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대한민국 4권 386 세대에서 한미 FTA 까지
홍세화 씨의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라는 책에 이런 구절이 있다. “한국에서는 공산주의자를 빨갱이라고 부른다. 공산주의자도 빨갱이지만 사회주의자도 빨갱이며 진보주의자도 빨갱이며 미국에 비판적이어도 또한 빨갱이다. 그리고 이상주의자도 휴머니스트도 또한 빨갱이가 될 수 있는 곳이 바로 한국이다.” 이처럼 우리나라 근·현대사는 빨갱이라는 적을 가정해놓고 지금 이 순간까지 흘러왔다. 첫 독재자 이승만부터 박정희, 전두환, 그리고 노태우까지. 그들은 자신들의 지위가 위협받을 때마다 빨갱이라는 불패의 카드를 꺼내들었고, 또 많은 국민들은 그 빨갱이놀음에 속고 또 속았다.
그러다 지난 1월, 이 빨갱이놀음이 결국 허위였다는 역사적 판결이 내려졌다. 정치권력에 의한 희생자, 조봉암 선생이 사형 후 52년 만에 무죄판결을 받은 것이다. 이로써 지난 50여 년 넘게 우리사회를 지배해온 빨갱이 논리는 사실적 관계 못지않게 그 허구성이 드러나 버렸다. 또 그 빨갱이 논리에 의해 희생된 말없는 존재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사회가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와중에 군대에서 아직도 금서로 남아있는 한홍구 씨의 ‘대한민국史’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 이 책에서 한홍구 씨는 말한다. “한국 현대사는 일제의 강점, 분단, 전쟁, 그리고 독재의 고통으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절망의 역사가 아닌 희망의 역사이다.”라고. 그렇다. 한국 현대사가 갖고 있는 힘, 모든 것이 사라져버린 한국전쟁의 학살에서 끈질기게 다시 일어나, 5·16 군사반란과 유신의 동토를 녹이고, 광주학살의 절망과 슬픔을 딛고 여기까지 온 것은 참으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도 결국 빨갱이 논리 속에서 억압받고 소외되고 학살당했지만 끝내는 그 긴 싸움에서 승리한,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나,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이웃을 살펴보며 다시 한 발자국 전진하자는 것이다.
『대한민국史 4』는 다섯 개의 큰 주제로 이루어져 있다. 1부에서는 노근리 폭격에서 FTA공세까지 한미관계에 대해 논하면서 한미 간의 불평등한 외교와 이러한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인 한국 내부의 친미파에 대해 말한다. 2부에서는 국가보안법이 생겨나게 된 배경과 본질, 법의 개정과 폐정에 대한 끊임없는 논란, 그리고 국보법을 바탕으로 한 언론의 탄압, 한국 현대사 연구에 대한 어려움 등이 나타나 있다. 그리고 3부에서는 김형욱의 행적들, 박정희의 언론장악과정, 재일조선인의 차별, 선거자금고백 김근태, 일본군 위안부 등 고백하는 자의 고통을 통해 과거와 현재의 상황을 살펴볼 수 있다. 4부에서는 한국 현대사의 격동기를 보낸 신영복 교수에 대해, 그리고 원폭 피해자 2세였던 김형률, 386의원들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현재를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끔 한다. 마지막으로 5부에서는 도청사건과 이승만의 자유당에서부터 열린우리당까지의 약한 여당, 사학법, 병역문제 등에 대해 다루고 있다.
대략적인 내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저자는 전체적으로 과거와 현재를 연관시키고 있다. 조선의 사대부들과 한미FTA의 문제 등을 비교하면서 역사적으로 한국의 외교를 살펴보기도 하고, 대원군과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교하기도 한다. 그리고 황우석 박사 사건과 인혁당 사건을 통해 합리적 의심을 가로막는 폭력에 대해 알아보고, 대한민국의 최초 여당인 제1공화국의 자유당과 제16대 정권의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을 비교하기도 한다. 이렇게 저자는 현재의 사건이나 현상들이 새로운 것이 아니라 과거의 일들이 반복되는 것이라 보고, 이것이 역사가 변해가는 모습들이라고 설명한다. 그 뿐만 아니라 저자는 이렇게 반복되는 역사임을 앎에도 불구하고 왜곡된 고리를 끊지 못하고 그대로 이어나가는 현재의 문제점을 비판한다. 잘못된 것을 망각하고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따끔하게 경고를 하는 것이다.
저자는 1장의 시작에 우리나라 주권, 그리고 그 주권을 미국에 바치려하는 검은머리의, 미국인보다 더 미국인 같은 우리나라사람들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이 친미파에 대한 생각은 책 전체의 곳곳에 녹아들어 있는데 때로는 친미와 반공을 하나로 묶어 당시 정치지도자들을 비판하기도 하며, 그것들에 반기를 들며 싸웠던 사람들, 당시의 개혁을 꿈꿨던 사람들이 현재 기성세대화 되어버렸다는 점을 꼬집는다. 친미의 역사를 보면 사실 기회주의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일제 강점기가 끝나갈 무렵 반미를 외치던 친일파가 해방 후에는 몸을 보전하기 위해 반미를 좌익으로 몰아세우면서 친미로 돌아선다. 이때 몰아세움을 당한 사람들은 통일운동과 민족자주를 주장했던 사람들이었음을 본다면, 친일파의 이러한 행동의 변화가 얼마나 기회주의적 매국행위인지 알 수 있다. 우리나라는 군사독재와 맞물려 더욱 ‘반미에 대한 통제’가 심해졌는데, 특히 박정희의 유신정권 때에는 더욱 그 탄압이 강했다. 그러나 세상이 변하고 세대가 바뀌면서 이제 광화문 한복판에서 성조기를 불태워도 콩밥을 먹지 않으며, 반미행위를 반대하던 수구 정치인조차도 여론을 의식한 행보를 가끔이라도 보여주곤 한다. 변화는 계속 되고 있다. 또 앞으로도 계속 변화해야 한다. 국민의 한 목소리에 작아질 줄 알아야 한다. 최근 다시 논의되고 있는 FTA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국민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국민의 목소리를 무시한 정부는 끝내 아름다운 퇴장을 하지 못했다. 요 근래의 FTA협상을 보면서, FTA가 원활히 수행되지 않으면 한미 동맹이 약화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한미동맹이 약화되고 있다는 주장의 초점은 한국정부와 미국정부 간에 큰 이견이 있다는 인식이다. 그러나 그 바닥을 보면 국내의 서로 다른 이견이 마치 한·미간 이견인 것처럼 표출되고 있다. 그들이 다시 한 번 우리의 역사를 살펴보았으면 한다. 우리의 주권은 우리가 갖고 있어야 하며 그 주인은 몇몇의 지도자가 아닌 국민 전체다. 더 이상 우리 이외의 모든 집단들에게 휘둘려서는 안 되는 것이다.
