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중국 하남성을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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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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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중국 하남성을 다녀와서
중국의 첫 여행지 하남성을 갔다. 들뜬 마음으로 밤을 새고 가방을 꾸리고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그리고 출발일이 되었다. 10시간이라는 시간동안 차를 타고 가야 했기 때문에 식사될만한 것들을 꾸려가야만 했다. 잠을 자면 차에서 잠을 청할 수 없다는 생각에 나는 밤을 꼴딱 다 새고 여행의 첫날을 기다렸다. 우리는 주먹밥을 만들고 토스트를 하여서 새벽차를 기다리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우리의 눈앞에 펼쳐진 저 버스 아니다 저것은 버스가 아니다 봉고차였다. 그리고 우린 모두 좌절하기 시작하였다. 의자는 90도 다리 놓는 공간은 너무나도 좁았다. 실망감이 가장 큰 것이고 두 번째는 불만 이였다. 하지만 들뜬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한국에서도 이렇게 멀리 차를 타고 나가 본 적이 없었기에 더욱 긴장되고 설레고 들떠있었다. 차를 타고 긴장이 풀리면서 잠에 들기 시작하였다. 약1시간 넘게 달렸고 화장실에 잠시 들렸다. 우리의 차는 또다시 달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저기 멀리서 보이는 소림사의 푯말 우리가 그렇게 기대하고 또 기다렸던 소림사였다. 소림사는 중국 하남성 등봉시 숭산에 있는 사찰이다. 소림사에 대해 간단히 인터넷 검색을 해 보았다.소림사는 림제종의 대가람이다. 고루인 초조암은 원나라 때 건물이고 본전은 송나라 때(1125) 건물인데, 본전의 내부에 있는 인왕·용 등을 부각한 석주는 유명하다. 이 석주 외에 다수의 당·송 이후의 석비, 동위의 삼존불, 북제의 조상 등 200기 이상이 남아 장관을 이루고 있다. 이런 내용들을 봐도 흥미는 생기지 않았지만, 가장 기대된 것은 소림사에 성룡이 온다는 소리를 듣고 우리 모두를 들뜨게 하였다. 그러나 우린 성룡을 볼 수 없었다. 우리는 여행사와 함께였고, 돈이라는 금전적인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실망을 감을 가지고 우린 소림사의 입구로 들어서기 시작하였고, 소림사의 작은 중들을 만났다. 중들이라고 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작은 아이들은 모두 가정이 어려워 공부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온다고 하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시간을 하염없이 그냥 보냈는지 후회가 된다. 그들의 공연을 보기위해 들어갔고 우린 그들의 공연을 긴장감속에서 지켜보게 되었다. 짧고 굵게 공연은 성공적 이였다. 공연이 끝이 나고 조금 더 걸어 들어갔고 그곳에는 사리탑들이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스님들이 돌아가시면 사리가 나온다고 하였다. 그것을 그 탑 안에 넣는다고 하였다. 왠지 스님들의 노고가 눈에 보였다. 하지만 그런 멋진 광경을 보는 것도 잠시 우리는 또다시 발걸음을 옮겨야만했다. 달리고 달려 겨우 우리는 숙소에 도착 할 수 있었다. 모두들 피곤했는지 바로 잠들어버렸다. 다음날 우린 새벽에 아침식사를 마치고 만불동을 가기위해 딱딱하고 불편한 자동차의자에 몸을 실었다. 사실 중국말로 자꾸 말을 하였고 아무것도 못 알아듣는 나로서는 어디로 가는지도 목적지를 모르고 떠나야만 했다. 모르는 상태로 만불동에 도착하였다. 