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터 잭슨의 『반지의 제왕 두 개의 탑』을 중심으로
서 론 - 판타지 영화란 무엇인가?
판타지 영화는 ‘희망’을 보여주는 장르
내가 생각하기에 판타지 영화라는 장르는 ‘희망’을 보여주는 장르이다. 우리가 희망을 품을 때 그것은 곧 ‘행복’을 뜻하며 그러한 점에서 행복은 사랑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희망은 곧 행복, 사랑이 되며 정의, 선, 아름다움과 같은 의미로도 이해할 수 있다. 판타지 영화는 바로 이러한 ‘좋은’ 가치들을 담아낼 때 역시 ‘좋은’ 판타지 영화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왜 그럴까? 그 이유 중의 하나는 판타지 영화의 특성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판타지 영화는 현실원칙보다는 쾌락원칙을 따른다. 쾌락원칙은 인간의 이성적인 면보다 감성적인 면을 중요시 여긴다는 점에서 판타지 영화에서는 뛰어난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아이디어가 중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상상력은 현실과 완전히 유리된 세상을 바탕으로 해서는 안되며 무엇보다 현실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상상력은, 판타지 영화가 주는 부정적 효과인 ‘현실도피’를 지양하고 오히려 힘든 현실을 이야기하면서 이러한 현실을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희망의 메시지는 없고 특이한 괴물이나 외계 생물체의 등장으로 선과 악을 대비시키는 등 단순한 상상력에 기초한 판타지 영화는 관객들에게 오히려 허탈감과 공허감만 가져다준다.
판타지 영화의 주관객은 어린이다. 그래서 판타지 영화의 시나리오를 쓸 때, 자라나는 어린이에게 희망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어린이는 어른의 보호를 받을 때만 자신의 세계를 안전하게 보장받는다. 안타깝게도 대한민국 사회는 그 가부장적 사회의 특성상 어린이들이 어른들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존재로 보며 존경의 대상으로 보지는 못하는 것 같다. 어린이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어른들이 사실은 원초적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어린이가 어른, 즉 두려움의 대상을 극복하는 바로 그러한 부분이 어린이들에게는 희망이 될 수도 있다. 현실 세계는 어른들만이 다스릴 수 있는 세계이며 어린이는 어른이 시킨 대로 할 때 안전을 보장받는다는 느낌을 갖는다. 현실을 부정하며 유달리 장난감에 집착하고 이 세계를 파괴시키는 판타지 게임이나 괴수 영화에 집착한다면, 그 어린이의 세계관에 이미 현실 자체가 두려움과 불안감으로 가득차 있을 우려가 크다. 이러한 어린이들에게는 어른들이 구축한 세계, 즉 현실을 파괴시키는 것만이 ‘잘못된’ 희망으로 남는다.
‘희망’다운 희망이란 삶의 좋은 안내자를 만나는 것
이러한 점 때문에 판타지 영화는 더욱더 ‘희망’다운 희망을 말해줄 수 있어야 한다. 궁극적으로 판타지 영화가 지향해야 하는 바는, 인간은 원래 사악한 본성을 타고난 존재가 아니라-설사 그렇다고 할지라도-사실은 어린이의 순수함에 의해 모두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점, 현실은 도피의 대상이거나 파괴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긍정하고 받아들여서 조금씩 아름답게 바꿔나가야 하는 세계라는 점을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반지의 제왕에서 사실상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프로도와 호빗족들은 모두 어린이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들의 영혼은 순수하여 때묻지 않았으며 그래서 탐욕의 상징인 절대반지를 운반할 수 있는 막중한 책임이 주어진다. 절대악을 상징하는 절대반지조차 순수한 영혼의 프로도를 결코 굴복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사루만과 그에 동조하는 종족들은 탐욕스럽고 ‘나쁜’ 것들이며 두려움의 대상이다. 그러나 어린이(호빗족) 자신들을 ‘나쁜’ 것들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주는 친구들(간달프, 아라곤 등)이 항상 곁에 있고 그들 덕분에 순수함, 정의, 선 등을 지킬 수 있다는 내용들이 영화 전반에 흐르고 있다.
현실적 희망과 순수, 정의, 사랑과의 상관관계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판타지 영화에서 보여주는 희망은 현실적이어야 한다. 판타지 영화는 자라나는 어린이에게 꿈과 희망을 주어야 한다. 여기서 ‘희망’이라는 말은 순수, 행복, 아름다움, 선, 정의, 사랑 등의 의미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어린이는 단순히 어린이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바로 우리 어른들의 모습 그 자체이기도 하다. 어른의 마음 안에 어린이의 순수함, 정의, 사랑 등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자라나면서 온갖 힘든 경험을 하고 지식이 아무리 쌓여도 이러한 인간 본래의 순수함은 변하지 않는다. (이러한 점에서 판타지 영화가 어린이나 덜자란 어른들을 위한 장르라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판타지 영화는 보편적 인류가 지향해야할 바를 가르쳐주는, 모든 이를 위한 장르이다.)
이러한 순수함의 감정을 일깨워 줘야 하는 것이 바로 판타지 영화의 역할이다. 지금의 어른들이 어린이가 아니었던 적이 한번이라도 있는가. 어른들은 이런 류의 영화를 통해서 ‘악’에 맞서 자신의 잠재된 순수함을 끄집어내고 그것을 통해서 모두가 함께 행복하게 사는 현실적 ‘꿈’을 꿀 수 있다. 현실에서의 ‘악’은 주위를 돌보지 않고 자신의 욕심만 챙기려는 이기주의자들, 또는 사리사욕에 눈먼 정치인이나 기업인이 될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들의 출현은 필연적이었으며 이제 이들과의 괴리감을 어떻게 극복하고 ‘돈’에 눈먼 인간들과 어떻게 조화롭게 살아가느냐가 어른들의 문제로 남게 되었다.
반지의 제왕에서 권력과 부는 행복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며 주인공 프로도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먼 호빗족이었다. 자신이 살아가는 평화로운 마을 샤이어를 비롯하여 오로지 중간계의 모든 종족들의 행복한 삶을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하고자 하였다. 세상에는 나쁜 일들이 많이 일어나지만, 그래도 좋은 것들이 훨씬 많으니 그것을 위해 싸울 가치가 있다는 샘의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샘이 말하는 좋은 것들의 의미는 바로 좋은 친구와 그들과 함께 하는 삶을 의미하기도 한다. 진정한 행복은 돈과 권력(절대반지)과 같은 것으로서 얻을 수 없으며 오로지 내 삶의 진정한 친구와 안내자를 얻음으로써 가능하다는 것을 영화는 잘 보여준다. 영화 반지의 제왕은 형제애의 소중함을, 함께 사는 삶(약자와 강자, 어린이와 어른)의 소중함을 통해서 미래의 ‘희망’을 찾는 영화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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