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외국에서 1년의 유학생활을 하며

 1  기행문 외국에서 1년의 유학생활을 하며-1
 2  기행문 외국에서 1년의 유학생활을 하며-2
 3  기행문 외국에서 1년의 유학생활을 하며-3
 4  기행문 외국에서 1년의 유학생활을 하며-4
 5  기행문 외국에서 1년의 유학생활을 하며-5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기행문 외국에서 1년의 유학생활을 하며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외국에서 1년의 유학생활을 하며.......
2003년 여름, 우리 가족은 뉴욕 주의 버팔로를 향해 한국을 떠났다.
버팔로의 UB라는 대학이 아버지를 1년간 경제학과 교수로 초청해서 엄마와 나, 동생은 덩달아 가족 동반자로 아버지와 함께 미국에 딸려 갔다. 내 동생은 비행기 안에서 가는 내내 계속 찡찡거렸다. 미국에 가기 싫다느니 한국에 계속 있고 싶다느니 영어가 너무 딸린다느니 비행기 안이 너무 건조하다느니 별별 갖은 이유를 댔지만 나는 조금 달랐다. 나도 역시 버팔로라는 새로운 곳에 대해 두렵기는 했지만 흥분도 되었다. 학교는 어떨까?? 아이들은 어떨까?? 집은 괜찮을까? 걱정이 많이 됐지만 기대감도 만만치 않았다. 버팔로는 미국의 오대호인 이리 호와 온타리오 호 사이에 있는 도시다. 이런 지리적 영항으로 날씨는 일기 예보를 아예 안 보는게 나을 정도로 변덕스러웠고 비, 그리고 특히 눈이 많이 내렸는데도 기후가 건조했다. 겨울에는 기본이 영하 10도였지만 바람이 많이 불어 체감 온도는 거의20도 가까이 되어서 원래 추위를 잘 타는 나로서는 정말 고생이었다(비록 지금은 그것 때문에추위에 많이 둔해졌지만). 여름에는 건조한 날씨 덕에 바람도 시원하고 꼭 피서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정말 좋았다. 그런데 작년 여름에 다시 한국에 왔을 때는 안 그래도 한국 여름이 찌는데 지난 여름은 특히 평소보다 훨씬 더운데다 우리 가족은 막 건조한 여름을 보내다 와서 처음 몇 주일 동안은 거의 쓰러져 있다시피 했다. 어쨌든 그 곳 여름은 시원했다.
나와 동생은 9월에 새 학년이 시작되는 날 근처에 있는 트랜짓 중학교에 갔다. 처음에는 정말 어리버리해서 담임 교실도 잘 못 찾다가 겨우 시간에 맞춰 갈 수 있었다. 가보니 모든 아이들이 정말 생소하게 느껴졌다. 동양인도 한 명 있었지만 대부분 백인이어서 적응이 안 돼 어지러웠고 갑자기 주위에서 영어로 솰라대니까 정말 긴장이 되었다. 우선 아무 곳에나 자리를 잡고 기다리고 있자니 종이 치고 드디어 담임 선생님이 들어 오셨다. 솔직히 말해서 처음에는 잘 몰랐지만 정신을 가다듬고 보니 저 앞에 키가 정말 작고 빼빼 마르신 여자 선생님이 서 계셨다. 선생님의 이름은 캐플랜이었다. 머리는 빨간색이고 쇼트커트에 파마를 하셨고 정말 깐깐하게 생긴 엄마 아버지보다 약간 나이가 많은 것 같은 선생님이었다. 그리고 더욱 재밌는 것은 그 선생님이 센과 치이로의 행방불명에서 나오는 유바바와 정말 똑같이 생겼다는 것이었다(지금 우리 2학년 아랫층 담당 과학 선생님하고도 정말 닮았다^^). 매부리코에 커다란 눈, 깐깐한 인상, 거기에 머리 스타일까지 비슷한 유바바와 캐플랜 선생님. 내가 선생님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선생님은 출석을 부르셨다. 쭉 이름이 불리다가 내 이름에서 선생님이 멈추셨다. 너 어느 나라에서 왔니? 선생님이 물으셨다. 한국이요,라고 내가 대답했다. 모든 아이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내 얼굴이 살짝 달아 오르는 것을 느꼈다. 온지 얼마나 됐지? 선생님이 다시 물으셨다. 두 달 정도 됐는데요. 두 달밖에 안 됐다구!!! 선생님이 그 앙칼진 목소리로 소리치셨다. 그 작은 몸에서 어떻게 그렇게 큰 소리가 나올 수 있는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그 순간 내 주변에 있던 아이들은 나를 호기심 반 동정심 반으로 나를 쳐다 보았다. 나는 정말 쑥스럽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해서 아무 말도 안 하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이제 모든 아이들이 내가 미국에 온
지 얼마 안 됐다는 걸 알았으니 잘 대해 줄거라는 생각도 했지만 또 내가 얼마 안 돼서 영어를 잘 못한다는 이유로 아이들이 날 따돌릴 것 같은 두려움도 들었다.
