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감상문 뻔하지만 fun한 드라마만들기를 보고
11월 21일. 겨울의 길목에서 청춘을 즐기려는 젊은이들이 왁자지껄한 소음과 흥겨움을 만들어 내며 대학로 밤거리를 즐기고 있을 때 나와 날 따라온 후배 우리 두 사람만은 갈 곳 없이 방황하고 있었다. 무슨 말인고 하니 교양국어 과제를 위해 몇 주 전부터 인터넷을 뒤져 예약해 놓은 이란 연극을 버스가 밀리는 바람에 30분이나 늦어 아예 들어가지도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당장 과제 제출일은 삼일 앞이고, 예매해놓은 연극은 못보고 공짜공연 보여주겠다고 한껏 폼 잡으면서 데리고 온 동생에게도 면목이 안서는, 이래저래 난처한 상황이었다.
아쉬움과 당황스러움을 안은채 거리를 헤매고 있었는데 신호등 건너편에 라는 곳을 발견했다. 이곳은 그날의 대학로에서 열리는 모든 연극을 시민들이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하고 할인도 해주는 곳인데 다행히도 그곳 직원의 도움을 받아 란 작품을 고를 수 있게 됐다. 이대로 하루를 공치고 대학로까지 헛걸음을 한 것인가...라는 걱정을 하고 있던 중이어서 나에게 그 직원은 마치 하늘에서 신께서 내려주신 천사처럼 보였다. 너무 과장인가? 어찌됐건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란 연극은 시작되었다.
이 연극은 가볍고 유쾌한 로맨틱코미디극으로 젊은 남녀 배우들의 사랑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흥미로운 점은 바로 연극의 구성방식인데 이날의 드라마를 이끌어갈 두 커플을 관객들이 직접 투표해 뽑는 ‘관객 참여형’ 연극이라는 점이다. 극은 3명의 ‘가난한 옥탑방녀’와 3명의 ‘재벌 2세 실장님’ 의 자기소개로 시작된다. 시골에서 올라온 세상물정 모르는 달리, 집안이 갑자기 망해 실장님의 회사에 복수를 꿈꾸는 강희 그리고 온갖 잡다한 일에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씩씩한 파출부 아가씨 은수가 여자주인공 후보라면 달콤한 로맨틱가이 태욱, 요즘 대세인 돈많은 까칠남 이로 그리고 유들유들한 막무가내 진창이 남자주인공 후보이다.
관객들은 이 자기소개시간에 배우들을 잘 기억해 뒀다가 소개가 끝난 후 진행되는 인기투표에서 기억해둔 호감 가는 남, 여 배우를 선택하여 극의 주인공 커플 둘을 뽑아야 하는데 총 나올 수 있는 커플 가지수는 9가지로 이날 인기커플로 꼽힌 주인공은 달리-이로와 진창-강희 커플이었다. 말 그대로 관객이 직접 배우를 고르고 재미없으면 중간에 다른 배우로도 바꿀 수도 있는 관객참여형 연극이라는 점이 아주 신선하게 다가온 것 같다. 극단에서 고른 극의 스토리를 일방적으로 관객이 수용하고 해석하는 것이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연극일 텐데 이 는 바로 그 당연한 공식에 의문을 두고 새로운 룰을 창조해 냈다. 넘쳐나는 연극들 속에서 까다로운 관객의 선택을 받기위해 고심한 제작진의 노력의 흔적이 보여서 좋았고 이러한 발상의 전환을 내 생활에도 적용시켜 한번 시도해 봐야 겠다고 느꼈다.
연극 자체의 내용은 아주 간단했는데 여주인공이 면접을 보러 온 날 우연히 엘리베이터가 고장나 한 공간에 낯선 남자와 갇히게 되었다. 이 낯선 남자는 당연히 이 회사 사장의 아들이고 물론 그 남자는 자신의 신분을 밝히진 않는다. 엘리베이터 고장으로 면접을 못 보게 되어 낙심해 있는 여자주인공을 남주인공은 달래주며 자기 앞에서 면접을 본다면 어떻게 했을건지 연기해보라는 황당무개한 제안을 한다. 이것에 또 여주인공은 부끄럽지도 않은지 씩씩하게 자기소개를 하게 되고 가난하지만 씩씩하게 살아가려는 여주인공의 모습에 또 남주인공은 반하게 된다는 뭐 그렇고 그런 비현실적인 신데렐라 스토리이다. 실제로는 일반회사원과 높은 사람들이 타는 것이 구분되어져 있어 이런 일이 일어날 확률은 거의 없다고 하고 절대로 엘리베이터는 그렇게 쉽게 고장 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환상을 드라마에서만 만족시켜야 한다는 사실이 아쉽긴 하지만...
대한민국 여자 중에 한번도 이런 신데렐라 스토리의 주인공을 꿈꾸지 않는 여자가 있을까? 우리 주변에도 자신의 내면적인 덕은 가꾸지 않은 채 외모만 번드르하게 꾸며 부잣집 남자 하나 잡아 시집 잘가려는 여자들이 실제로도 꽤나 많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런 환상은 드라마 속에서나 해피엔딩으로 잘 끝나는 법. 현실에서의 해피엔딩은 자신의 내면적인 아름다움을 가꾸고 남자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기능력을 키울 때 가능해 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뭐 어쨌든 심각하지 않게 실컷 웃으면서 스트레스 해소하기에 는 딱 좋았던 나름대로 괜찮았던 연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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