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이 책을 읽고 난 지금도 송시열에 대해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어떤 한 사람을 평가할 때 이분법적인 잣대로 좋은 사람, 나쁜 사람 나누는 것은 좀 그렇지만. 솔직히 지금까지 송시열이라는 위인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으며 그냥 무의식적으로 대단한 학자인줄로만 알고 있었던 터라, 나도 편견이나 고정관념에서는 그리 자유롭지 않은 사람인가보다. 어찌됐건 송시열은 분명 주자학을 가장 철저히 연구하고 그것을 지키려고 애쓴 대학자였다. 이것만은 어떤 방법으로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송시열은 주자학과 노론의 대들보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의리와 도덕을 강조하여 청나라를 정벌하고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지키고자 하였다.이 것에 대해서는 재론의 여지가 있지만- 단지 그가 시대의 변화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고-어쩌면 알지 못하고- 과거의 영역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했을 뿐이라는 점을 참작해 주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현재의 관점에서 그를 국익보다는 당익과 사익을 위해 표리부동과 아집에 휩싸여 있었던 인물이라고 보아야 하는 것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송시열이 의리와 도덕을 강조하여 북벌을 단행코자 하였다고 하였다는데 그러나 이것은 말뿐이었다. 병자호란에 의해 청에 볼모로 끌려가 고초를 당했던 효종은 즉위 후 이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고 북벌을 강행하였다. 하지만 송시열을 필두로 한 조종 신료들은 겉으론 북벌을 주장하였지만 이는 중화사상에 입각한 명을 도와준다는 의미였을 뿐 실제 불벌을 추진할 의사를 갖고 있지는 않았다. 실제로 효종은 송시열에게 북벌을 하는 데에 동의하여 줄 것을 강력히 요구하였지만 송시열은 원칙론만을 되풀이 하며 그 실천에 대해선 시기를 자꾸만 늦추었다. 일단 대의를 중요시 여기는 성리학자로서 자신의 말과 행동이 틀리다는 데에선 충분히 비판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또한 여기서 국사교과서의 중대한 왜곡이 있다. 우리가 학창시절 배워왔던 국사 교과서에는 송시열이 숙종과 함께 북벌을 단행한 것처럼 나와있지만 역사적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일본의 교과서 왜곡만을 규탄할 것이 아니라 우리 국사 교과서부터 똑바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게다가 송시열은 주자의 학문밖에는 몰랐다. 이 점이 책을 읽는 날 시종일관 답답하게 했다. 그렇듯 위대한 학자가 왜 도대체 왜 한가지 밖에 모르고 나와 다른 것을 용인할 줄 모르는 것일까. 송시열은 윤휴나 박세당 등의 학자에게 ‘사문난적’이라는 낙인을 찍어버렸다. 주자밖에 모르던 송시열과 서인들은 주자의 학문을 따르지 않았다 하야 목숨까지 빼앗았다. 그 당시 조선사회가 얼마나 폐쇄적이고 고여있는 사회였는지를 잘 나타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서인들은 자신들과 다른 것들에 대한 사문난적 규정을 통해 결국 자신들의 기득권을 더욱 강화하고, 백성들 위에 군림하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서인들의 태도 또한 문제점이 많았다. 명백한 오류나 허점이 있을 경우에도 단지 스승의 의견이라는 이유로, 당의 의견이라는 이유로 그것을 그대로 따랐다.
여기에서 우리는 몇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기도 하다. 일단은 나와 다른 남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용인할 줄 아는 열린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붕당에서 스승의 의견을 따르고 붕당끼리 헤쳐모이는 등의 행태는 오늘날의 학연, 지연과 등치시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오늘날 한국정치에서 당론이라는 것이 있어 의원들이 개인의 의견을 개진하지 못하고 당론을 따라야 할 것을 강요받고 있다. 학연과 지연, 그리고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당론을 따르곤 하는 부분은 분명 바뀌어야 할 것이다.
조선 후기 국정의 난맥상의 책임은 국왕에게도 있다고 할 것이다. 특히 숙종 때의 경우를 보면, 숙종은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서인과 남인에게 번갈아 정권을 맡긴다. 숙종때에만 이미 3번의 환국이 있었다. 이 경우 미약한 왕권에 비해 강력한 붕당들의 위세에 눌려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손 치더라도 국왕으로서 남인과 서인을 고루 중용하거나 화합시키지 못하고 어느 한쪽 편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집권한 당이 반대당에 대해 정치보복이나 공세를 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이것은 결국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하여 환국이 일어날 때마다 피바람을 불러 일으키고 국정을 어지럽게 하였다. 왕조국가에서 -비록 왕권은 미약했지만- 부국강국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현명한 군주가 필수조건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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