들어가는 입구도 도착하여서 입장을 하는 내내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룡문석굴은 낙양 교외를 흐르는 이하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룡문산과 향산의 암벽을 따라 걸어 들어가는데 웅장함은 글로 표현 할 수 없을 지경이다. 이곳에 있는 10만여 점이 넘는 불상 하나하나가 제각기 다른 표정에 뛰어난 솜씨와 멋을 자랑하고 있다니 가관이 아닐 수 없다. 다만 오랜 세월 방치되면서 훼손된 부분이 많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불상머리를 소장하면 복이 온다는 미신 때문에 머리가 떨어져나간 불상이 특히 많고, 이외에도 도굴단에 의한 불법반출, 문화혁명 당시 홍위병에 의한 파손 흔적도 뚜렷하다. 또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프랑스 일본 등 다른 나라에서 중국을 침략하였을 때 불상의 머리와 손을 없애면 중국의 힘이 약해진다는 생각을 하고 불상의 머리와 손을 훼손하였다고 한다. 룡문석굴하면 또 생각나는 것이 이하 강이다. 너무 아름답게 햇빛에 반사되어 정말 아름다웠다. 룡문석굴의 웅장함과 아름다운 조각들을 뒤로하고 우린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이날 두 번째 방문은 백마사였다. 백마사는 후한 때인 AD 67년에 인도의 승려 가엽마등·축법란 등이 명제의 사신 채음의 간청으로 불상·경전을 흰 말에 싣고 뤄양에 들어오자, 명제가 불교를 신봉하여 8년 후에 이 절을 세워 백마사라 하고, 그들을 거기 살게 한 후 사십이장경 1권을 번역하게 하였다. 후에 점차 퇴락하여 당대에 복구하였으나 지금은 전탑(13층) 1기만 남아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 스님들과 방문객들이 거대한 향을 피우고 있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백마사를 들어갈 때 가장먼저 향냄새가 코끝을 자극하였다. 들어갈 때 문 앞을 지키고 있는 사자의 형상이 위엄 있어 보였다. 백마사의 안쪽으로 들어가 여러 문서들을 늘어놓은 유리관 속으로 나도 모르게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이 문서들이 모두 번역하고 번역하기위해 사용되었다는 문서들 이란 것에 나도 모르게 집중하고 보게 되었다. 짧은 시간동안 백마사를 보기에는 백마사는 너무 많은 것들을 담고 있었다. 재촉하는 가이드를 뒤로하고 혼자 뒤쳐져가면서 그 문서들을 하나하나 차근차근 보고 있었다. 읽을 줄 모르지만 무언가 전해 지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조금의 시간만 더 있었다면 하는 마음으로 백마사를 떠나야만 했다. 빨리빨리 움직여 둘째 날의 마지막 코스에 도착하였다. 그곳은 염황 광장이라고 하였다. 다른 말로 황하유람구라 불렀다. 한없이 넒은 곳 이였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사람얼굴이 두 개가 붙어있는 아주아주 큰 돌상 이였다. 그 사람들은 염제와 황제라고 한다. 그것은 산위에 자리하고 있었다. 아직 완공이 덜되었는지 다 볼 수는 없었지만 정말 컸다. 그리고 그 염제와 황제의 돌상 반대편으로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니 우리가 서있던 광장은 마치 제사상을 차려놓은 모습 이였다. 우리는 제사상의 음식 이였을지도 모른다. 그곳에서 우리는 단체사진을 한방 크게 박았다. 무언가 큰 광장에서 뻥 뚫린 사진을 찍고 싶었다. 그렇게 사진을 정말 많이 찍고 이동하였다. 지친상태로 우린 식당으로 갔다. 항상 형주에서 먹던 식성을 가지고 하남의 음식들을 접하려고 하니 정말 먹을 수 없었다. 음식의 향이 너무나 강하였다. 빨리 우리의 형주로 가고 싶었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새로운 숙소에 도착하였다. 새로운 숙소는 우리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였지만 그래도 깨끗하였다. 하지만 나의 방에는 문제가 수도 없이 계속 생겨났다. 새로 받은 방에서 사람들이 나오고 다른 방을 받아 올라가니 그 방은 문이 열리지 않고, 등록이 되어있지 않았다. 