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식민지시대 지식인의 글읽기와 삶읽기_ 또 하나의 나
책 한권을 통해 어느 샌가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삶이 부끄러워지고 나약해져 있음을 확인 할 수 있다는데 크나큰 놀람과 실망을 감추지 못하였다. 이 책의 저자인 조혜정 교수님은 과연 어떤 말을 하고자 이 글을 썼을까?
처음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나는 왜 저자가 ‘탈식민지시대’라고 표현을 했는지 의문이 들었고 특히 그 시대의 지식인들의 글 읽기 삶 읽기를 통해 저자가 무엇을 말하려는지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책을 접하려고 하다 보니 정신적으로 혼란이 왔다.
솔직히 말해서 ‘탈식민지시대’라고 말을 하면 우리나라에서는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난 상태를 말하는 것이고 나머지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제 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나라들이 강대국으로 부터 식민 지배를 당하던 시기에서 벗어난 것을 흔히 ‘탈식민지’라고 말을 하고 나또한 학교를 다니며 그렇게 배우면서 자라왔다. 그래서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는 것 또한 그 시기에 지식인들이 식민지지배에서 쓴 단순한 글이겠거니 하고 생각하고 바라보았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나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살아온 삶을 통해 이 글에서 내가 느낀 감정과 생각을 차근차근 정리해보려 한다.
풋풋한 새내기 20살이 된 나는 지금 제주대학교에 들어와서 체계화된 수업을 듣고 있고 또한 전문적인 교양을 쌓을 수 있는 책을 읽고 그 지식을 통해 글을 쓰고 말을 하며 보람찬 대학생활을 하고 있다. 고등학교 때보다는 더욱 심오하고 전문적인 지식을 배우는 곳이 대학교인 만큼 나 또한 그것에 맞추어 열심히 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가졌던 마음가짐은 얼마안가 깨지고 말았다. 대학교에 들어와 처음으로 중간고사를 보게 된 나는 속으로 크나큰 실망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나의 기대와는 다르게 시험문제는 교재나 책을 읽고 그것을 거의 다 암기 했을 때에야 쓸 수 있는 문제를 내주신 것이다. 나는 왜 실망을 했을까? 그 이유는 내 자신 스스로 생각했던 것이 있었기 때문 이였다. 대학에 들어오면 고등학교와는 다르게 수업을 진행하고 시험 또한 그렇게 진행 될 줄 알았다. 이 책에서처럼 창의적 사고를 통해 글 읽기를 하고 시험 또한 창의적인 발상을 통해서 써내려 가는 그런 식의 문제처럼 말이다. 여기서 나는 “과연 교수님들께서 단순히 암기를 하여 풀 수 있는 문제를 냄으로써 우리에게 무엇을 얻기를 원하는 것일까? 단순히 전문적인 지식습득일까? 아니면 암기력을 기르게 도와주려는 것일까?”라는 조금의 비판적인 질문들을 해보고 싶다. 교수님들에게는 죄송한 말이지만 내가 생각하기엔 그렇다. 모두를 가리키는 것을 아니지만 대부분의 대학교수님들은 이미 서구에서 들어온 이론들을 신뢰하며 추종하고 따르고 있는 것처럼 보여 진다. 서구 문학들이 나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 말은 즉, 내가 다니는 대학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대학에서는 서구에서 창작된 남의 이야기를 무비판적으로 흡수하기를 강요한다. 이렇게 흡수된 서구문학 속에는 독자 자신의 생각이 포함되어 있지 않음으로 인해, 글 읽기를 통해 독자가 진정한 글을 읽는 재미를 맛보지도 못하고 현실적 유익도 얻을 수 없는데 대학에서는 계속 이런 식의 글 읽기를 강요한다. 내게 가르침을 주시는 교수님들께서도 대학교에 소속되어있는 내게 또는 우리에게 전문적인 지식을 얻기를 원하고 얻게 강요를 한다. 마치 식민 지배를 하던 강대국의 간부(주동인)처럼 말이다. 결국에 나는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서구의 식민지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추종자’라고 단정 짓고 있다. 그 말이 지금 현대 교사, 교수들을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기서 식민지 성 이란 내가 생각하기로는 아무런 생각 없이 받아들이는 것, 자기가 습득하는 것을 비판적으로 자기의 삶의 비추어 수용하는 것이 아닌 비판 없이 있는 그대로 그것이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고 본다. 탈식민지시대의 지식인은 여기서 벗어난 것을 뜻하는 것 이였다. 하지만 이와는 다르게 조혜정교수님이 쓰신 이 책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흔히 ‘추종자’라고 불리는 다른 교수님들과는 달리 조혜정 교수님은 차별적이고 파격적인 수업방식으로 우리 교육에 문제점을 타개하려고 하고 있다. 수업방식을 토론으로 하는 방법과 매시간 쪽지를 내놓으면서 학생들이 자신의 생각을 수업에 반영함으로써 창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학생들에게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도 문제는 발생하였다. 학생들이 짜증을 내거나 싫증을 내는 경우가 빈번하고 수업에 자신감을 잃은 경우가 많았다. 왜 그럴까? 내 중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 생각해 보자.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 오로지 책의 권위의 의존한 아니, 그보다 더한 지배를 받는 정도에 억압 아닌 억압 속에 살아왔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을 때에 그것의 내용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으면 성공적 책 읽기, 공부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내 생각을 정리하기 보다는 단순히 암기력의 의존한 학습을 하였다. 나는 참고서를 통해 외운 공식을 바로 문제에 적용하면 답이 딱딱 맞아 떨어지는 일차원적인 공부, 책의 저자가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으며 지식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책 읽기를 한 것이다. 하지만 창의적으로 생각하지 않더라도 시험문제는 암기력을 요구하는 문제였고 결과 또한 만족스럽게 나왔기에 문제점을 깨닫지 못하던 나였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 수능을 앞두고 입시와의 전쟁에 뛰어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말이다.
