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전 멋진 신세계 잔인한 도시를 읽고
이 세 책을 봤을 때 드는 연관성은 ‘인간존엄성‘이었다. 무너져 가는 인간 존엄성으로 인해 고통 받는 춘향전의 춘향이, 잔인한 도시의 남자, 멋진 신세계의 존.
춘향전은 기생이라는 이유로 사랑하는 남자와 떨어지게 되어 수난 받는 춘향이와 이몽룡의 기구한 사랑을 이루는 과정을 나타낸 글이다.
나는 이 글에 나온 춘향이가 새로 부임한 사또에게 대항하는 모습을 유심 깊게 봤다.
수청을 거절하면 태형을 주겠다는 사또의 협박에도 꿋꿋하게 거절하며 자신의 확고한 의지를 드러내면서 버티며 결국엔 암행어사가 된 이몽룡의 등장으로 다시 사랑을 이룰 수 있게 됐다. 이 책의 내용처럼 인간존엄성이란 존엄성을 무시 받는 당사자의 생각과 행동에 따라 크게 달라 질 수 있다. 무시를 받으면 그 무시를 이겨내야만 진정한 인권을 되찾을 수 있는 것이다.
멋진 신세계는 미래의 유토피아에 대한 비판을 묘사한 소설이다. 그 안에는 큰 사건이 나타나있지 않지만 그 안의 여러 인물들이 받는 피해와 고통이 정말 잘 드러난 책이다. 멋진 신세계에 나온 그들의 세상 신세계에서는 인간이 부모가 없이 오직 인공수정만으로 계급별로 탄생하며 어렸을 때부터 받는 세뇌교육으로 인해서 감정을 느끼고, 반사회적인 행동을 하지 않게 된다. 하지만 부모 사이에 탄생한 아이가 있는데 그 인물이 바로 야만인 구역에 거주하는 ‘존’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존의 아버지가 바로 부모라는 존재를 경멸하고 인공수정 연구소에서 연구를 도맡아하는 소장의 아들이란 것이 밝혀지게 된다. 결국 그 사실에 부끄러웠던 소장은 멀리 도망치게 된다. 이 대략적인 줄거리는 부모의 유대감, 사랑이 없는 인공수정으로 태어난 인간들이 이루는 사회는 결코 유토피아가 아니라는 주장을 나타낸다.
하지만 어찌 보면 불행했던 존재는 오직 존이었다. 신세계에서 인공수정으로 태어난 인간들끼리는 결코 그들끼리 불행 감을 느끼지 않았으며 불편함도 없이 지냈다. 부모가 경멸하는 신세계란 문명사회에 들어온 존은 문명사회 구성원들에게 경멸받을 수밖에 없다. 현재 우리사회가 부모가 없는 자식을 경멸하는 것처럼 말이다. 즉 나는 과연 이 책에 나온 신세계가 불행한 세계였냐는 의문이 든다. 불행함을 느낀 존재는 부모를 가진 존과 감정을 느끼고 생각을 하는 그 외 몇 명 뿐 이었다. 이 책이 비판하는 내용은 현재 사회의 구성원의 입장일 뿐이다.따라서 나는 여기서 나온 신세계가 인간 존엄성을 파괴했다고 할 순 없다고 생각한다.
이청준 작가의 잔인한 도시는 이번 기회로 정말 감명 깊게 읽은 책이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퇴소, 면회 발길이 끊긴 교도소에서 나온 한 남자가 교도소 앞에 있는 돈을 받고 새를 방사하는 가게에서 교도소에서 받은 약속을 이뤄주기 위해 노숙하며 돈을 주워 새를 방사시킨다. 그런데 방사시킨 새들이 멀리가지 않고 다시 잡히기를 반복하는 걸 보며 의문이 들었는데 어느 날 새잡이의 포획을 피해 새 한 마리가 사내의 품에 들어왔던 새가 다시 사내에게 온다. 사내가 그 새를 유심히 보니 날개 아래쪽이 잘려 멀리 날 수 없는 날개를 가진 것을 본다. 사내는 새잡이의 상술에 분노를 느끼게 된다. 단순하게 보면 이 소설의 작가는 여기 나오는 잡힌 새들을 감옥을 퇴소한 사내와 같은 퇴소 자들을 비유한 것이라 볼 수 있겠다. 우선 사내가 새를 방사시킬 때마다 엄청난 기쁨과 재미를 느끼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감옥을 퇴소하게 되면 전과라는 꼬리표가 끝까지 붙어 그 사람의 인생을 사회인들에게 경멸받게 함으로써 몰락하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새들 역시 마찬가지로 잡힌 뒤 갇히고 설령 다시 자유를 되찾는다고 해도 잘린 날개라는 꼬리표로 인해 또 잡히는 몰락을 받게 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퇴소 자들은 죄를 지었기에 갇힌 뒤 풀렸다는 것이다. 이 점은 죄 없이 잡힌 새들과는 분명한 차이다. 설령 이 사내가 누명으로 인해 잡혔다면 정말 기막힌 비유지만 이 소설 어느 구절에도 그런 내용은 언급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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