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문 쓰리 몬스터
사실 이 영화가 확실히 이상심리의 영역을 다루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영화를 보면서 우리는 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을 많이 느꼈다. 그래서 그러한 부분에 대해 손이 가는대로 지금껏 배운 이상심리의 부분에 일치하는 면이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먼저 박찬욱 감독의 「컷」이다. 이 영화에서는 인간의 증오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그것이 자신 내면에 대한 것이든 누군가를 향한 것이든. 흔히 잘난 것 하나 없고 가진 것 하나 없고 앞날도 불투명한 인간이 자신을 원망한다. 나는 왜 이렇게 못났을까? 모자랄까? 그러다 아니지 그게 왜 내 탓이야? 하늘이 내 운명을 이렇게 만들었으니까, 내 부모가 낳지 않아도 되었을 나를 낳아서 이따위로 키웠으니까. 아니지 그것보다도 내가 가질 수도 있는 것을 저 잘난 다른 인간들이 모두 다 가졌기 때문이지. 그들은 하나도 아쉬울 것 없잖아. 좋은 부모 만나 잘 먹고 잘 배우고 좋은 사람 만나 결혼하고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돈 많아, 시간 많아, 능력 많아 모자란 것이 뭐야? 그런데 난 뭐지? 하나도 가지지 못했어. 이런 식의 사고로 전개가 된다. 그런 생각들을 행동으로 옮긴다 해도 기껏 술이나 먹고 지나가던 똥개나 걷어차는 정도일터. 그러한 분노를 누군가 목표를 가지고 증오를 표출하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것이 더 나은가? 어쨌든 영화에선 그러한 이유로 인해 자신의 부인을 살해하고 멀쩡한 남의 집에 침입하여 사람을 납치하고 손가락을 자르고 타인이 자신의 아이를 죽이도록 유도한다. 그러면서 희열을 느끼는가? 그것은 모르겠다. 색감이나 음향은 좋았다. 하지만 아마 주인공은 그랬을 것도 같다. 그러다 결국은 자신도 비슷한 결말을 맞지만. 어쨌든 주인공은 반사회성 성향이 농후한 혹은 정신분열자가 아닌가 한다. 마지막에 이병헌이 부인을 목 졸라 죽이는 것을 보고 난 지나친 정신적 충격에 환영을 보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일부 사람들은 오히려 그러한 상황을 틈타 평소 탐탁치 않았던 부인을 살해한 것이라 말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외상 후 스트레스에 의한 환영이 아닐까 싶다.
두 번째는 일본의 미이케 다카시 감독의「박스」이다. 이것은 질투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사실 일본 특유의 무색무취를 별로 즐기지 않기 때문에 영화도 별로 접해 본 적이 없는데 역시나 별 재미도 없었고, 내용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물론 색감이나 분위기는 몽환적인 것이 좋았다. 극에서 일란성 쌍둥이인 두 자매가 의붓아버지처럼 보이는 자를 좋아하는 듯 한 것은 일렉트라 콤플렉스라고 봐야하는지 성적 이상심리(친아버지가 아니라면 근친상간은 아니겠지만, 성인이 어린아이를 좋아하는 것이 소아기호증이니까, 어린아이가 성인을 게다가 아버지역할을 하는 특수한 대상을 좋아하는 것도 성적 이상심리가 아닐까?)에 속하는지 확실히 모르겠다. 그러나 어떠한 방법으로라도 좋아한 것 같으니 소아 기호증(열 살이 넘어도 소아 기호증에 해당하는지 모르겠지만), 또 서로 다른 인격체를 마치 하나의 두 부분으로 분리하지 않고 통째로 생각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일까? 마지막 장면에서 샴쌍둥이처럼 하나의 몸통에 두개의 상체를 붙인 기형적인 모습을 만들어 놨다. 게다가 한쪽의 상체는 17년 전에 죽은 것으로 되어있던 언니가 어릴 적 모습 그대로 있었다. 심한 화상으로 인해 세포가 성장 할 수 없다고 했나? 그런 식으로 설명한 것 같은데 그렇다면 그 정도로도 오래 삶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게다가 피부나 눈 등의 다른 기관은 멀쩡해 보였는데 좀 이상했다. 그래서 전반적으로 진짜 그 언니가 살아있다는 것인지 아니면 지나친 죄책감에서 비롯된 환상이라는 것인지 불행히도 이해하지 못했다.
세 번째 작품은 홍콩의 프루트 챈 감독의「만두」이다. 이것은 인간의 탐욕에 대해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인육으로 만든 만두가 전설의 고향에 가끔 등장한다. 하지만 대개는 시체를 대상으로 한다. 하긴 낙태된 태아도 시체에 속하긴 하겠다. 어쨌든 인간은 늘 젊음을 추구한다. 특히나 화려한 젊은 시절을 보낸데 비해 현재가 너무나 초라하고 외롭게 느껴질 때 옛날로 돌아가고자 하는 욕망이 꿈틀거린다. 주인공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젊음을 준다는 만두가게에 가서 만두를 먹고 그에 중독 되어서? 아니 중독은 아닐 것이다. 설마 만두 먹는다고 중독 될라고? 그저 젊어진다기에 그 주재료가 낙태된 태아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꾸 찾는 것이 어떻게 보면 중독성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럼 이 배우는 어디에 속할까? 건강염려증? 물론 젊음이 건강에 크게 영향을 미치진 않겠지만 또 아예 동떨어졌다고 보기도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조금만 기미가 생기는 것 같으면, 잔주름이 조금 접히는 것 같으면 내가 늙어가는구나 하고 지나치게 염려하게 된다. 그러면 불안장애에도 속할 것 같다. 주름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사실 그 안에서 이상심리영역에 포함 되는 사람은 이 여자뿐인 것 같다. 만두가게 여자나 낙태된 태아를 파는 간호사, 낙태를 하러 온 여학생과 어머니는 도덕 윤리적으로 보면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요즘 세상에 어디 그런 것 다 따지면서 사는 사람 있나?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고 남보다 잘 살고 싶고 허물되는 것 되도록 숨기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인데. 어떻게 보면 사람도 동물이고 살아있는 태아 꺼내서 만든 것도 아니고 누군가의 필요에 의해서 이미 죽여진 시체가지고 만든 것인데 생각하기에 따라 그냥 고기만두로 볼 수도 있겠지. 문제는 그것보다 자신의 아이를 스스로의 젊음을 위해서 직접 살해하고 먹기까지 했다는 사실이 세 편 중 가장 이해가 안 된 부분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여자가 남편한테서 사랑받지 못하는 것은 나이가 들어가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결국은 남편과의 고리가 되어주는 자식이 없어서라고 볼 수도 있는데 어렵게 어렵게 가진 아이를 젊어지기 위해 제 손으로 죽여서 와드득 씹어 먹다니. 일종의 정신분열이 아닐까? 여자는 약해도 어머니는 강하다고 모성애를 표현하는데 그것이 그토록 깨어지기 쉬운 것이었나! 사실 그 장면을 보면서 허탈하기도 했고 그냥 멍하니 아무 생각이 안 났던 것 같다.
사실 위의 내용이야 누가 그렇게 분석해 놓은 것도 아니고 그냥 상식으로 좀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 혹시 이게 아닐까? 하고 꿰어 맞춘 것뿐이다. 그러니 세세하게 이건 이거고 저건 저거고 따지기 전에 만물의 영장이라고 스스로를 추켜세우는 인간의 내면에 그렇게 악마적이고 추한 모습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좀 어이없고 한편 섬뜩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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