3학년으로 진급한 나는 3학년에 올라오기 전까지의 습관을 가지고 교실에 갇혀 아무 생각 없이 일하는 마치 어떤 생산 공장에서 일하는 로봇처럼 반복적인 공부를 하며 암기하고 또 암기하려고 하였다. 계속 ‘수박 겉 핥기’ 식의 공부를 하면서도 성적은 학교에서 다른 아이들이 부러워 할 만큼 높았던 나는 그 달콤한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혼자 자신감에 취하고 쓸 때 없이 어깨가 으쓱해지기도 하고 남들에게 보여주기 식의 공부를 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참으로 쓸쓸하고 텅 비어있는 외로운 아이였다. 성적은 좋지 않더라도 창의적이면서 갇혀있지 않은 생활을 하는 게 오히려 지금 보면 더 나을 거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이유로는 적어도 그 아이들은 나보다는 비판적 사고를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고 내가 책의 권위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동안 다른 아이들은 적어도 책에서 나오는 바와 같이 겉도는 글, 헛도는 삶을 살지 않았다는데 있다. 다시 말해서 나는 식민지 성에 찌든 불쌍한 존재인데 비해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창의적으로 사고를 하고 비판하는 아이들은 탈 식민한 존재로 보였다. 내가 이것을 깨달은 것은 수능이 코앞인 시기였다. 고등학교 입시 체제로 인해 무조건적 주입식 교육이 행해지면서 내의지 만으로는 벗어 날 수 없는 현실에 비탄을 하며 “내가 과연 나를 감춘 채 ‘이론적 책 읽기’나 내 입장만 내세우기 급급한 ‘감정적인 책읽기’를 하면서 진정한 글을 쓰고 삶을 읽을 수 있을까?”질문을 하게 되었다. 그에 대한 대답은 선생님께서 상담을 하면서 알려 주셨다. 선생님께서는 “지금 네가 하는 공부가 인생의 모든 것이 될 수 없다. 선생님은 네가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을 가기를 원해. 공부를 잘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니? 그건 네가 공부하는데 있어서 주체적인 존재가 되는 것이란다. 성적이 잘나오고 못나오고를 떠나서 너의 생각을 정리할 줄 알아야 대학가서 인정받는 사람이 될 수 있어”라는 말은 내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입시와의 전쟁을 치루며 교실 안에서 수용식의 공부를 하던 내가 초라해 지는 순간 이였다. 그 후 며칠이 지나니 나도 모르게 대학생활에 맞추어 좀 더 내 생각을 정리하고 비판적인 수용을 하는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 하고 있다는 것이 조금씩 스스로 느낄 수 있었다.
다시 지금 대학생활로 돌아와 보면 고등학교 때 했던 나의 기대와는 많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지금 내가 하는 대학생활은 고등학교와 비슷한 정도에 생활이랄까? 더 나아 졌다고는 볼 수 없을 만큼 실망스럽다. 대학교에 들어와 교수님께서 학생들에게 예를 들어 “칼 마르크스에 대해서 너의 생각을 써보아라”라고 질문을 하면 학생들은 채 1~2줄을 쓰는 정도 일 것이다. 자신의 주장이 들어가 있지 않은, 책에서 외웠던 내용을 그대로 쓴 것이 대부분임에 틀림이 없다. 학생들이 조혜정 교수님의 수업방식을 어려워하는 것 또한 이와 같이 중고등학교 시절에서 나와 같이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대학까지 그 습관을 갖고 오면서 오는 현상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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