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있다. 제목 그대로 세상에 이런 일이 다 있나 싶은 별난 사람들의 별난 사연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 우습기도 하고 짠하기도 한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 때문에 상당힌 인기를 얻어 장수 프로그램이 되었다. 그런데 국가보안법이 실제로 적용되어온 역사를 살펴보면 정말 “세상에 이런 일이!”하고 깜짝깜짝 놀랄 것이다. 이 깜짝깜짝 놀랄 일은 비단 군사정권 때뿐만 아니라 국민의 정부라고 이름 붙여진 김대중 정권에서도 발생했다. 한 대학생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됐는데 그 사유가 전에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로 재판받을 때 법정에서 행한 최후진술이 문제가 된 것이다. 그 진술 중 하나는 “자본주의는 영원불변한 체제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노동자들이 스스로 사회를 통제하고 운영하는 더 발전된 체제로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밝힌 부분이고, 다른 하나는 “정리해고제 폐지와 국가보안법 철폐를 주장”하는 자신의 사상을 표현하고 행동에 옮길 자유를 박탈당하고 있는 상태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인권 대통령을 자처하는 것은 너무나 위선적”이라고 비판한 대목이다. 역사가 변화하고 발전해나가는 방향에 대해 개인의 생각을 표현한 부분을 문제 삼은 것도 어처구니없지만, 국가보안법을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한 부분을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하는 상황은 과거 유신독재 시절에 유신헌법을 개정하라는 요구를 긴급조치로 봉쇄하면서 긴급조치 자체에 대한 비판을 긴급조치로 처벌한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이러한 국가보안법의 본질에 대해 저자는 황우석 박사 사태를 통해 우리를 이해시킨다. 과학이라는 것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 한 사람의 스타 과학자에 대한 의심 없는 충성이 황우석 박사 사태의 본질이듯이, 합리적 의심을 철저히 가로막는 폭력이 바로 국가보안법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이 국가보안법이라는 것이 앞에서도 말했듯이 주로 정적을 제거하거나 자신의 정치적 지위를 확고히 하는데 이용됐고 곧 우리끼리 편 가르기의 주요 도구가 된 것이다. ‘편 가르기’의 진가를 확인하는데 있어서, 좌우대립의 역사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이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것은, “누가, 왜, 어느 시기에 그 대립을 부추겼는가.”이다. 해방직후에는 친일파, 그 이후에는 수구 정치인과 언론이 그 주체였다. 이유는 자신들이 불리한 국면의 전환을 위해, 시기는 항상 우리가 지켜봤듯이 그들의 전세가 불리하거나 혹은 자신들의 입지를 확고히 해야 할 때였다. 책에서 언급한대로 인혁당 사건 같은 경우도 정부의 지위를 확고히 하기위해 조작한 사건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이 얼마나 우스운 모습인가. 특히 대통령 선거전에는 약방에 감초처럼 이 좌우대립 논리가 반드시 등장해야 이상하지 않을 정도이다. 그러나 케케묵은 색깔시비를 일삼는 행위는 언제나 그랬듯 의미가 없으며 앞으로는 더더욱 그럴 것이다. ‘편 가르기의 역사’는 ‘피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광복 전후에도 그랬고, 한국전쟁 전후의 수많은 학살들이 그랬다. 또 학살된 가여운 영혼들과 조금이라도 관계가 있는 사람이라면, 수시로 되살아나는 연좌제에 의해 아직까지도 그 ‘피의 역사’ 한복판에 서있다. 전근대사회의 가장 비합리적인 형벌이라고 표현되는 연좌제. 한국전쟁 발발 후 꽁지가 빠질 듯이 도주하며 한강다리를 끊은 이승만의 행동도 웃음밖에 안 나오지만, 돌아와서 어쩔 수 없이 그곳에 남아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무고한 백성들에 대한 무자비한 학살과 그 죽은 이들의 자손까지도 연좌제라는 족쇄로 묶어버리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남로당 군사부의 군부조직책 경력을 가진 박정희와 외모가 닮았으니 뽑아달라고 삼류 코미디를 구사하던 이인제가, 일개 군당(君黨) 선전부장의 사위라는 이유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공격했던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또다시 연좌제를 꺼낸 그의 행동을 보며 도대체 국민의 의식수준이 얼마나 더 성장해야 ‘편 가르기의 역사’를 그만둘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누구나 잊고 싶은 과거가 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와 정직하게 대면하는 것은 사실 대단히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가해자의 고통이 피해자가 당한 고통보다 크지는 않다. 고백이 정말 필요한 이유는 고백이 치료약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고통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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