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일제 말기 제주도의 일본군 연구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역사를 배우기 시작한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로부터 시작해서 세계의 역사, 중국의 역사, 한국의 역사를 배우는데 한반도 역사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구석기 시대부터 신석기, 청동기, 철기시대로 이어 나간 후 고구려, 고려, 조선, 현대 시대를 배우지만 한반도의 역사를 배워 나가기 때문에 제주도의 역사를 배운 적이 없으며, 그나마 조금 아주 일부분 배우면서 끝나 버린다. 그래서 나는 고등학교 때도 국사를 배워서 한반도의 역사는 대략적으로 많이 알지만 제주도의 역사는 하나도 알지 못했고 또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3번째 레포트 과제를 쓰기 전 주제를 보면서 일제 시대에도 제주도에도 아픈 역사가 있는지를 그때서야 알았고 그 순간 내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창피하였다. 그래서 일제말기 제주도의 일본군 연구를 천천히 읽어 나갔다.
1부 본토 결전 계획 속의 제주도
일단 머리말을 읽어 보았는데 1945년은 일본이 불리한 전황을 만회하고자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한 해였기 때문에 1945년은 한국 근현대사의 큰 획을 그었던 시기로 세계적인 정사가 한반도로 몰려 있기 때문에 일본군의 제주도의 움직임을 보기위해서는 1945년 8월 이전을 주의 깊게 보면 이해하기 쉬운 것을 알았다. 본문을 읽기 시작했는데 일단 일제시대 때 조선군은 주된 임무가 소련군을 1순위로 막기위한 대소작전으로 가고 있었지만 대미 작전으로 변경되면서 제17방면군과 조선군관구사령부로 개편되었다. 작전의 중심지역도 북부지방에서 남부지방으로 바뀌었다. 1919년 이후 한반도에 주둔한 일본군은 조선인의 구체적인 일상에 전면적이고 공공연하게 개입한 경우는 이때가 처음이었다. 이 부분은 대충 지금까지 배운 역사와 비슷해서 이해하기 편했다. 더 읽어 내려 가다가 제주도 항공기지를 보고 의문을 가졌다. 일제 시대에 제주도에 항공기지를 지을 정도로 제주도를 군사요충지로 봤는지가 의문이었다. 자세히 읽어보니 제주에서 장대한 본토결전의 준비가 진행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왜 일본은 일본 본토 밖에서 본토 결전 준비를 하는 지 의문이 들고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유가 궁금해서 더 읽어보았다. 일단 항공기지는 제주도 서남부 모슬포 평야에 항공기지를 건설하였다. 제주도가 전략상 각광 받은 것은 루거우차오 사건을 계기로 중국과 전면전으로 전개되어서 중국과 가까운 장소가 제주도 였기 때문에 항공기지를 건설 한 것이다. 그리고 상하이를 점령할 때 제주도 항공기지를 많이 사용하였고 상하이를 점령한 후 본거지를 이동한 후 제주도는 다시 조용해 지지만 연습항공대로 쓰이기 시작했다.
2부 제주도 조선인 강제동원의 실태
노동력 동원 정책의 전개과정을 먼저 보면 첫 번째로 남선 과잉인구의 북이책이 있다. 1930년대 초의 조선농촌은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급속한 농민분해로 소작농 비율이 최고조로 달하고 있었다. 1915년 36%에 불과하던 소작농 호수비율은 1934년 53%로 20년 사이에 17% 포인트나 증가하였다. 반대로 자소작농의 비율은 41%에서 25%로, 자작농의 비율은 22%에서 16%로 급감하였다. 농민 분해는 남선지방에서 특히 현저하게 진행되어 이들 지역에는 많은 과잉인구가 존재하고 있었다. 조선 총독부는 이러한 지역간의 인구 및 노동력 불균형 문제를 해결 하기 위해 1932년 2월 이라는 것을 만들었다. 이 단체 이민안은 사용주 측과의 합의를 거쳐 확정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최저 임금이 50~60전 수준으로 인하되어, 1934년 4월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남선과잉인구의 북이책이다.
여기 까지는 고등학교 까지 배우던 부분에서 깊숙이 들어간 부분이여서 잘 정리가 되었다. 1937년 중일전쟁 발발 이후 조선에서도 노동력 부족문제가 심각한 양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광부도 부족하였지만 가장 중요한 노동력 공급처였던 농촌에서마저도 심각한 양상으로 나타났다. 이때 북이책이 관알선정책으로 바뀌는데 1937년 이후 관알선은 그 이전에 비해 규모도 커지고 보다 조직적이고 강제적인 것으로 변해갔다. 1944년에는 이러한 관알선 방식에 의한 노동력 동원 방식에 덧붙여 국민징용령에 의한 징용이 실시되기 시작하였다. 국가기록원의 설명에 따르면 왜정시 피징용자명부는 1957년~58년 한국 정부에서 작성한 것으로 일본에 강제 연행 되었던 피해자 본인 및 가족들의 신고에 의해 기록되었고 명부는 이름, 징집당시 나이, 주소,기간, 현주소, 연행지 등이 기재 되어 있다. 이 부분을 보면서 일제의 구체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강제 징용한 것에 대해 다시 깊은 분노가 일어났고 하루 빨리 일본에게 큰 배상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주도의 강제동원 경험자들을 이 명부에서 확인해 보면 거의 확인이 안되는 걸로 보아 당시 제주도는 4 3 이라는 큰 혼란 때문인지 많이 잘못된 부분이 있는거 같지만 그래도 희생자는 많다. 명부로 보면 제주도 출신의 비중은 1%로서 제주도의 인구비중 0.9%를 약간 상회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별다른 특이점이 없어서 육지에 비해 적게 갔거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다음페이지를 봐보니 그게 아니였다. 제주도가 다른 지역들과 합쳐서 2번째로 많이 갈정도로 희생자가 많았다. 강제동원을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많이 배워왔지만 막연히 많은 사람들이 끌려 갔다고만 생각했지 이렇게 많이 끌려갈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리고 아직 정확하게 다 연구 된 게 아니고 아직도 희생자수를 더 찾아내고 배상해야한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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