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소금의 문화사
이 책은 신체에 필수적이며 요리에 맛을 더하는 생활필수품 - 소금이 인류 역사에 어떤 역할을 했는가를 파헤친 매혹적인 저작이다. 이 소금으로 인해 로마는 ‘remuneration이라는 보수 시스템을 만들었으며, 유목민들은 대상무역을 영위하게 되었다. 또한 네덜란드가 에스파냐의 압제가에 대해 반기를 들고 독립전쟁에 나선 것도 소금으로 말미암은 것이었으며, 간디가 영국의 식민지배에 맞서 일으킨 비폭력 저항운동 ’소금행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시대를 관통하여 소금은 사회 구성원의 신분을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고, 식품 저장에 필수 첨가물이었으며, 인류의 피와 땀, 눈물을 요구했던 물질이었다. 속담에서 기술적 문제까지 또한 일화에서 학문적인 문제까지, 화학자이자 철학자인 피에르 라즐로는 독자들을 ‘백색 황금’의 왕국으로 친절히 초대한다. 그는 “열정과 신선함”으로 문학과 역사, 인류학, 생물학, 물리학, 경제, 예술사, 정치, 화학, 인종학 등을 두루 섭렵하면서 그 속에 녹아있는 소금의 결정들을 추출해 낸다. 그리하여 우리가 흔하게 보는 이 소금이 갖고 있는 놀랍고도 매혹적인 ‘지식과 역사의 왕국’을 펼쳐 보여준다.
이 책의 두 가지 강조점은, 이 시대는 물론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모든 시대에 미치는 정치적 힘의 가혹성 - 굳이 잔인성이라는 표현을 피하자면- 과, 또 사람들이 그것을 놀라울 만큼 빨리 잊어버린다는 점이다. 이 책에서 다룰 ‘기발함’이란 개념으로 이에 대한 대답을 해보기로 하자. 이 개념은 일반 대중이 생각하는 소금과 과학적 발견의 인식론을 연관짓고 있다. 여기선 다만 ‘기발함’의 어원이 소금 알갱이라는 것만 상기하자. “자신의 소금 알갱이를 넣다”라는 것은, 적어도 독창성이 있다는 의미거나, 나아가서는 진정한 창의성을 발휘한다는 의미다. 사실, 과학적 발견은 거의 언제나 엉뚱하며, 특히 그것이 불시에 출현할 때는 무례하고 용인키 어려운 측면을 지닌다. 자연을 이해해보려고 자연을 묘사하는 일과, 새로운 의미를 지닌 일련의 말들을 작문하는 일, 나는 이 두가지 시도가 그 대상과 결과가 실현들이 갖는 여러 대칭의 속성들의 측면에서 서로 비슷하다고 본다.
유목민 행렬은 물이 있는 곳들뿐 아니라, 소금이 있는 곳들을 따라 도정을 짠다. 그들은 정착민들에게 소금을 인도해주기도 한다. 정치 권력자들은 소금 공급 통제권을 장악하여, 그것으로 희소성을 조장하고, 가격을 통제하고, 나아가 세법까지 통제한다. 서양사회는 식품 저장에, 특히 단백질 저장에 소금을 사용해왔다. 단세포 생물에서 인간에 이르는 모든 유기체들이 소금을 필요로 하지만, 지나칠 경우엔 해를 끼친다. 1인당 1년에 수 kg에 달하는 생리적 필요량으로 인해 소금 수확은 필요불가결하다. 그런데 광산에서 채취하건 염전에서 채취하건 소금 채취작업은 힘들고 결과가 불확실한 일이다.
생존문제를 극복한 인간은 알고자 한다. 자신을 둘러싼 자연을 이해하고 통제하는 그 일의 시작을, 그저 단순해 보이지만, 여러 개념들의 기원이며 나아가 분광학 같은 학문의 기원을 이루는 이 소금이라는 화학물에서 시작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생물체의 피와 땀과 눈물의 짠 맛은 신화의 갖가지 위안과 대조를 이룬다. 여러 문화권에서 보게 되는 이들 신화적 위안은 정결 의식에서 축제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그 맛에 의해 특별한 가치를 지니게 된, 즉 음식에뿐만 아니라 존재 전체에 맛을 제공하는 것으로서 특별한 가치를 인정받는 소금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알퐁스 알레나 피에르 다크의 견해를 빌리자면, 소금이나 물을 얻기 위해 바닷물을 활용하는 것은 더 이상 얘깃거리가 되지 않는 듯하다. 하지만 물과 소금은 연금술사들의 등장 이후로 또다른 연관성을 맺게 되었다. 전류에 의한 소금물의 분해는 화학산업에 염소와 소다라는 두 원천을 제공해준다. 물과 소금이라는 두 물질 상호간의 친화력은 너무나 진부하지만, 그럼에도 과학자들은 이에 대해 천착한다.
