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닥터 이라부 감상문
지난 주 목요일 (11월 18일), 수업이 끝나고 친구와 함께 대학로 나들이를 갔다. 그 전 주의 토요일에 이은 두 번째 나들이였다. 사실 그 전의 13일 토요일에 수업을 함께 듣는 친구와 기대를 잔뜩 한 채 연극 를 예매했지만,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인해 나 혼자 연극시간에 조금 늦게 되었다. 나는 연극이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영화관처럼 들여보내 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생각하며 헐레벌떡 뛰어왔지만, 게이트에서 연극이 이미 시작되었으니 들여보내줄 수 없다는 답변을 듣게 되었다. 많이 늦은 것도 아니고 안에 있는 친구와의 연락을 통해 정말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음을 알고 있던 나는 당황스러움과 짜증이 겹쳐 몇 번 부탁을 해보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그러나 곧 관계자와의 대화를 통해 희곡론 시간에 배우던 연극의 ‘기본’에 대해 깨닫게 되었다.
“지금 들어가면 배우의 연기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관계자의 말씀은 수업시간에 너무도 많이 들어 당연한 연극의 속성이라 인지하고 있던 ‘연극의 쌍방향성’에 대한 이야기였다. 왜 이렇게 연극을 보러 온 관객에게 딱딱하게 예외 없이 구느냐에 대해 불만을 가득 안고 있던 나는 무대 앞의 관객의 반응 하나하나가 배우들의 연기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나 하나 쯤 지금 들어가도 상관이 없는 영화관과는 달리 심하면 극 전체에 영향을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들여보내달라고 말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결국 관극 날짜를 변경하고 하루 더 시간을 비워 연극을 보러 가야 했지만, 영상문화와는 다른 속성을 지녔다고 말로만 듣고 글로만 배우던 ‘연극’에 대해 직접 깨달을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사건 이후 18일에는, 수업이 끝나고 부지런히 친구를 만나 극장으로 향해 일찍 도착할 수 있었다. 가끔 소극장의 연극이나 뮤지컬을 즐기기는 했으나, 다소 오랜만에 찾은 소극장에 걸린 ‘제 1병동’, ‘제 2병동’, ‘중증 병동’ 등의 관객 자리의 팻말은 이번 연극이 관객과의 소통을 전제로 할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연극 는 정신과 의사 이라부와 간호사 마유미가 병원을 찾은 3명의 환자를 자신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치료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3명의 환자는 각각 선단공포증(뾰족한 물건을 보면 겁을 내는 병)에 걸린 조폭 아스팔트 파의 행동대장 강철근, 자의식 과잉으로 있지도 않은 스토커를 만들어낸 스타 지망생 이혜리, 마지막으로 언제나 착해야 한다는 강박증으로 음경강직증을 앓게 된 평범한 남성 김선남이다.
의사 이라부는 선단공포증에 걸린 조폭 강철근에게는 도리어 뾰족한 것을 일부러 보게 만들어 그의 공포증을 극복하게 하려는 치료법을 선보인다. 뾰족한 걸 무서워하는 환자에게 뾰족한 걸 강요하는 치료라니. 돌팔이가 따로 없다고 생각했다. 강철근 역시 이러한 의사의 행동에 어이없어하며 다시는 이 병원을 찾지 않겠다고 소리치며 나가지만 결국 다음날, 그 다음날에도 이라부의 정신병원을 찾는다. 결국 아스팔트 파의 행동대장 강철근은 선단공포증을 완전히 극복해내지는 못하지만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강철근이 자신의 콤플렉스와도 같은 선단공포증을 인정하는 모습이었다. 문득 자신의 치부는 무조건 숨기고 감추려고만 하는 우리들 또한 강철근과 같은 정신병 환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 연출자 또한 연극을 관람한 우리가 이를 깨닫고 강철근처럼 우리의 결점을 결점으로 받아들이고 더 나아지고자 노력하는 모습으로 변화하기를 바랬던 것은 아닐까?
자의식 과잉으로 환상속의 스토커를 보는 스타 지망생 이혜리 또한 이 시대의 우리의 보편적인 모습을 담고 있다고 본다. 하루라도 달리지 않으면 뒤처지는 현대에서 누가 쫓아오고 자신을 앞지를까봐 불안에 떨고 있는 우리의 모습은 이라부 정신병원을 찾은 이혜리와 다르지 않다. 이라부는 아무도 자신의 이야기를 귀담아듣지 않는다고 토로하는 이혜리의 말을 귀담아 들어주고, 또 믿어줌으로써 그녀에게 서서히 환상속의 자신이 아닌 실제 자신의 모습을 깨닫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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