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_ 일야구도하기(버리는 것에 대하여)
박지원의 일야구도하기(하룻밤 사이에 아홉 번 강을 건넌 기록) - 박지원은 무슨 이유로 이러한 글을 썼는가? 아니, 좀 더 적나라하게 의문을 제기해 볼까? 왜 교수님은 이 글을 과제로 내주신 걸까? 장장 5번을 내리 읽었지만 별다른 감흥을 일으키지 않는 글이었다. 얼핏 보기에 이 글의 주제인 것 같은 외물에 현혹되지 않는 자세, 혹은 마음을 먹기에 따라 외물에 현혹이 없을 것이다. 교수님께서는 이것을 노리신 것일까? 아니면, 이 주제를 뛰어넘는 뭔가를 원하신 걸까? 교수님 말씀대로라면 자유로운 글쓰기가 목적일텐데, 이 글이 바탕으로 주어진 이상 여기서 자유롭기는 애초에 글러먹은 듯 하다. 이것이 나의 한계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말이다.
자신이 마음먹은대로 자연을 느낄 수 있다는 박지원의 이야기를 들으니 왠지 탈무드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성서에 의하면 세계는 1일, 2일, 3일…… 하는 순간에 따라 만들어져, 6일째에 완성되었다. 사람은 그 마지막 6일째에 만들어졌다. 왜 인간은 마지막에 만들어진 것일까? 당신을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십니까? … 탈무드에 의하면, 파리 한 마리도 인간보다 먼저 만들어진 것을 알게 되면 인간은 그다지 교만해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사람들에게 자연에 대한 겸허를 가르치기 위한 것이다.」 내가 갑자기 탈무드의 한 구절을 끌어온 이유는? 박지원의 일야구도하기의 주제에 뭔가 딴지를 걸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렇게 추측하신 분이 있다면 고맙지만 사양이다.
자연을 인간이 마음먹은 바에 따라 느낄 수 있다든가, 또는 자연의 위대함을 알아 인간은 알아서 설설 기어야 한다는, 즉 겸허를 가지자든가, 이 두 이야기는 모두 나에게 엉뚱한 생각을 들게 했다. 도대체 뭐가 무서워서 그래야 하지? 도대체 뭐가 말이야?
인간은 항상 무언가를 잃을 게 두려워 설설 기는 존재가 아닐까, 한다. 나 역시도 항상 무엇인가 버려야 한다는 두려움에 그 상대가 사람이든, 어떤 거대한 조직이든 나한테 조금의 이득이나 손해를 줄 수 있는 존재라면 막다른 골목의 젖은 생쥐꼴처럼 비굴한 웃음을 짓는다. 돌아서 생각하면 그만큼 치욕스런 순간이 있을까, 싶으면서도 그 순간만큼은 최소한 나에게 남아있는 것만이라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필사적이 된다. 나라는 인간만 그런 걸까?
박지원의 이야기나 탈무드의 이야기는 모두 훌륭한 교훈을 주는 이야기임에 틀림없다. 내가 아무리 버팅겨도 당대 최고의 학자요, 반만 년 역사동안 온갖 박해와 나라 없는 설움 속에서도 끈질기게 자신들의 문화를 보존해 온 유태 민족의 저력인 것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 내가 느낄 수 있음이 자유로울 수 있다면 나는 주저없이 내가 느끼는 그대로를 맛 볼 것이다. 내 눈에 그 둘의 이야기는 설설 기는 존재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은 그렇다.
버린다. 그 한 벽만 뛰어넘으면 모든 것이 한결 수월해질지도 모른다. 당장 나만 하더라도 버리려고 마음만 먹으면 행동이나 정신면에서 좀 더 당당해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 버리려는 것이 사람이든, 물건이든지 간에 말이다. 강물에 빠지는 것이 두렵다면 그것은 옷이 젖어 그 모양새가 망가질까봐, 내가 애써 가꾼 내 모양새가 망가질까봐이다. 박지원의 글에서 그나마 마음에 드는 부분이 있었다면 그 부분이다. 물로 옷, 땅, 몸, 성정을 삼을지니. 옷이든 몸이든 버려질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그 이상을 뛰어넘을 수 있다. 나도 아직 경험이나 사유가 깊지 않아 다만 막연하게나마 그렇게 느끼고 있을 뿐이다. 하룻밤 사이에 한 강을 아홉 번이나 건너는 기록을 세운 것이 안쓰럽게 느껴질 뿐이다.
글을 거의 완성해가고 있는 지금, 불현 듯, 다시 쓸까, 하는 생각의 고개가 치받쳐들고 있다. 왜? 교수님이 원하신 방향도 아닐 듯 싶고, 뭔가 건방지다. 그러나 귀찮다는 생각과 함께 ‘뭐 어때?’ 라는 생각도 함께 들이닥친다. 버리라고! 학점이든 교수님의 칭찬이든 버리란 말이지. 그게 내가 쓴 글의 거창하면서도 초라한 주제 아니겠어?
법정 스님이 ‘무소유’라는 책을 쓰셨을 때, 김수환 추기경이 남기신 추천글이 생각난다. 법정 스님은 모든 걸 버리라고 하지만 그래도 난 이 책만은 소유하고 싶다는……. 아, 글쎄, 버리라니까요, 추기경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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