여러 신화들은 소금을 주요 생필품에서 실존적 미덕을 지닌 축제와 성화의 대상으로 그 지위를 격상시킨다. 성경은 예배와 의례에 소금을 사용하고 있다. 로마인들에게도 오늘날엔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린, 노랫가락을 흥얼거리며 사제들이 춤을 추던 독특한 축제가 있었다. 한편 아스테크 인들은 소금의 여신을 경배했다. 청년 한 명을 간택하여 일 년간 쾌락의 왕자로 살게 한 뒤 잔인한 신들에게 희생의 제물로 바쳤다.
많은 문화권에서 의례적으로 악이 추방된 인간 생활 영역을 규정하는 방법은 소금을 뿌리는 것이었다. 예로부터 이렇게 소금기가 닿은 음식은 질병이나 액으로부터 보호받는 것으로 여겨졌다. 우리들 식탁위의 소금 그릇들은 실생활에서의 용도 외에도 이 같은 정화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소금 그릇들은 수세기 동안, 적어도 영주들에게는 사치와 호사의 상징이었으며, 벤베누토 첼리니가 프랑수아 1세를 위해 조각한 화려한 소금 그릇 공예품들이 그 좋은 본보기다. 소금 그릇들은 식탁 장식의 중심을 차지하고서 일반 식사와 ‘최후의 만찬’을, 장식예술과 종교예술을 재결합시키기도 했다.
가족간의 식사에서부터 친구들간의 회식에 이르기까지, 소금은 삶의 의미를 되새김질하게 해왔다. 그 모든 봉헌물들에 소금의 귀중함에 대한 의식이 깃들어 있다. 소금은 아이를 기르듯 정성을 다해 이용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밖에도, 소금의 결정에 대한 스탕달식 개념과 같은 여러 온유적 암시들이 있다. 라마크리슈나에게는 대양에서 녹는 소금 인형이 신의 품으로 돌아가는 인간의 이미지였다.
소금경작은 곧 인간에 대한 착취였다. 소금은 세금을 매기기에 매우 적합한 생필품이었으므로 통치자들이 이용하기에 딱 좋았을 것이다. 한데 어째서 사람들은 그 지경으로 착취당하고만 있었단 말인가? 염세에 대한 항거와 폭동은 긴 역사를 놓고 볼 때 짧은 기간의 도발로 그치고 말았지 않았던가? 소금이 어떤 수단으로 이용되었는가를 돌아보는 일은 불평등하고 부당한 사회계약을 드러내게 되며, ‘왜 그것을 원했는가?’ ‘왜 그것을 감내했는가?’라는 권력 문제를 제기한다. 그 대답은 생리학적인 것, 즉 여러 동물 종족에서 보게 되는 지배 - 피지배 관계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인간 사회에서 소금은 지속적인 지배의 발판으로 이용되었다. 고대에는 소금 채굴이 정착 민족의 일이었을 뿐 아니라, 노예들의 직분이기도 했다. 키케로가 우연히 지적했듯, 이는 오늘의 우리를 놀라게 한다. 이 사실의 놀라운 점은 너무나 자명해서 당시 그는 자신의 독자들에게 구태여 설명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았다. 그리고 이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놀랍게 여겨진다. 석유를 우리 시대의 소금이라 말할 수 있다면, 베네수엘라에서 가봉, 쿠웨이트에 이르는 opec 소속 국가의 국민들이 노예국민들이란 말인가? 물론 그렇게 간단히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전혀 근거 없는 의문이라 할 수도 없다. 진부하나 특기할 만한, 소금 무역의 또 다른 한 측면은 세금이 소금 고가화의 주역이라는 점이다. 이에 관해서는 두 가지 입장 사이에서 망설이게 된다. 좌파적인 입장이 그 둘인데, 양쪽 얘기 모두가 정당하고 근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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