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문-글쓰기와 대학생활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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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글쓰기와 대학생활

이 책은 중학교 때 처음 읽었다. 그런데 다 읽지도 못했다. 책 자체가 죽어가는 노은사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기 때문일까, 그 나이 때에는 이 책을 읽으면 괜히 우울해지고, 그런 느낌이 싫어서 읽기를 그만두었던 것 같다. 고등학생 때도 마찬가지 이다. 그 시절에는 그저 생활기록부를 좀 더 채우기 위해 급급하게 읽고,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더 컸기 때문일까, 책을 읽자마자 아무런 생각 없이 독후감을 써내려 갔던 것 같다. 이번에는 보다 여유로운 시간적 환경이 주어지고,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그 동안 내가 겪은 경험이 더 있어서 그랬던 탓일까, 보다 다른 것을 느끼게 되었다.
우선 나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남들과는 다른 고삼생활을 보냈다. 1학기와 여름방학은 남들과 같이 그저 공부를 하고, 어느 대학에 지원할지 상담하며 평범하게 지냈다. 그러나 2학기가 시작되고, 학교에서는 매년 하던 폐결핵 검사를 실시했다. 지난 2년 동안 아무런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난 그저 수업시간에 이 검사를 하러 나간다는 사실자체가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며칠 뒤 내 몸에 이상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보다 큰 병원에 가서 진단한 결과 빠른 시일 내에 수술을 했으면 좋겠다고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게 나는 의도치 않게 9월 모의고사 당일 날 수술을 하게 되었고, 수술 이후 치료를 받느라 10월 모의고사도 보지 못했다. 그 당시에는 그 상황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없었다. 깊이 생각하면 내가 너무 불쌍해 보일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 느낌이 너무 싫어서 학교에서도 평소와 같이 다니곤 했었다. 이런 경험이 있었던 탓일까 이 책이 나에게 새롭게 다가왔다.
새롭게 다가온 것 중 하나는 이 책에 보다 공감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평소에는 죽음에 대해서 딱히 생각하지도 않았고, 생각해보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작년에 그 일이 있은 후, 언제 누구에게 큰 병이, 죽음이 다가올지 모른다라는 생각이 가끔 들곤 한다. 그 때의 일을 생각하면서 책을 읽자니, 용서와 사랑부분에서는 정말 많은 것을 공감할 수 있었다. 우선 그 때의 나는 그 일을 그냥 수용하고 받아드렸다. 하지만, 요즘 그 때 ‘내가 보다 건강했더라면……’ 이라는 생각을 해보곤 한다. 그러면 나는 보다 더 많은 공부를 했을까? 더 좋은 수능성적을 받을 수 있었을까? 대학에 입학한 이후에도 수능 성적이 꼬리표처럼 달라붙는 것 만 같아서 그런 생각들이 들었던 것 같다. 모리 선생님의 말을 듣고 알게 되었다. 나는 아직 그 때의 나에 대해서 진정한 용서를 건네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이젠 ‘그런 상황에서 내가 더 최선을 다했을 수 있었을 텐데’라고 후회하지 않으려 한다. 그 때의 일로써 나 자신을 불쌍하게 만들려고 하지 않으려 한다. 그냥 내 몸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게 되는 하나의 사건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또 다른 공감을 느꼈던 부분은 ‘사랑’이라는 부분이다. 수술을 받을 때, 항상 엄마가 옆에 있어서 외로움을 느끼진 않았지만, 요즘 혼자 방에서 잠을 자기 전에 그 때의 일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곤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그 때 엄마, 아빠의 사랑은 누구보다 컸음을……. 나는 보통 혼자서 깊은 생각에 빠질 때, 한없이 우울할 때가 있다. 그런데 핸드폰으로 누군가와 카카오톡을 하거나, 페이스북을 통해 누군가의 일상을 보면 금방 활기를 되찾곤 한다. 수술을 받고 힘들어하고 있을 때, 바쁜데도 병문안을 와준 친구들을 만나니 다 나은 것처럼 친구들과 수다를 떨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더 표시하고, 그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란다. 평소에는 그들의 소중함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니 소중한 그들과 헤어지기 전에 그들에게 충분히 많은 사랑을 표현해야겠다.
하지만 모리 선생님의 말을 듣고도, 의아해 한 부분이 있었다. 과연 나는 그이처럼 나이 들어가는 것, 늙어가는 것에 대해 아무런 후회조차 하지 않을까? 정말로 젊었을 때를 그리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지금도 교복입고 있는 학생들을 보면, 그들이 꺄르르 웃는 모습들을 보면, 학교에서 같이 웃으며 놀던 친구들이 생각나면서 즐거운 학교생활이 그리워지곤 한다. 그렇지만, 지금 나는 20대 일뿐이고, 지금의 생활도 충분히 재미있고,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하지만 정말 모리처럼 병든 60대, 70대 할머니가 되어서도 그 늙음을 받아드릴 수 있을까? 치매가 걸려 아들, 딸의 모습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고, 모리 선생님처럼 누군가의 간호를 계속 받으면서도 수치심을 수치심 그대로 느낀 후 그 수치심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 우선 나의 늙음을 인정하기 전에 나는 우리 부모님의 늙음을 인정하는 것부터 배워야 할 것 같다. 가구를 천하장사처럼 요리조리 옮기고, 장을 본 후 무거운 짐을 번쩍 들던 엄마의 모습을 오랫동안 봐온 탓인가, 여행을 가서 계단을 조금만 오르락 내리락 해도 힘들어하시는 엄마를 보면 마음이 아프다. 운전을 정말 잘하시던 아빠의 모습을 볼 때도 그렇다. 이제는 한 번에 주차하시지 못하시고, 여러 번 왔다 갔다 하신 후에야 주차를 하실 수 있다. 그런 흰 머리가 많이 보이는 아빠의 뒷모습을 바라볼 때면 나의 부모님이 이렇게 늙었다는 것을 정말 인정하기 싫어진다. 그것을 인정하는 것은 왠지 오랜 기간이 지난 후에야 우리 엄마, 아빠가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셨다는 것을 알 것 같다. 이 생각을 하자니, 독립하고 싶다고 말만 하는 철부지 딸인 것 같다.
마지막으로, 글쓴이인 미치는 모리만큼 편하고 좋은 스승, 코치는 없는 것처럼 이야기 한다. 이 말은 내게 매우 부담스러웠다. 마치 내가 적어도 한 명의 아이에게 기억되는 선생님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지금도 생각하면 스쳐 지나가는 몇몇 분의 선생님들이 계신다. 하지만 중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누구셨지? 라고 매년의 선생님을 모두다 기억하기란 힘들다. 나도 마찬가지 이다. 이제 곧 선생님이 될 텐데, 그 반 아이들이 모두다 나중에 나를 기억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런데 과연 내가 어느 누구에게 기억되는 선생님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그런 목표는 참으로 멋진 것 같다. 선생님이 되는 사람으로서 선생님의 보람을 느끼는 기분이랄까? 그렇게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많은 것들을 새롭게 얻어간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