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오두막
오두막을 읽고 - 삶의 아픔을 치료하는 공간
오두막을 읽고난 느낌과 감상을 정리해 보았다. 이 책은 사람들이 종교나 신에 대해 한번쯤은 궁금해해봤음 직한 질문에 대한 모든 답이 실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기에 더해 내게는 신의 입장에서 인간의 모습을 비춰보는 기회가 되었다. 내 스스로가 종교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삶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기회도 만들어주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주인공이 막내딸을 죽인 연쇄살인범을 용서하기 위해 애쓰는 부분에서 주인공이 파파와 대화하는 부분이다. 자식이 살해당한 후 신과 대립한다는 부분은 영화 밀양과 비슷하지만 용서하는 과정은 사뭇 다르다. 밀양의 전도연은 미리 신이 범죄자을 용서했다는 생각에 분노한다. 오두막의 주인공 매켄지는 하나님과 3일을 보내며 믿음을 다졌음에도 살인자를 용서하기까지 많은 원망과 아픔을 쏟아낸다. 자신이 살인범을 용서하면 그자의 죄가 씻겨질까 봐 쉽게 용서하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자신이 용서하면 자신의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이지 그자의 죄는 나중에 심판하겠노라 답한다. 이 얼마나 공정한 대답인지.
오두막을 덮은 지 하루 꼬박 지났지만 아직도 머릿속에 하고 싶은 말이 얽혀 있고 풀리지 않는 느낌이다. 주변 사람과 함께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몇권 주문해 보냈다. 다음주쯤에는 함께 토론하고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두근거린다.
기독교인이든 천주교도든 비기독교인이든 꼭 한 번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특히 신의 존재에 대해 조금이라도 의심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꼭 읽어보기 바란다.
맥이 찾아간 오두막에서 삼위 하나님을 맞닥뜨렸을 때, 나도 모르게 원망의 말들이 터져 나왔다. 책을 읽기 바로 직전, 나의 간절한 기도를 하나님께서 또 한 번 외면하셨기 때문이다. 맥을 따라 좇아간 오두막에서 이렇게 실재적인 하나님을 마주할 줄 미리 알았다면, 나는 책장을 넘기지 않았을 것이다. 나에게 말을 걸어오시는 하나님, 미안하지만 지금은 듣고 싶지 않아요. 아니 적어도 그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아요. 나는 삼위 하나님께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그 오두막 안에서 도망쳐 나오고 싶었다. 하나님과 직접 해결하지 않은 채, 묻어둔 나의 상처가 다시 건드려지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나의 방식대로 알아서 처리하고 겨우 진정하고 있는데, 결과를 바꿔주실 것도 아니면서,왜 상처의 한 가운데로 나를 부르십니까. 잔인하십니다. 더구나 내가 쓰러진 그 자리에서 그렇게 친근하고 인자한 모습이라니! 나는 월리엄 폴 영의 은밀한 오두막을 엿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오두막의 저자인 월리엄 폴 영은 부모가 선교사로 활동하던 뉴기니에서 자랐고, 그곳 원주민들에게 성추행을 당했던 경험이 있다고 소개된다. 그런 월리엄 폴 영에게 오두막은 모든 비밀, 아픔, 치욕적 기억들을 묻어두는 마음속 깊은 곳을 상징한다고. 나는 이 소개 글을 읽자마자 흠칫 놀라 내 마음 안의 오두막이 안전한지 확인했다.
아직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다는 것을 확인하니 안심이 된다. 그러면서 스스로 놀란다. 내 안에도 오두막이 존재하는구나! 잊은 기억이라고 생각했는데, 내 안에 집 짓고 살고 있는 은밀한 고통들. 나는 절대 들키고 싶지 않은, 누구에게도 꺼내놓고 싶지 않은, 내 안의 비밀스런 오두막을 안전하게 숨겨둔 채, 단지 월리엄 폴 영의 은밀한 오두막을 들여다보고 싶은 호기심에 사로잡혔을 뿐이다. 그의 이야기 안에는 이러한 오두막이 실재한다. 맥이라고 불리는 주인공 매켄지에게 ‘오두막은 사랑하는 딸이 유괴범에게 납치되어 살해된 장소이다. 즉, 그의 거대한 슬픔이 시작된 곳이다. 그런데 어느 날, 맥은 파파로부터 쪽지를 받는다. 매켄지, 오랜만이군요. 보고 싶었어요. 다음 주말에 오두막에 갈 예정이니까 같이 있고 싶으면 찾아와요라고 말이다.
이 장난 같은 쪽지의 진위를 맥은 확인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다시 기억조차 하기 싫은 그 오두막을 찾아간다. 마침내 그가 찾은 오두막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쪽지보다 더 황당한 세 사람과의 만남이다. 파파와 예수와 사라유,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 오두막에서 만난 삼위 하나님은 그들과의 교제 가운데로 맥을 초대하며, 그에게 말을 걸어오신다. 나는 구약의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과 대면하고자 하실 때에는 원점상황, 즉 아무것도 없는 광야로 그의 백성을 불러내신다고 배웠다. 하나님 없이는 생존할 수 없는 곳, 그리하여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시는 곳으로 말이다.그런데 오두막에서 만난 하나님은 내가 쓰러진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상처를 재료로 스스로 마음 안에 지은 집, 하나님과의 대화를 거절한 채 하나님을 피해 숨어버린 바로 그곳에 하나님이 와계셨다. 더 달아날 데도 없고, 숨을 데도 없고, 감출 것도 없는 바로 나의 가장 은밀한 그곳에 말이다. 신이 존재하는 것을 믿는 사람이든, 부정하는 사람이든 살면서 한 번쯤은 신에 대한 실망을 경험할 것이다. 세상의 모든 고통과 부조리와 불행은 신, 특히 창조주 하나님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많은 신학자, 설교가, 철학자, 저술가들이 이 문제를 고민해왔고 답해왔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여러 대답을 알고 있다. 그러나 오두막에서 만난 삼위 하나님과 맥의 대화를 통해 지금 내가 얻은 대답보다 역동적인 답변을 알지 못한다. 그것은 신학적 이론을 초월하면서도 논리적이고,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개념이면서도 명확한 이해를 제공한다.
삼위 하나님을 알 때, 그분의 일하심을 이해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나의 경험에 의하면, 치료와 자유함의 신비를 체험하게 된다. 나는 하나님을 이해함으로 비로소 나와 내 삶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맥은 자신의 딸을 죽인 살인범을 용서한다! 맥이 경험한 치유와 자유함의 신비, 그리고 그것을 통해 내가 경험한 치유의 신비가 궁금하지 않은가! 그리하여 나는 완전히 독립적인 존재이면서 동시에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존된 존재임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나에게 부어지는 자유와 평강의 충만함! 그는 아신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아신다. 내가 겪는 고통과 쓰라림을 아신다. 그분이 아신다는 그 사실 자체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위로가 된다.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뜨거운 사랑과 손에 잡힐 듯한 실재적인 소망 가운데 내 안의 상처에 새살이 돋고, 오두막은 막 피어난 꽃향기로 가득한 정원처럼 비로소 생기를 얻는다. 그것은 맛본 자만이 알 수 있는 신비이다.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