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GI 제주지부 방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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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SGI 제주지부 방문기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창가학회는 종교사회학 시간에 가장 방문해보고 싶은 종교단체 중 하나였다. 그래서 답사 전에 기대가 많았다.
방문 일정이 잡힌 당일 SGI 제주본부에 도착했다. 다른 학우들이 아직 도착하지 않아서 정문 앞에서 기다렸다. 그때 입구를 들어서는 사람들 중에 초중학생으로 보이는 어린아이들부터 젊은층들이 꽤 많이 보였다. 답사 전 논문에서 읽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젊은층 회원들이 정말 많이 늘고 있는가 보다고 생각했다. 보통 불교는 연세가 좀 있으신 분들이 많이 믿는 경향이 있는데 창가학회의 경우는 좀 다른 듯 보였다.
약속한 시간이 거의 되자 드디어 강당 안으로 들어갔다. 강당 안에서 큰 스크린 화면 으로 ‘SGI 청년 페스티벌’ 생중계 영상을 봤다. 고난이도 인간탑 쌓기나 질 높은 뮤지컬, 춤 공연이 이어졌다. 공연을 하는 사람들의 벅참과 쾌감이 나에게까지 느껴졌다. 공연은 한 시간이 넘게 진행됐다. 그러자 집중력에 한계가 오기 시작했다. 스크린에 시선을 집중하지 못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신학학회라는 청년을 위한 노래가사가 한쪽 구석에 배치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청년을 위한 ~~~~’라는 문구가 적혀있는 현수막이 벽에 붙여져 있는 것도 보았다. 하지만 어디에도 중장년층을 위한 노래와 현수막은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강당에 있는 중장년층 회원들은 서운한 기색 없이 공연하는 청년들을 보며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같은 회원인데도 대접이 너무 다른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약 두 시간 가량의 공연이 끝나고 축제에 화환을 보낸 사람들의 명단이 자막으로 올라왔다. 문재인 위원장을 비롯한 정계인사와 유명인사들의 명단이 눈에 띄었다. 창가학회라는 종교의 인지도와 영향력이 이정도인가하고 놀라웠다.
중계가 모두 끝나자 우리들은 다른 강당으로 자리를 옮겨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먼저 창가학회 관계자 분이 말을 꺼내셨다. “창가학회는 어떤 미신적인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남묘호렝게쿄라는 단어를 반복적으로 말함으로서 모든 사람들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불심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이는 나 자신의 능력을 믿고 고난을 헤쳐나갈수 있게 하는 힘을 북돋운다.”고 말씀하셨다 신의 능력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능력을 끌어올린다는 것이 아주 흥미로웠다. 마치 원하는 것을 반복적으로 생각하면 실제로 이루어진다는 말처럼 “남묘호렝게쿄” 라는 말이 그러한 효과를 주는 듯 했다. 그 때 송원철 학우가 질문을 했다. 인간이 원래부터 불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남묘호렝쿄”라는 말을 한다는 것만으로 내재되어있던 불심이 끌어올려진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미신이 아니냐하는 말이었다.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다음에는 페스티벌 중계를 볼 때부터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종교활동이 주로 청년층들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 같은데 그럼 중장년층들이 서운해 하지 않겠느냐 하는 질문이었다. 그러자 “청년은 우리의 미래다”라고 답하셨다. 미래의 주인이 될 사람은 바로 청년이기 때문에 청년회원을 양성하기 위한 활동을 많이 할 수밖에 없다고 하셨다. 또한 청년의 기준은 나이가 아니라 열정이라고 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청년활동은 비단 젊은 층들만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열정이 있는 중장년층들도 충분이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나이와 관계없이 회원 분들 모두가 모두 밝고 활기찼다.
또 한 가지 질문을 했다. 페스티벌을 보면 개인의 구원이 아닌 세계평화, 사회구원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는 창가학회 관련 논문에서도 언급되었던 부분이었다. 하지만 자기 먹고 살기도 팍팍한 세상에 세계 평화와 같은 추상적이고 현실과 동떨어진 메시지가 과연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올 것인가에 대해 의문이 생겼다. 그 질문에 대한 관계자 분의 답은 이랬다. ‘남’이 행복하지 않으면 ‘나’도 행복할 수 없다. 남의 불행은 결국 남이 아니라 내 가족의 불행 그리고 나의 불행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모두가 행복해야 진정한 나의 행복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세계 평화, 사회 구원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세계평화”라는 단어는 너무 추상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논문에서 나온 것처럼 개인구원에서 사회구원으로의 메시지의 확대가 실제로 젊은층에게 어필이 되었는지, 정말 그들이 세계평화에 일조하기 위해 창가학회에 입신했을지는 의문으로 남는다.
사실, 답사를 가기 전까지만 해도 창가학회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하지만 종교의 생소함과 달리 회원들은 지나치게 평범했다. 또한 특이하게 종교의 근간은 신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나의 능력에 대한 믿음, 자기 계발에 있었다. 내가 아는 어떤 종교보다도 현실적이었다. ‘의존’이 아니라 ‘자립심’을 키워주는 종교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