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죽음의 밥상을 읽고
현대사회문제와 책임
식탁에 오른 고기를 부정적으로 대하거나 육식에 대해 고민한 기억은 거의 없다. 고기와 관련된 고민 이라고 해 봤자 후라이드 치킨과 양념 사이에서 혹은 삼겹살을 몇 인분 추가해야 할지 고민했던 기억이 전부다. 실은, 내가 사야 할 자리 외에서 만나는 모든 고기가 반가울 정도로 나는 육식에 호의적인 잡식주의자다. 의학적으로야 소화가 늦게 되는 것 뿐이라지만 고기를 먹고 난 후의 그 든든한 포만감은 다른 모든 고민을 차단해 버린다. 과식해봤자 건강에 나쁠 뿐이라는 신호가 머리에서 내려와도 눈은 어느새 다음 목표물을 노리고, 입은 말없이 맛을 음미하며, 손은 좀처럼 젓가락을 놓지 않는다. 흠, 어렸을 때 식단이 치우쳤던 것도 아닌데, 자취생활 이후 생긴 버릇이라 궁색한 핑계를 대 본다.
이렇게 방대하고 구체적인 자료를 가지고 논리적으로 고기 맛을 떨어뜨리는 책인 줄 알았더라면 읽지 말 것을 그랬다. 처음에 이 책을 읽기로 맘 먹은 이유는 이 책에서 말하는 먹거리의 윤리적 문제제기의 호기심보단 단순히 최근들어 먹거리의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크게 다가오는 바 그것의 정보취득을 할 수 있다는 마음에서였다. 그러나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먹거리 전체의 생산과정, 유통과정을 포괄하는 방대함에 적잖이 부담감을 가지며 읽어나갔다.
그가 조근조근 밝혀내는 진실은 불편하다 못해 나 같이 깊이 연루되어있는 공범에게는 무시 못 할 죄책감을 불러일으킨다. 물론 미국에서만 일년에 100억 마리의 동물이 식용으로 도살된다고 하니 한 마리 한 마리를 도살할 때마다 눈물을 흘릴 수는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저자처럼 종(種)차별주의를 운운하며 동물에게 과도한 가치를 부여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래도 죽지 않은 닭을 그대로 끓는 물에 던져 넣고, 장차 달걀을 얻어내지 못할 수평아리는 그대로 쓰레기통에 던져 넣는 것은 생명을 대하는 인간의 바른 자세가 아니다. 물론, 별 다섯 개의 마블링과 혀에서 살살 녹는 송아지 고기의 유혹은 치명적이다. 그러나 갓 태어난 송아지를 어미와 떨어뜨려 몸도 돌릴 수 없는 우리에 짚이나 깔개도 주지 않고 빈혈을 만들어야 얻을 수 있는 맛이라면 사양하련다. 사양해야 할 것은 그것뿐이 아니다. 살아있는 동물이 하나의 제품이 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필요 이상의 잔혹한 폭력과 환경파괴. 그리고 ‘가격파괴’라는 착한 탈을 쓴 나쁜 비용전가 등의 비윤리적인 행동은 생각보다 광범위하고 생각보다 우리와 가깝다.
지난 날 어느 누군가가 “먹거리 가지고 장난쳐서 쉽게 돈 버는 사회가 현재의 한국사회”라고 한 얘기가 문득 생각난다.
저자 피터 싱어의 진지하고도 일리 있는 은근한 꼬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베건(채식주의자)이 될 의지도 가능성도 희박하다. 그러나 그의 깨어있는 의식과 열심이 내가 가지고 있는 잘못된 환상을 깨뜨린 것은 확실하다. 신선하고 맛있으면서, 안전하고 건강에 좋고, 편하고 싸면서도 윤리적인 먹거리는 없다. 그런 잘못된 요구는 생산자의 탐욕에 못지 않는 큰 욕심이다.
매번의 식사가 정치적인 선택이라는 그의 야이기를 듣고 동의한 이상, 가격과 편리함 그리고 맛을 우선으로 두던 나의 밥상도 변해야 옳다.
우리집 엥겔계수가 오르는 한이 있더라도 공정무역과 유기농 제품을 찾아보자. 음식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욕심을 부리지 말고, 적극적인 육식옹호론자에서 균형 잡힌 잡식주의자가 되어 보자.
피터 싱어가 꿈꾸는 최고의 밥상은 아니어도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밥상을 차려보는 것이다. 나와 내 가족의 건강을 걱정하는 것을 넘어서 나의 선택이 사회에 미칠 선한 영향까지 기대하면서 말이다.
이 책 죽음의 밥상은 우리가 먹고 있는 먹거리의 원산지를 생각하고, 또한 윤리적인 문제를 따지고 있다는 점에서 시도를 아주 높이 살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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