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지식의 대통합 통섭
‘Consilience이라 인터넷을 검색하고 사전을 뒤졌지만 그 의미가 쉽지만은 않았다. 단순히 여러 학문들을 통합하는 그러한 의미일 것 이라는 생각으로 책을 펼쳤다. 그러나 3장 계몽사상을 읽을 때까지도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지금도 작가의 생각을 다 읽어내지 못한지도 모르겠다. 옮긴이의 서문을 통해서 조금이나마 그의 의도를 파악하고자 하였다. 윌슨은 “사물에 널리 통하는 원리 학문의 큰 줄기를 잡고자” 이 책을 폈다고 하니 [중대사전]과 [한화대사전]에 비교적 상세히 설명되어있는 것처럼 통섭이란 의미는 ‘큰 줄기’ 또는 ’실마리‘ 라는 ‘통’과 ‘잡다’또는 ‘쥐다’라는 뜻의 ‘섭’을 합쳐 만든 말로 ‘큰 줄기를 잡다’ 또는 “모든 것을 다스린다.” “총괄하여 관할하다”는 의미가 가까울 것 같다.
작가는 첫 장 이오니아의 마법을 시작으로 끊임없이 지식의 통일성,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원천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즉, 세계는 질서 정연하며 몇몇 자연법칙들로 설명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기 시작하며 “나는 이오니아의 마법에 걸린 것이다.” 라고 말한다. 이러한 이오니아의 시작은 이오니아에 살고 있던 탈레스가 모든 물질이 궁극적으로 물로 구성되어 있다는 믿음에서 시작된다는 소박한 사유에 뿌리를 두고 시작했다고 본다.
고등학교 윤리시간에 탈레스나 헬라클레이토스 등이 만물의 근원에 대한 글을 보았을 때는 정말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어쩌면 이러한 사유가 현재 과학 사상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작가는 말한다. “인종 갈등, 무기 경쟁, 인구 과잉, 낙태, 환경, 가난 등 자연과학적 지식과 인문사회과학적 지식이 통합되지 않고서는 해결할 수 없다.”라고 정말 그렇다. 어떠한 문제를 해결하기위해서는 어느 하나의 전문가의 견해로는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 쉽게는 TV프로그램을 보아도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여러 전문가들이 나와서 토론을 벌이고 해결책을 마련한다. 또한 특수교육이나 유아교육에서 문제아동을 진단하고 중재 시 다 학문적, 간학문적, 초학문적인 접근이 이루어지는데 가장 효율적이라고 밝혀진 초학문적인 접근에서 보자면 각 전문가들이 교육프로그램의 고안과 실행의 시작에서부터 통합적으로 처치를 수행하기 위해 정보와 기술들을 서로 교환하여 통일된 중재계획을 세우고 처치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기존의 다학문적인 측면에서 각 전문가들이 각자 알아서 처치를 하였을 때나 간학문과 같이 단순히 의견만을 교환하고 각자 중재를 하였을 경우에 생길 수 있는 단점인 비효율성과 독단적인 중재로 이루어져 일관적인 처치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가 살아가는데 부딪치는 대부분 문제들을 통합된 관점과 통합된 생각으로 서로의 경계를 넘나들며 해결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우리사회는 많은 학문들의 경계를 만들어 놓았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문과를 갈 것이냐 이과를 갈 것이냐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했던 것이 새록새록 생각난다. 국어 대 수학, 과학 이렇게 과목들을 크게 두 갈래의 영역으로 나눈 것은 누구일까? 아니 사실상 들춰보면 서로 상이한 부분이기는 하다. 글쓰기나 수학은 완전한 별개의 것으로 여겨지는 것은 대분의 사람들의 생각일 것이다.
최근에 읽은 ‘두뇌를 알고 가르치자’에서도 좌뇌와 우뇌의 상이한 역할과 뇌의 부분 부분에서의 역할에 대한 연구가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이를 교육에 연계하고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어떻게 효율적으로 배울 것 인가에 대한 논의가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또 대학교에서는 전문적인 인재양성을 위해서 교양과목을 줄이고 전공과목에 치중하기 마련이다. 이렇게 학문을 분과시키고 잘게 나누어 가르치고자 한다. 이는 방대한 양을 훑는 것보다는 아주 효율적으로 보인다. 나또한 그러했다. 대학교 4년 동안 많은 과목을 두루 살피게 된다. 그 중에는 교양과목도 있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삶의 지혜가 담긴 과목도 있다. 그러나 그 많은 과목 중에서도 시험과 직결된 과목 그중에서도 시험에 나오는 부분만을 공부하고 그렇게 시험 준비를 하여 교사가 되었다. 이렇게 편협한 지식으로 교육자가 되었다고하면 윌슨은 아마도 나를 심하게 꾸중할게 틀림없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 모든 것이 나뉘어져있다. 초등학교에서 배우는 과목도 12개의 교과로, 노벨상에서도 생리의학, 물리학, 화학상, 문학상, 경제학상으로 나뉘어 있지 않은가. 이 책에서 밝히는 것처럼 지금 학문은 점차 세분화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인문학과 자연과학이란 커다란 영역은 결코 마르지 않는 강을 사이에 둔 것처럼 절대 연결될 수 없는 두 영역처럼 보인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따로 구분되는 수업시간을 제외하고 생각하더라도 이 두 영역은 극과 극에 서 있는 듯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두 영역이 다르게 보일지언정 별개로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 개인적 생각이다. 세계의 많은 대학이 두 영역을 구분하고 그 영역 내에서 더욱더 학문을 세분화하는 가운데 작가의 주장은 지금의 사회적 방향으로 볼 때 정말 뜬금없는 소리처럼 들린다. 한해 학문의 최고 수준의 권위를 나타내는 노벨상의 경우에도 생리의학, 물리학, 화학상, 문학상, 경제학상으로 나뉘어 있지 않은가.
책장을 넘기면서 차츰 작가의 이론에 공감하게 된다. 물론 작가는 그렇지 않은가? 그렇게 너희들도 생각하지? 라고 강요하지는 않는다. 여러 사례들 여러 연구들의 이야기를 꺼내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아리아드네의 실타래에서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그리스로마신화의 이야기 속 테세우스를 등장시켜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아리아드네의 실을 따라 그가 온 길을 다시 되밟아 미로를 빠져나온다는 이야기로 흥미롭게 이야기를 시작하여 이러한 미로를 미지의 물질세계로 상징하며, 우리 세계 속의 미로 깊은 안쪽에 사회과학, 인문학, 예술, 종교 등으로 갈라진 통로 속에서 인과적 설명들을 이어 주는 실타래가 잘 풀려있다면 어떤 통로에서는 나올 수 있는 황금열쇠와 같은 존재라고 설명한다. 즉, 행동과학을 거쳐서 생물학, 화학 그리고 물리학으로 되돌아가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 즉 지식들이 학문들이 모두 연결되어있다는 것을 암시적으로 자연스럽게 이끌어낸다. 나도 어느 정도 아니 상당부분을 공감한다. 경험으로 축적된 지식들을 쉽게 구분하기위해 또 어떤 이유에서든 분과된 것은 사실이나 이러한 경험들 지식들이 어쩌면 하나의 뿌리에서 나와 여러 가지로 뻗어나간 것임을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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