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글 읽기와 삶 읽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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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글 읽기와 삶 읽기[1]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탈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글 읽기와 삶 읽기
책을 읽기 전 제목에 적힌 ‘탈식민지 시대 지식인’이란 단어를 주목하였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행해지고 있는 교육제도의 대부분이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이 우리나라 사람들을 가르칠 때 이용한 교육제도란 것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여기서 식민지 시대는 일제강점기 시절을 뜻하는 것일 테고, 탈식민지 시대란 일제강점기에서 해방 된 뒤부터 현재까지의 거쳐 온 날을 뜻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저자가 책 제목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일제강점기 이후 우리나라 지식인들의 올바른 자세에 관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 시절 때의 교육제도가 거의 그대로 현재까지 이어져서 행해지고 있는데 그것은 일제강점기 시절 때 배출해낸 지식인들과 현재의 지식인들과 거의 동일시되는거나 마찬가지라 생각된다. 그렇다면 저자가 탈식민지 시대 지식인이란 단어를 쓴 이유는 바로 일제강점기 때의 지식인들이나 현재의 지식인들이나 별반 차이가 없기 때문에 현재의 지식인들의 자세에 대해서 반성하고 앞으로의 미래를 위해 지식인들이 가져야할 올바른 자세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쓴 책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머리 속에 떠오른 책이 한 권 있었다. 이 책은 일본작가 하이타니 겐지로가 쓴 ‘모래밭 아이들’이란 책이다. 이 책에서 등장하는 선생님들은 하나같이 강제적이고 일방적이고 획일적이다. 학생들은 무조건 선생님들의 말을 따라야하며 선생님이 하는 말이 곧 옳은 말이다라고 강요한다. 이 책은 바로 일본 사회내에서 행해지고 있는 교육 현실에 대해서 지적하고자 쓴 책이다. 학생들의 능동적인 사고, 학생들만의 의견은 묵살된 채 학교 내의 엄격한 규칙 속에서 교과서 내용을 곧이곧대로 컴퓨터에 글자를 입력하듯 학생들을 가르치려하는 학교교육이 유지되고 있다. 지식인들을 배출해내는 국가의 교육기관에서 일방적으로 학생들에게 교과서의 내용을 그대로 소화시키려고만 하니 학생들은 방대한 양의 지식을 소화해내느라 자신의 생각을 할 틈도 없다. 그렇게 주입식 교육만을 받아온 채 성인이 되어 비로소 지식인의 사전적 의미인 지식계급에 속하면서 그에 상응하는 사회적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이 될 수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방대한 양의 지식을 알고만 있는 것이지 자신이 주체가 되어 진정하게 옳고 그른 것이 무엇인지 판단할 수 없을 것이다. 객관적 자료만을 중요시한 채 사실만을 고집하고 결과물들만 알고 있는 지식인들은 결코 새로운 문제가 닥쳤을 때 그 문제의 해답을 결코 얻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해답이 정해져 있는 듯 문제가 보이면 바로 머릿속에서 답이 나와버리는게 과연 좋은 것인지 심히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은 현재 한국교육제도의 실태를 고발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입시위주의 교육제도, 무한한 경쟁 속에서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시험범위에 해당되는 지식의 일방적인 암기, 학생들의 능동적인 참여는 무시된 채 진도 나가기 바쁜 수업시간, 지식을 받아들이는 것에만 익숙해져버린 학생들....마치 많이 알수록 우위를 차지하는 사람인 것처럼 인식돼 컴퓨터인 양 무조건적으로 머리속에 지식을 저장하려고만 한다. 일제 강점기 때의 교육제도가 뿌리 뽑히지 않은 채 그대로 현재의 우리나라 교
육제도에 엄청난 영향을 끼쳐왔다. 어느새 우리나라의 교육문화가 되어버렸고, 이제는 바꾸고 싶어도 바꿀 수 없을 만큼 깊게 뿌리박혀 아무리 개혁하려해도 기본 틀은 언제나 유지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문법, 독해, 듣기능력은 뛰어난데 회화수준은 낮은 학생들을 통해 우리나라 교육의 실태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 같다. 자율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를 통해 배워가는 것이 옳은 것인지 잘 알면서도 주입식 교육에 익숙해져버린 학생들은 어떻게든 쉽고 간단명료하게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한 채 배우려고만 한다. 지식의 내용과 자신의 삶과 접목시켜 이해하려는 태도가 없이 그저 수동적으로만 살아간다는 것은 일제강점기 시절 때의 우리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한다.
학교생활을 한지 어느덧 13년차, 내 자신의 공부습관에 대해 많은 회의감이 들었다. 학교 수업시간 때 선생님이 가르치는 내용을 생각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려고만 했었고, 시험 범위의 내용을 무조건적으로 의문없이 이해하려들기만 하였고, 이해가 되지 않으면 억지로 외워서라도 오직 시험을 위해 공부해왔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거의 공감되는 부분일 것이다. 책을 읽을 때에도 정보습득을 위해서만 읽었지 내 삶과 연결시켜 읽은 책은 몇 권 안될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제까지 읽었던 책 중에서 생각나는 책들은 거의 대부분 그저 재미있게 읽었던 소설들 뿐이다. 때문에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고 확신했던 나에게 내 자신의 삶의 성찰과 발전은 고려되지 않고 그저 책 읽기는 시간 때우기 용이 아니였는지 많은 회의를 느끼기도 하였다. 집에 사놓은 책들도 보면 하나같이 다 지식습득을 위한 책들인게 ‘아는 것이 많은 장땡이다.’라는 나의 태도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학문의 관심의 폭이 좁고 쉽게 싫증을 내며 사고의 호흡이 짧은 나에게 경각심을 일깨워 주었고,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있는 나에게 또 다시 능동적인 삶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었다. 대학에 들어와서부터 그저 과제 제출을 하기 위한 독서만을 고집하였고 교수님께서 가르쳐주시는 수업 내용에 대해서 그저 아~그렇구나 하고 알아두기만 하고 있는 나에 대한 문제점을 돌이켜 보게 된다. 또한 내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나의 성격이 어렸을 적부터 주입식 교육에 찌들어버린 내 교육방식에 영향을 많이 받아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제부터 저자가 원하는 이상적인 자세를 생각해보며 내 생각은 틀리다라는 편견과 수동적인 자세는 버리고 수업에 대한 자발적인 참여와 참다운 지식인으로서 앞으로의 내 삶을 위해서 주체적인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