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문]트로이의 진정한 영웅은 누구 인가
-트로이의 진정한 영웅은 누구인가
서양철학의 이해 수업을 신청하고 가장 처음으로 본 영화는 ‘트로이’ 라는 영화였다. ‘트로이의 목마’ 라는 일화로 유명한 트로이 전쟁을 주제로 한 영화이다. 사실 난 이 영화를 보기 전에는 트로이 전쟁이 왜 일어난 건지 얼마나 오래 싸웠는지 그래서 결국 누가 승리했는지에 대해 하나도 알지 못했다.
트로이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 쓰자면 바다의 여신 테티스와 펠레우스의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한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남긴 황금 사과를 두고 헤라와 아프로디테, 아테나가 서로 다투다가 트로이 왕자 파리스가 심판을 내려 아프로디테가 주인이 되었다. 그 대가로 파리스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아내로 맞게 해 주겠다고 약속한 아프로디테는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의 사랑을 얻게 해 주었다. 아내를 빼앗긴 메넬라오스는 형 아가멤논과 함께 트로이 원정길에 나서 전쟁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영화에서도 트로이 왕자 파리스와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가 서로 사랑해 트로이군이 스파르타에서 트로이로 돌아갈 때 몰래 왕비 헬레네와 함께 돌아갔고 그 사실을 알게 된 메넬라오스가 형 아가멤논과 트로이로 군대를 끌고 가 전쟁을 한 것으로 나온다. 메넬라오스는 아내를 빼앗기고 그로 인해 자신이 느낀 능욕과 수치심, 분노 등으로 트로이에 간 것이지만 형 아가멤논은 동생의 분노는 겉으로 보이는 명분일 뿐이었고 자신에게 협조하지 않는 트로이를 항상 무력으로 정복하려는 야망이 있었기 때문에 트로이로 향한 것이다.
이를 증명하는 역사적 발견과 사실도 존재하는데 19세기 비판적 역사 연구에서는 트로이 전쟁의 신화를 허구적인 신화로 취급하는 풍조가 강했다. 그러나 하인리히 슐리만이 1870년부터 트로이 유적지를 발굴함으로서 두 나라 사이에 충돌이 있었다는 역사적인 근거를 얻게 되었다.
1930년대에 미국의 블레겐이 트로이 유적에 관한 과학적인 제조사를 시행한 결과, 트로이 전쟁이 사실성을 갖는다면 9층으로 이루어진 유적 가운데 BC 1250년의 것으로 추정되는 제 7층 A가 여기에 해당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일리아스를 분석해 정확한 트로이 문명의 위치를 발견하였으며, 이를 토대로 트로이 전쟁이 일어났다는 역사적 근거를 찾아낸다.
아까 말했듯이 트로이 전쟁의 이유는 단지 헬레나를 트로이에 빼앗겨서만이 아니다. 조금 더 문화적으로 생각을 하자면 그리스 문명과 소아시아의 트로이 문명 간의 에게 해의 패권을 쥐려는 전쟁이라고 볼 수 있지만, 크게 보면 크레타 섬을 중심으로 동, 서양이 나눠져 있는 상태에서 동양과 서양간의 최초의 충돌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이 전쟁에서 그리스가 승리를 거둠으로 해서 세계의 판도가 서양 중심으로 돌아가게 된다. 일반적으로 에게문명은 오리엔트문명, 메소포타미아문명 이후의 문명이라고 할 수 있다. 에게문명은 세계사적으로 볼 때 유럽사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에게문명은 다시 미노스(미노아) 문명과 미케네 문명으로 나누어진다.
기원전 3000년경에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한창 발달할 무렵 소아시아 지방에 살던 사람들이 지중해 서쪽으로 새로운 땅을 찾아서 항해 하다가 찾은 땅이 그리스이다. 그런데 이미 그리스에 앞서서 에게 해의 크레타 섬에서 이미 문명이 발달하고 있었다. 크레타 문명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870년 경 하인리히 슐리만이 일리아드 도시 트로이를 발굴하고, 그 후 아서 에반스 경이 크레타 섬의 크노소스왕궁 등을 발굴하면서 그들의 찬란했던 청동기 문명을 밝히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크레타 섬은 동지중해의 중앙에 위치하여 일찍부터 오리엔트세계, 특히 이집트와의 교류가 있었다. 특히 한 발 앞서 발전한 문명인 이러한 오리엔트 문명(이집트 문명과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받아들여 더욱 발전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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