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을 보고
내 기억속의 소극장은 순수하고 감성적인 구식대학생들의 전유물이었다. 80년대 권위주의체제 하에서 억압받던 대학생들의 정서적 쉼터로서의 기능을 했던 이러한 소극장들은 나의 마음속에 독도처럼 먼 곳에 위치해 있을 뿐이었다.
내가 소극장에서 본 연극은 ‘빈방있습니까’ 뿐이다. 각각 특유의 개성을 가진 예술적 장르를 비교하기 싫지만 새로운 특징을 발견했기 때문에 불가피한 일이다. 솔직히 말하면 내용적인 건전함을 볼 때 ‘빈방있습니까’가 어제 본 ‘로미오와 줄리엣’보다 훌륭했다. 하지만 예술적인 측면과 연극만이 가지는 특징을 잘 반영한 작품은 ‘로미오와 줄리엣’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빈방있습니까’가 공연된 소극장은 일반적인 프로시니엄 극장을 대폭 축소시켜놓은 구조였다. 따라서 다소 일방적이었으며 연극 구성도 관객과 직접 호흡하면서 연극의 의미를 부여하기 보다는 있을법한 사건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데 그쳤다. 이에 반해 아룽구지 극장은 무대 앞부분만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무대 곳곳에 통로를 만들어 연극전체를 유기적으로 조화시켰다. 예를 들어 배우들이 다음 스토리를 진행할 때 일반적인 프로시니엄 무대처럼 좌우로만 나가는 것이 아니라 관객을 가로질러 나감으로써 연극의 구체성과 직접성을 높였다. 연출 또한 특이했다. ‘빈방있습니까’가 행동보다는 언어(대본)로써 이야기를 표현했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은 주로 동적인 행동으로 사건을 묘사했다. 예를 들어 연극 시작할 때 배우들의 칼춤과 율동은 긴장감을 유발시켰으며 색깔이 다른 두 집단의 옷을 통해 관객들은 두 집단이 갈등을 일으키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은 연극의 비언어성을 적절하게 이용한 것이다. 만약 두 집단의 갈등 상황을 배우가 구구절절이야기 했다면 시간도 길어지고 관객들이 초반부터 지루했을 것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원작을 그대 재구성 한 것이 아니라 우리 문화에 맞게 새 옷을 입혔다. 한복과 동양적인 의상을 통해 시각적으로 색다른 느낌을 주었으며 배우들의 행동과 대사도 기존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주는 감동과 달랐다. 더욱이 원작 ‘로미오와 줄리엣’은 감동적인 부분을 너무 강조해서 다소 진부했다. 하지만 이 연극은 동양연극의 특징인 희화화를 통해 관객들의 즐거움을 증폭시켰으며 배우들이 중간 중간에 관객들에게 툭 내뱉는 질문은 주위를 환기시켜주는 역할을 했으며 무대와 관객사이의 거리를 가깝게 했다. 특히 줄리엣 역할을 맡은 여자배우의 애교 섞인 대사는 서양여성의 독립적인 분위기와 무뚝뚝함보다 한국여성의 발랄함과 귀여움을 잘 표현했다. 또한 로미오 역을 맡은 남자배우의 대사는 한편의 시같이 부드러웠으며 한국남성 특유의 능글맞은 분위기도 잘 표현했다. 또한 첫날밤을 연출할 때 복잡한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단순히 커다란 천을 사용했지만 기발한 아이디어와 능글맞은 분위기를 연출해서 관객들을 즐겁게 해주었고 앞으로 일어날 비극을 더 슬프게 만들었다. 일반적으로 계속 진지하고 침체된 분위기가 진행되다가 슬픈 장면을 보면 그 비극적인 효과가 다소 떨어진다. 반면에 행복하고 즐거운 분위기에서 갑자기 슬픈 장면을 보여주면 비극적인 효과가 급격하게 상승하는데 이 연극은 이러한 연출을 효과적으로 잘 표현했다.
이 연극의 연출가인 오태석씨는 팜플렛을 통해 “연극은 콘크리트가 담긴 레미콘 트럭과 같다고 생각해요. 자갈과, 모래 시멘트가 뒤섞여서 끊임없이 돌아가야 해요. 안 그러면 굳어버려요. 콘크리트를 계속 돌리다가 틀에 집어넣으면 그 틀의 모양대로 번듯하게 만들어지잖아요.”라고 했다. 즉, 무대, 배우, 관객이 유기적인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만약 이 연극이 단순히 원작을 재구성하는데 그쳐서 무대와 관객이 따로 놀았다면 보는 관객도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그런데 이 연극은 배우의 동적인 움직임을 위해 기존의 무대 구조를 과감하게 깼으며 생동감 있는 연극을 보여줌으로써 훌륭한 연출을 이끌어내었다. 또한 예술적인 특징 외에도 여러 교훈을 주었는데 두 집안의 반목 속에서 피어오른 불같은 사랑을 통해 복수의 악마성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나아가 현재 삭막한 도시생활을 하는 우리의 모습에 접목시켜 이웃사촌 간에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는 교훈도 주었다. 다만 아쉬운 점은 끝에 가서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고 모두 죽고 없어지는 비극적인 결말도 끝냈다는 것이다. 특히 기독교인인 나로서는 자살로 끝난 두 남녀가 너무너무 아쉬웠다. 연출가가 원작과 다르게 해피엔딩으로 끝냈다면 우리 전통 연극인 희극의 특징을 더 부각시킬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한 가지 아쉬웠던 부분 말고는 정말 훌륭한 연극이었다. 같이 연극을 보았던 친한 누나는 평소에도 연극을 많이 보았는데 이렇게 재밌는 연극은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11월 달에 영국에서도 공연한다고 하는데 꼭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국인들이 자신들의 명작을 우리문화에 접목시켜 새롭게 탄생한 공연을 본다면 상당히 흥미로워할 것이며 한국인의 예술성을 높이 평가할 것이다. 그동안 연극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고 진부한 예술작품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연극의 이해 시간에 관람했던 두 편의 연극을 통해 연극의 새로운 모습을 뼈속까지 시원하게 느꼈고 앞으로 연극을 계속 보겠다는 의지도 확고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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