놀이하는 것은 바깥에서 놀이하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밝히고, 또한 아이들은 스스로 주위를 이동하며 상당한 자유를 얻고, 비교적 돌아다니기에 넓은 구역을 갖고, 다양한 배경을 지닌 아이들과 놀이하고, 그들의 많은 활동들을 위한 도시의 공공장소를 사용한다고 하였다. 그에 반해서, Karsten은 2005년에 아이들이 긴 시간 동안 밖에서 놀지 않고, 그들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영역이 보다 한정되어 있으며, 친구가 적고, 덜 다양함을 발견했다. 그리고, 영국에서, 연구자들은 1990년에 9세 정도의 아이들에 의해 경험된 움직임의 자유가 1971년의 7세 아이들의 자유와 거의 비슷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유아 발달에 있어서, 줄어든 가정의 범위는 작은 이슈가 아니다. 실내의(혹은 뒷자리) 어린 시절은 아이들에게 어떤 위험들은 감소시켜준다. 그러나 신체적 및 심리적 건강에 대한 위험, 공동체에 대한 개념 및 인식에 대한 위험, 자기 확신에 대한 위험, 그리고 진정한 위험과 미를 분별하는 능력을 포함하여 다른 위험들을 증가시킨다. 아동발달 심리학자인 Erick Erickson은 특히 유아기 중반에, 성인의 통제를 넘어 자아를 확립하고자 하는 아이의 요구를 설명하였고 또한, 요새와 은신처와 집과 가까운 다른 특별한 장소의 중요한 역할을 기술하였다. 예일대학에서 사회 생태학 교수인 Stsphen Kellert는 집의 영역 주변에서의 경험이 특히 근처 자연에서의 경험이 분석, 종합, 평가의 발달된 능력을 포함하여 아이의 인지적 성숙을 형성하는데 어떻게 도움을 주는지 기술하고 있다. “유아시절의 중요한 도전은 경험을 변형하고 해석하는 능력을 체계적으로 객관적이고 경험적인 증거를 평가함으로써 발달시키는 것이다”라고 쓰고 있다. “사실, 아이의 삶에서 다른 어떤 부분이 이러한 일관된 단계를 제안하는 것이 아니고 비판적 사고와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기회들을 제공하는 것이다. 즉 마음뿐만 아니라 몸을 위한 꾸준한 다이어트.”
교육자이자 조경가인 Robin Moore는 1980년에 샌프란시스코 작은 만 지역을 연구했을 때, 그는 그의 연구 결과를 국제 연구 논평과 연합시키고 “하나의 불가피한 결과”로 마쳤다 : 증가하는 주거 및 간선 교통은 “공동체 환경에 대한 아이들의 이해를 제한하기 때문에 특히 아이들의 공간적 범위의 개발을 제한하는 하나의 일반적인 요인이다.” 다른 연구자들은 질이 나빠진 공원들과 전자 장난감과 간단한 기계로 채워진 좀 더 넓은 집을 추구하는 경향을 지적해오고 있다.
그러나 나의 비과학적인 예감은 1980년 이래로 낯선자에 대한 두려움이 교통의 두려움 보다 더 상위에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들로 많은 아이들은 절대 그들의 이웃 또는 공원 또는 그들의 주변에 있는 살아있는 자연 영역들을 알지 못하게 되고 있다.
911테러가 우리의 일반적인 공포(두려움)를 확대시키기 훨씬 이전에, 나는 하루를 펜실베니아의 Swarthmore에 있는 Fitzsimmons 가족과 함께 보냈다. 그들은 박토리아 양식의 집에 살고 있었다; 바람이 불면 삐걱 소리가 나는 전방에 베란다가 있는 집. Swarthmore는 오래된 나무들과 어린 아이들과 넓은 보도가 있는 전원풍의 타운이다. Beth Fitzsimmons가 나에게 나중에 말했었던 것 같이 거기에는 하나의 규칙이 있다 : 어느 누구도 나무나 아이들에게 상처를 입혀서는 안된다. 즉 이는 부모가 두려움을 표현하기를 바라는 최후의 장소이다. 그러나 Beth가 말하길 :
내가 어린 꼬마였을 때, 우리 집 길가에 숲이 있었다. 나는 아침 6시에 일어나서 두 세시간 동안 그곳으로 내려가 혼자 블루베리를 땄고, 아무도 그것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총과 마약이 우리의 아이들이 좋아하게 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라고 말하는 이유들이다. 외부에는 미치광이들이 많이 있다. 매우 다르다. 나의 딸인 Elizabeth가 대학 뒤에 있는 Crum Creek으로 내려간다 할지라도 나는 그녀가 개를 데리고 가기를 원하고 적어도 한 명의 친구와 함께 하고 있도록 대책을 강구한다.
나는 Pennsylvania에서 만큼의 강렬한 두려움을 Kansas에서도 발견한 것에 놀랬다. 한 아버지가 말하기를:
나에게는 하나의 법칙이 있다. 나는 나의 아이가 일주일, 하루 24시간 어디에 있는지 알기를 원한다. 어떤 집. 어떤 평방피트. 전화번호. 그것이 내가 다루는 유일한 방식이다. 나의 두 아이는 세상에는 미친 사람들이 가득하다는 나의 설교를 들어왔다. 그리고 그렇다. There are nuts running loose. 수년 동안 치료를 받을 필요가 있는 사람들 그리고 감금될 필요가 있는 사람들. 그들은 밖으로 나와 차로 돌아다니고 총도 가지고 다닌다. 내 아이들이 공원에 혼자 가게 하는 것을 망설이게 된다. 모든 사람들은 당신에게 절대 당신의 아이 혼자 내버려 두고 떠나지 말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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