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나는 반항아, 문제아들에 관련된 영상물을 무척 좋아했다. 한 번도 삐딱하게 살아본 적이 없었고 온실의 화초처럼 자라왔기 때문이었을까. 내가 겪어보지 못한 세계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어릴 적부터 일부러 그런 영화, 드라마를 골라보았었다. 드라마 학교 시리즈, 영화 비트, 짱, 외국영화 나쁜아이들(제목이 잘 기억 안난다)... 이런 영상물들을 보면서 나는 중학교 때부터 대안학교 선생님이 되는 것을 꿈으로 삼고 살아왔다. 나와 같은 반 친구로 지내는 학생들이 자꾸만 어긋난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할 때, 그들을 질책하고 욕하기보다는‘저 아이에게도 비뚤어 나가는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그들을 이해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당시의 나로서는 그 아이들을 위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고, 이 때문에 나중에 커서 대안학교 교사가 되겠다는 꿈을 키워나간 것이다.
이번에 굿 윌 헌팅이라는 영화를 도덕과제 때문에 보게 되었지만 사실 예전에 이 영화를 중간부터 본 적이 있었다. 예전에는 단순히 반항아를 주제로 한 영화라서 찾아보았는데, 교대생의 입장에서 이 영화를 처음부터 차근차근 보고 나니까 더 의미가 깊게 다가왔다. 주인공 윌 헌팅(Will Hunting)은 천재적인 머리를 천부적으로 지니고 태어났지만, 어릴 적 양부에 의해 심하게 폭행당한 기억을 안고 삐딱하게 살아가는 청년이다. 기분이 나쁘면 폭행을 서슴지 않고, 온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어보이는 윌... MIT 공대에서 청소부 일을 하고 있는 그는 제럴드 램보 교수의 눈에 들어서 일주일에 한 번씩 심리치료를 받게 된다. 그 도중에 램보 교수의 친구인 숀 맥과이어라는 교수를 만나게 되고,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 윌은 어릴 적 받은 마음의 상처를 점점 치유해 가고 이성적인 인간에서 감성적인 인간으로 거듭나게 된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램보 교수와 맥과이어 교수를 비교하게 되었다. 램보 교수는 맥과이어 교수에 비해 지적으로 월등히 뛰어난 교수이다. 사회적으로도 맥과이어 교수에 비해 훨씬 성공했지만 윌이 자신이 풀지 못하는 수학문제를 풀게 되자 좌절감을 느끼게 된다. 지금껏 자신의 지적 우수성을 뽐내면서 친구인 맥과이어 교수를 깔보았던 생활에서 일대 위기를 맞은 것이다. 이 영화는 램보 교수의 좌절을 통해 지적으로 우수한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관객들에게 깊이 인식시키고 있었다. 램보교수와 맥과이어 교수의 대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책, 그림, 이론적인 것들로는 어떤 한 사람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는 말에서 이 영화가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램보 교수보다는 맥과이어 교수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인데 램보교수는 어떤 사람인가? 맥과이어 교수는 램보 교수에 비해서는 지적 능력이 떨어지지만 사람을 정서적인 요소에 의해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보통 선생님과는 다르게 선생님 입장에서 학생을 인도하려 하지 않고 학생 입장에 맞춰 학생 스스로 움직이도록 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그는 사랑하는 아내를 잃으면서 겪었던 아픈 경험을 바탕으로 인간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있는 아픔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학생의 아픈 경험을 보듬어주려고 했다. 맥과이어 교수는 윌의 재능과 능력을 인정했지만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 윌이 진정 원하는 길을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서 맥과이어 교수는 학생의 지적 능력계발보다도 학생의 정서 순화를 우선시하는 선생님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지금까지 머리 속에 남는 장면을 꼽아 보라면 역시 윌과 맥과이어 교수와의 마지막 대화 장면을 꼽을 수 있겠다. 맥과이어 교수는 윌을 변호하기 위해 재판부에 자료를 제출하려고 하는데 거기에는 윌의 아픈 과거의 기억들이 속속들이 적혀 있다. 윌이 과거의 기억을 그저 얼버무리려고 할 때 맥과이어 교수는 윌에게 이렇게 말한다.
" It was not your fault (그것은 네 잘못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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