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랑블루 영화감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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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랑블루 영화감상문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그랑 블루 영화감상문
사실 나는 이 유명한 영화를 이제껏 보지 못했다. 다만 시중에 팔리는 벽걸이용 포스터로만 이 영화의 이미지를 조금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 전부였다. 현재 내 자취방 부엌에도 이 포스터가 걸려있는데 이 영화를 보고 난 뒤에도 이 포스터가 ‘그랑부르’ 포스터인지를 몰랐었다. 부엌에서 여러 가지 일들을 하면서 푸르른 색의 그 포스터를 스치면서 보았던 것이 전부였다.
이 영화의 첫 장면, 즉 자크의 소년기 때 시절은 흑백의 모노톤으로 비춰내고 있다. 대개 흑백으로 영상을 꾸미게 되면 까마득한 옛날을 회상케하는 효과를 준다. 여기에서도 아버지의 죽음을 회상하는 자크의 내면세계를 보여주는 듯하다. 이 후 영화는 컬러로 바뀌게 되는데 이제는 영화의 본 색깔인 블루계열의 톤으로 흘러간다. 본래 블루계통의 톤은 사람들에게 깊고 차분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데 자크의 성격과 비슷한 것 같이 느껴졌다. 자크와 엔조는 나이가 들어 청년이 되고, 엔조는 무산소 잠수선수로 자크는 어느 실험의 참가자로 성장하게 된다. 하지만 엔조는 자크를 기억하고 있으며 얼마 안있어 열리는 잠수대회에 초청한다.
여기서 좀 생각해 볼 문제는 분명히 무산소 잠수대회는 무척 위험한 운동경기라고도 할 수 있으며 격렬한 경기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이러한 위험한 대회가 매우 편안하게끔 느껴지도록 표현해내고 있다. 분명 이러한 상황을 충분히 급박하고 긴장감있게 그려낼 수 있었지만 말이다. 이것은 운동경기의 기록에 대한 인간의 피나는 노력과 도전보다는 저 깊숙한 곳에서 그러한 노력과 도전을 은근히 보는 듯한 바다 자체에 중점을 두고 표현해내려고 하기 위해서 일 것이다. 사실 엔조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시도한 매우 위험한 상황의 잠수장면을 그다지 급박하게 그려내고 있지 않는 것도 이러한 표현의 일부인 듯 하다. 이렇듯 느긋하게 죽음을 그려내는 것을 보면 바다는 인간이 절대 이겨낼 수 없는 그 무엇이라는 식의 뤽 베송 특유의 철학인 듯하기도 하고 말이다.
쓰다보니 결론부터 다 말하고 버렸는데 엔조가 죽은 뒤 자크는 익사하는 꿈을 꾸는데 내 느낌으로는 엔조도 죽었으니 너도 따라오라는 무언의 암시인 듯 하다. 영화를 다 보고 난 뒤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조안나는 왜 출연했는지 궁금해진다. 별다른 역할도 없고 그저 자크의 애인 역에만 써먹을려고 출연했을까, 그의 아기를 임신할려고 출연했을까, 그것도 아니면 자크와 엔조의 우정만 다룰려니 허전해서 자크와의 사랑을 다루기 위해 출연시켰을까, 이 점은 나도 도무지 모르겠다. 마지막 장면에 바다 속으로 뛰어들지 말라고 울먹이며 애원하던 그녀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하지만 자크는 결국 바다 속으로 뛰어들고 만다. 분명 자기 자식이 조안나의 배에서 자라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바다로의 회귀 본능인가, 아님 친구의 죽음에서 오는 자신 스스로의 죄책감 때문인가. 그와 동시에 나오는 심장박동소리로 인해 나에게는 마치 조안나의 배속으로 들어가서 자신의 아기와 만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조안나가 가진 뱃속 아기를 부각시키는 것과 자신이 바다로 뛰어드는 것에는 많은 상관관계가 존재하는 것 같았다. 예전부터 신화에는 여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물이나 달이 많이 나왔다. 여기서 물(바다)로 뛰어드는 자크를 보고 있자니 예전 자신이 회상하던 흑백의 톤으로 돌아가려는 듯한 그런 인상을 받았다. 나는 다만 그 회귀하는 곳을 어머니의 자궁이 아니라 가족에게로의 회귀로 느껴졌다. 분명 이 영화에서는 자크의 어머니가 나오지 않는다. 아버지는 물에 빠져 죽었고 어머니는 바다 인 듯 했다. 동생처럼 여기는 돌고래와 같이 자연이 아닌 가족으로의 회귀가 마지막 장면에 대한 나의 느낌이다.
이 영화를 다 보고 나니 나는 다른 사람과는 달리 이 영화에서 자연적인 느낌이 거의 없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왠지 인공적이며 사람의 죽음에 대해 쉽게 다루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느낌은 영화음악에서도 많이 드러나고 있다. 인간적인 악기가 전혀 들어가지 않고 있으며 특히 텐션이 있는 음악은 아예 나오지도 않는다. 고요히 그냥 물 흘러가듯 있는 듯 없는 듯한 느낌의 음악만 꾸준히 흘러나오는데 무척이나 일렉트로니카적 음악임을 대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뉴에이지적인 요소와 전자음악적인 요소를 지닌 음악으로 인해 바다는 마치 끝없는 미지의 세계로 인식되어 지고 있다. 전혀 따스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차가운 바다, 말이 없이 침묵으로만 일관하는 바다, 나에게는 이러한 느낌의 바다로 다가와졌다. 이렇듯 아이러니컬한 시도들이 만들어낸 결과물은 보는 이로 하여금 많은 상상과 많은 철학적 사고를 해보게 한다. 그리고 매우 이색적인 직업인 무산소 다이버들을 다루고 있으며 차분한 영상미와 음악미로 보는 이를 압도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이 영화 이 후 뤽 베송은 그 주가가 한창 치솟게 되며 젊었을 때의 뤽 베송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는 멋진 영화이다. 이 영화가 나온 시기가 1988년인데 이 시기에 관객들을 이만큼 압도할 수 있다는 영화가 있다는 것은 나에게는 매우 신선함을 주었고, 살아가면서 한번쯤은 꼭 봐야 할 영화라고 누구에게나 추천해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