화가 났지만 즐겁게 온 여행이기에 다시 기분은 풀렸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숙소근처를 방황하기 시작하였다. 구경 아닌 구경이 된 것이다. 새로운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가 사는 곳과는 새로운 느낌과 새로운 문화에 접해있는 것 같았다. 처음 보는 전기로 가는 버스도 접하였고 정말 길고 긴 도로에 야시장이 열리고 빨간색 등이 길 중간에 켜져 있어 도로는 한층 더 멋스러웠다. 한참을 방황하다 우린 약간배고픔을 느끼고 어느 나라에 가도 만날 수 있는 맥도날드로 향하였다. 약간의 끼니를 때우고 우린 택시를 타고 호텔열쇠를 보여주었다. 택시를 타니 또 우리가 있는 곳과 다른 것은 택시비였다. 우리는 3원으로 가지만 여기는 6원이였다. 더군다나 우린 10시가 넘은 시간에 택시를 타게 되어서 할증이 붙어 8원이 기본요금 이였다. 지역별로 큰 가격 차이에 또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우린 숙소에 도착하였고 다시 피곤한 몸을 이끌고 잠이 들었다. 잠깐 눈을 감고 뜬것 같은데 벌써 아침이 우릴 반기고 있었고. 아침 식사를 하러 내려갔다. 그리고 우린 그나마 우리에게 맞는 음식인 볶음밥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맛있게 먹고 출발하였다. 첫 번째 목적지는 청명상하원이란 곳 이였다. 이곳은 중국의 민속촌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중국에서 예부터 하던 놀이와 옛 건물들이 즐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흥미로운 것은 그곳에서 다양하게 이벤트를 준비해놓고 관광객들과 관람객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었다. 걸어 다니는 설정이벤트와 큰 칼을 들고 다니는 사람, 또 도둑을 쫒는 옛날 경찰의모습과 죄수를 잡아서 끌고 가는 설정 그리고 가장 신기한건 살아있는 동물들을 나무에 묶어놓고 사진도 찍을 수 있게 해 놓은 것이다. 우린 소와 사진을 찍었고, 또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한국의 TV에서 보았던 칼 계단을 머리로 올라가는 어린아이의 묘기였다. 당연 많은 사람들이 구경을 하였다. 그리고 우린 이곳에서 가장 높았던 건물위에 올라가 공원을 배경으로 사진을 많이 찍었다. 그리고 지쳐있던 우리가 발견한 것은 바로바로 물위를 흘러서 가는 목욕탕모양의 배를 타는 귀신의 집이다. 그것을 타기위해 우리는 10원을 내고 기다렸다. 하지만 중국인들은 질서 예절 없이 새치기를 일삼았고 화가 난 우리들은 새치기한 중국인에게 우리가 먼저 왔으니 우리가 타겠다고 당당히 의사를 밝혔다. 그리고 주위의 중국인들은 하나둘씩 우리가 중국인이 아닌 것을 알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배를 타게 되었고 우린 신나는 뱃놀이를 하였다 짧지만 무언가 지친 몸을 잠시 쉬게 해준 것 같아 좋았다. 하지만 배를 타고 나니 우리는 더 이상 구경할 시간이 남아있지 않았다. 너무 아쉬웠고 어쩔 수 없이 출구를 향하여 나가게 되었다. 아쉬워서 너무나 아쉬워서 발길이 떨어지질 않았다. 청명상하원은 하루 동안 구경해도 다 구경 못 할 정도로 큰 공원이다. 너무 커서 입이 다물어 지지 않았다. 꼭 다시 가서 차근차근 체험도 해보면서 다 돌아보고 싶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들이 너무나도 많았기에 아쉬움이 가장 컸다. 그렇게 서둘러 우린 밖으로 나가야 했는데 시간은 다되었는데 우린 당황스럽게도 나가는 출구를 찾을 수 없었다. 지도가 있었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너무 넓다보니 지도를 보고 또 봐도 이곳이 이곳 같고 저곳이 저곳 같았다. 겨우겨우 나가는 출구를 찾아 부랴부랴 달렸다. 그리고 서둘러서 우린 우리여행의 하이라이트인 포청천으로 출발하였다. 포청천은 한국에서도 너무나도 유명한 사람이다. 포청천은 누구나 한번쯤은 본 소설이다. 나 역시 포청천은 TV를 통하여서 접해보았다. 그리고 청천은 정말 최고의 정치가 인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