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도량을 다녀와서
나는 어릴 적 엄마가 절에 가는 모습, 할머니가 절에 가는 모습이 생생하다. 그리고 종종 따라 간적이 있기 때문에 절이라는 것이 낯설지 않았다. 부처님의 모습이라든지 절에 그려진 태화의 모습들이 무섭다거나 두렵지도 않았다. 그리고 차츰 나이가 차면서 절의 향냄새가 참 좋았다. 그 향냄새 때문에 커서는 자발적으로 절에 찾아간 적도 있다. 구인사라는 절은 산 깊은 곳에 있어 사박 오일 기도를 가면 기도기간동안은 세상과 단절 되는 것이다. 핸드폰도 터지지 않고, 밖에서 음식을 먹을 수도 없다. 나는 기도를 하는 동안 깊은 신앙심 때문이기보다는, 속세와 단절되어서 몸과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요즘말로 힐링을 하고 오는 것이다.
어디선가 산세가 험한 절에 올라야 공덕이 쌓인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보리도량은 도심 속에 있었다.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이 아닌 보리도량의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리고 산속에 있는 절만큼 안락하고 편안한 기분을 주었다. 도시의 삶속에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기도를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이제까지 어찌 보면 고리타분한 불교가 세련되고 현대적이게 보였다. 보리도량을 본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절이 절 같이 않다거나, 도심 속에서 신성성이 없다고 말이다. 하지만 절은 이제 이러한 모습으로 도시 곳곳에 스며 들 것이다.
절이라는 공간은 신자들에게 마음의 안정을 주는 곳이었다. 오성스님의 목소리라든지, 말씀의 톤도 나지막하게 들렸다. 오성 스님의 말씀이 심도 있는 불교적인 이야기여서 듣기 힘들었다. 개인적으로 스님의 육식문제라든지, 권력다툼이든지 속세에 찌는 스님들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리고 그곳에 오는 신자들도 학생들이 많음에도 개의치 않고 묵묵히 기도를 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절 뿐만 아니라 종교라는 것이 이런 것 아닐까? 개인의 마음의 안정과 평온을 가져다주는 것 말이다. 각박한 세상살이에 나의 몸과 마음이 어지러울 때, 차분한 마음을 가지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종교의 순수한 기능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종교는 이러한 모습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종교라는 것도 순수함 그 자체로 남아 있기 힘들게 되었다. 불교 또한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불교의 중심이 되는 스님들도 불교에 대한 깊은 신앙심의 모습은 보기 힘들다.
우리 역사를 뒤돌아보면, 고구려, 백제, 신라에서부터 지금까지도 정치와 관계맺음이 이루어졌다. 한국사회에서 국가와 종교의 관계맺음은 상호 불간섭과 중립을 핵심으로 하는 정교분리에 근거를 두고 있지만, 실제로 각 정권에 의해 추진된 종교정책은 국가가 종교를 통제하는 결과를 초래하거나 특정 종교를 우대하는 편향성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음을 확인하였다. (박수호,2009) 종교라는 순수한 것이 정치라는 것을 통해 통제되고 색이 바라게 된 것이다. 애초에 정치와 종교는 어울릴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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