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한국사를 보는눈
책을 읽고 서평을 쓴다라는 과제가 주어 졌을 때 그리고 나에게 할당되어진 책을 받아 보았을 때 솔직히 거의 포기상태였다. 처음 내가 읽으려고 했던 책은 역사학을 위한 변론이라는 책 이였다. 보통 책이라면 그리 두껍지 않은 책 이였지만 왠지 역사라는 주제로 쓰여 졌다고 생각하니 그 책은 하염없이 두껍고 어려워 보였다. 그리고 한 장을 채 넘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서평이라는 과제는 뒤로 하고 다른일에만 몰두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한국사를 보는 눈이라는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우선은 분량이 그리 많지 않았고 책을 펴서 한, 두장 넘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이 책으로 서평을 써야겠다고 결심했다. 이 책도 역사에 대한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지식들로 채워진 책 이였으나 간간히 이해도 되었고 어느 구절은 공감되는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책을 읽고 다시 읽은 부분을 생각했을 때 연기 속을 헤매는 기분 이였지만 말이다. 그래서 책을 읽은 후 다시 앞부분을 열어놓은 채 서평을 쓰고 있다. 이 책은 한국사의 전개와 계승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연구되어 지고 이해되어져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이기백 선생님은 옛 선인들의 글이나 말은 인용하여 한국사의 흐름에 대해서 설명하고 계신다.
솔직히 이 책 모두를 안개 속을 걷는듯하여 읽지는 못했으나 그중에서 간혹 눈에 들어오는 구절이 있어서 그것에 대하여 쓰려고 하다.
이 책에서 학국사학은 신의사관, 유교적 도덕사관, 실학파의 사학, 19세기 중간 신분층의 사학, 개화기의 진보사관과 계몽적 애국사관, 민족주의 사학, 유물사관, 실증사학, 신민족주 사관으로 구분하고 있다.
그중 실학파의 사학의 이익의 말 중
“역사란 성패가 이미 결정된 후에 씌어지기 때문에 그 성패에 따라 아름답게 꾸미기도 하고 나쁘게 깎아 내리기도 하여 마치 당연한 것처럼 만든다. 또한 선한 쪽에 대해서는 그 잘못을 많이 숨기고, 악한 쪽으로부터는 그 좋은 부분을 반드시 없애버린다. 따라서 어리석음과 슬기로움에 대한 판별이나 선악에 따르는 응보가 마치 징험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당시에 훌륭한 계책이었는데도 이뤄지지 못했고 졸렬한 계획이었는데도 우연히 화를 피했으며 선한 가운데 악이 있었고 악한 가운데 선이 있었다는 것을 모른다. 천년이 지난 뒤에 어떻게 참으로 옳고 그름을 알 수 있겠는가”
라는 구절이 인용되어있다. 역사책이나 사극에 나오는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의 구분은 정말 정당한 것일까라는 의문이 가지고 있었다. 너무 허황된 생각일지는 모르겠으나 장희빈과 인현왕후를 볼 때 장희빈은 악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고 인현왕후는 어진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고는 하나 어쩌면 장희빈은 그 당시 정치싸움의 재물이 아니였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했다. 남인과 서인의 당파싸움에 패하게 되면서 역사는 인현왕후의 손을 들어주고 그쪽으로 역사가 씌어졌으니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은 어쩌면 너무 인현왕후 쪽으로 편파 되어 씌어진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위에서 말한 구절이 내가 생각 했던 것과 일치하는 이야기인지는 확실히 모르겠으나 저 구절을 보면서 내가 예전에 생각해왔던 것을 떠올리게 됐다.
그리고 19세기에 사, 농, 공, 상의 구별이 뚜렷했던 때에 중간계층들의 신분 상승을 요구하는 역사서가 많이 쓰여 졌다고 한다. 그중
규사원편의 서에서 심희순은 “ 우리나라 청직, 요직의 품계와 관직은 오로지 지위와 문벌이 있는 세가만을 숭상하면서 오직 서얼에 대해서는 벼슬길에 나감을 막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뿌리는 가지에 의존하고 가지와 뿌리에 붙어 있는 것이 줄기이다. 줄기에 혹은 종기 같은게 있더라도 가지가 혹 무성히 자랄 수 있으니 천리가 원래 적자를 돕고 서자를 억누르는 일이 없음을 알 수 있다” 고 인용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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