이런 두려움 속에서 수업은 시작 되었다. 그 학교는 담임 선생님이 담당하시는 과목을 매일 제일 먼저 들었기 때문에 나는 매일 아침부터 그 선생님과 대면하게 되었다. 처음에 선생님이 나를 외국인 이미지로 부각시켜서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는데 그 선생님의 담당 과목을 알고 나서 나는 정말 처참해졌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과학을 잘 못했다. 초등학교 때는 학력평가 했다 하면 항상 과학은 절반 이상을 틀렸고 중학교 올라와서는 내신 때문에 간신히 공부를 해서 댕강댕강 때워 왔는데 이제 미국 와서까지 과학에 시달려야 한다니... 맨 처음 수업은 그냥 대강 앞으로의 수업이 어떨 것인지 설명만 하셔서 괜찮았지만 그 다음부터는 완전히 악몽이었다. 안 그래도 영어라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다가 내용도 처음 접해 보는 것이었고 제일 견디기 어려운 것은 나를 정말 영어 못 하는 아이처럼 대하는 선생님의 태도였다. 다른 선생님들은 안 그랬는데 캐플랜 선생님은 정말 애들 앞에서 그 사실을 너무 드러내셨다. 물론 선생님은 나를 걱정하셔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자존심이 상했다. 난 그래도 수업 알아 들만한 정도는 된다구요!! 그래서 선생님에게 그걸 보여주기 위해서 애를 썼지만 그것은 오히려 나에게 더욱 안 좋은 결과를 가져 왔다. 하루는 실험 보고서를 쓰는데 선생님이 정해 주신 주제 말고 다른 엉뚱한 주제에 대해 너무 열심히 써 와서 결구 그 보고서는 내 성적 점수에서 제외되었고 선생님은 더욱 처연한 눈길로 날 쳐다보셨다. 내 기분이 더욱 나빠진 건 당연했다. 또 매주 금요일 퀴즈를 봤는데 나는 정말 그걸 못했다. 퀴즈 정도는 수업 내용이 어려워서 그렇다고 스스로를 달랬지만 어느 날 본 퀴즈에서 보기는 모두 소문자 abcd로 되어 있는데 나는 답을 ABCD 대문자로 썼다고 모두 틀렸다고 채점했을 때 나는 정말 화가 났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아예 과학 책은 수업 시간 빼고는 들여다 보지도 않았다. 또 어느 날은 내가 숙제를 잘 못 기억해서 잘못 제출했더니 선생님이 그걸 보시고는 교실에 울려 퍼지게 아주 큰 소리로 이렇게 하면 안 되는건데!! 왜 이렇게 했어?!라고 소리치셨다. 모든 아이들의 눈길이 나에게 쏠렸고 나는 정말 창피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선생님은 결국 아이들이 나를 더욱 외국인 취급을 할 기회를 제공해 준 셈이었다. 솔직히 그냥 한 번 잘못 기억해서 약간의 실수를 한 것 뿐인데, 선생님이 너무 오버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선생님의 기세에 눌려서 나는 가만히 있었다. 그러자 선생님이 한숨을 쉬며 나에게 공부 잘하는 여자 아이 앞으로 자리를 옮기라고 하셨다. 그 날부터 나는 캐플랜 선생님을 아주 싫어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모든 사실을 엄마 아버지께 말씀 드리지는 않았다. 안 그래도 우리가 잘 적응 못할까봐 걱정하시는데, 이런 일로까지 걱정을 끼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었다.
네 학기 중 한 학기가 지났다. 나는 그 동안 적응을 많이 해서 학교 내부도 구석구석 다 알고 친구도 사귀고 캐플랜 선생님 빼고는 다른 선생님들하고도 많이 친해졌다. 특히 내가 속해 있던 관악기 밴드 선생님은 나를 정말 좋아 하셨다. 그 선생님은 아직도 나와 연락을 하는데, 내가 할머니가 우리를 너무 보고 싶어 하셔서 한국에 가야만 한다고 말했더니 그 선생님은 농담으로 도대체 니네 할머니는 왜 이렇게 건강하시냐?? 그렇게 건강하시면 너는 26살이나 될 때 다시 돌아올 수 있겠구나하면서 무척 아쉬워 하셨다. 지금도 선생님은 항상 메일 끝에 할머니는 잘 계시냐?? 라고 써서 보내신다^^. 다른 선생님들하고는 이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괜찮아졌고 아이들도 익숙해져서 나를 더이상 외국인 취급을 하지 않고 그냥 보통 아이로 대해서 기분이 좋았다. 물론 캐플랜 선생님과의 관계는 여전히 좋지 않았다. 한 학기가 끝난 후 학교에서 각각 학생의 학부모들이 자녀의 담임 선생님과 개별적으로 상담 할 수 있는 오프닝 하우스가 열렸다. 물론 내 부모님은 캐플랜 선생님과 상담을 하게 되었다. 엄마 아버지는 저녁에 나가셔서 집에 들어 오셨는데 엄마는 약간 재밌다는 표정이었고 아버지는 조금 심각해 보였다. 엄마 아버지는 선생님한테서 내 성적표도 받아 오셨었다. 나는 긴장이 되었다. 선생님이 뭐라고 하셨어요? 내가 여쭤 보았다. 엄마는 그냥 웃으시면서 다른 건 성적 괜찮은데 과학만 떨어져서 선생님이 속이 상하신가 보더라.라고 하셨다. 나는 엄마가 건네 주시는 성적표를 말없이 받아 보았다. 성적이 생각보다 좋게 나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내 눈은 과학 점수에 머물렀다. 다른 과목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지는 점수였다. 캐플랜 선생님이 내 성적표를 보고 지었을 표정을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아마 선생님은 자기가 그렇게 잘 가르치려고 애쓰는 내 담임 반 아이가, 다른 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