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에큐메니칼 운동사 독후감
나는 이 책을 아시아 기독교를 알아보는 것을 중심으로 읽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계속 된 독서를 통해 아시아 기독교 선교사들을 통한 에큐메니칼적 중요성을 중점으로 읽을 수 있었고, 더 자세히 교회를 통한 아시아적 에큐메니칼 운동에 대해 알 수 있었다.
먼저 이 책에서 보여주고 자 하는 것은 선교사들이 주는 에큐메니칼적 중요성이었다. 세가지의 중요성이 있었지만 그 중 하나는 “아시아 교회의 산파”로서의 역할이다라고 한다. 하나님의 전략 안에서 실패는 항상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많은 실패가 좋은 역사를 만들었다. 선교사들, 그들의 활동 그리고 기관들이 무엇을 했든지, 그들은 분명히 아시아 전역에서 기독교 교회가 탄생하는 데 산파 역할을 했다. 세 가지 방법으로 이 일이 이루어졌다. “무엇보다도, 선교사들의 삶과 메시지는 뛰어난 아시아 기독교 지도자들이 성장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력을 끼쳐왔다.” 아시아에서 토착교회의 성장을 위해 사용된 두 번째로 중요한 수단들은 “선교기관들, 특히 기독교 대학들”이었다. 세 번째로 중요한 봉사는 성경을 번역하고, 인쇄하고, 보급한 것이었다.
여기서 한스 루에디 베버는 선교사들의 실패에 대해 무엇을 말하든지 간에, 선교사들의 증언과 인격, 선교기관들의 봉사, 선교협력의 시작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의 도구로서 선교사들은 아시아 교회의 성장에 유익했다고 이야기 했다.
또한 에큐메니칼 운동은 어떤 점에서 복음주의 운동과 그 결과로 생긴 선교 운동의 부산물이었다고 한다. 선교운동들은, 비록 본의는 아니었지만, 근대 에큐메니칼 운동의 선구자가 되었다. 각자는 자신의 특별한 목적-선교활동 혹은 사회개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비록 그 목적이 에큐메니칼은 아니었지만, 그것들은 결과적으로 에큐메니칼이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일치의식, 즉 “서로 다른 교파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동반자의식”을 창조했다. 비록 공식화되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공동의 노력 밑에 깔려있는 근본적인 기독교 일치의식은 모든 참된 그리스도인들을 그리스도의 삶을 공유하며, 그 공유를 통해 하나가 되며, 이러한 하나됨은 기독교 일치의 본질이라는 것이었다.
새로운 선교활동은 다른 교파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협력과 일치를 증진 시켰다. 몇몇 선교사들은 선교현장에서 부딪히는 도전자들을 보면서, 홀로 일하는 것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바꾸었다. 개척자 중의 한사람인 윌리엄 캐리는 각 교파는 선교현장에서 각자 따로 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2년간의 그의 선교경험은 그의 생각을 수정했고, 그는 타교파에 대한 그의 에큐메니칼적 태도를 발전시켜서, “모든 교파 그리스도인들”이 선교대회의 회집을 제안하고 강력히 추진했다.
우리가 기독교의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그들의 문화와 사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한 넓은 이해가 없이 우리가 복음을 전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성급한 결과를 초래 할 수 있음을 우리는 인식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와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폭 넓은 이해보다는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과 같은 특징을 가진 모습들만을 찾고 그 속에서만 복음을 전하려 하고, 더 큰 복음은 생각도 하지 못하고 살아왔던 것 같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 했듯이 ‘모든 참된 그리스도인들을 그리스도의 삶을 공유하며, 그 공유를 통해 하나가 되며, 이러한 하나됨은 기독교 일치의 본질이라는 것이었다.’ 라는 말처럼 우리는 하나의 뜻을 가지고 동반자 의식과 함께 그 하나의 뜻을 이루려고 노력했어야 했고, 그 속에서 하나가 되었어야 했고, 더 큰 복음을 전하려 했어야 했다. 어쩌면 이러한 에큐메니칼적 모습이 우리에겐 정말 중요하게 자리 잡아야 하고, 필요한 것임을 느낄 수 있었다. 조금은 느리고 힘들지라도 넓은 이해와 함께 하는 마음이 더 큰 것을 이루는데 큰 힘이 되지 않을 까 생각을 해보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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