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한 각자의 세계로 서로를 끌어들일 수 있는 사회를 위해 - 굿 윌 헌팅을 보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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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불완전한 각자의 세계로 서로를 끌어들일 수 있는 사회를 위해
(「굿 윌 헌팅」을 보고 나서)
며칠 전부터, 잉에 슈테판의 ‘천재를 키운 여자들’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이 책은 아이슈타인, 톨스토이, 마르크스, 슈만 등의 당대 각계 최고의 천재들의 아내에 관해 새롭게 조명하고 있는 책이다. ‘유명한 남성들’과의 관계에서 그들의 부인 또는 애인으로서 여성들의 특별한 정체성 문제를 언급하고 있었는데, 나에게 커다란 센세이션이었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역사 속 에서 화려한 조명을 받은 천재들보다도,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남편보다 더 많은 천재성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간 여성들에 대한 재조명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이 저자가 핏대 세우며 외치는 이야기의 핀트에 벗어나는 이야기 이지만 내게 커다란 충격을 안겨준 것은 역사 속에 감춰져 있었던 불운했던 천재 여성들의 출현이 아니다. 그것은 그동안 내가 천재는 완벽하다고 생각했었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천재들은 뭔가 완벽한 지식의 수준과 그에 걸 맞는 최고의 윤리 의식, 도덕적 행동이 내재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기에 남편으로서 가장으로서 그에 걸 맞는 행동을 하지 못했었다는 것에 대해서 그들이 과연 모든 사람이 우러러 보아야 할 선인인가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이러한 딜레마는 영화 ‘굿 윌 헌팅’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영화는 MIT출신의 ‘수학 수훈상’을 받은 뛰어난 수학자 램보 교수가 과제로 공개 게시판 내어 놓은 희귀 수학 문제를 청소부인 ‘윌’이 해결하게 되면서 시작된다. 램보교수는 윌의 뛰어난 수학적 재능과 천재성을 알아보고, 폭행죄로 법정에 선 윌을 조건부 석방이 이루어지도록 도와준다. 이 조건이라는 것은 자신과 함께 수학 연구를 할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정신과 의사에게 심리치료를 받는 다는 것이다. 풀려난 윌은 수학연구에는 기꺼이 참여하지만 상담치료는 의도적으로 거부한다. 오만방자하고 거친 그의 불손한 태도에 다섯 명의 정신과 의사는 모두 포기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마지막으로 램보 교수가 부탁하게 되는 것이 바로 그의 동료 숀이다.
숀은 윌이 천재이지만 고아라는 환경 속에서 자랐고, 그런 그의 불운한 성장 과정은 그의 마음에 굳건한 성벽을 쌓게 하여 강한 피해 의식 때문에 맘을 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숀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윌과의 인간적인 소통을 시작한다. 윌이 가진 내면의 아픔에 깊은 애정을 갖고 관찰하면서 윌에게 인생과 투쟁하기 위해 필요한 지혜를 가르쳐 준다, 윌로 하여금 진정으로 그가 원하는 삶의 방향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만들고 각자의 삶을 극복할 수 있게 한다. 그 결과, 윌은 남을 신뢰하고 진정으로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고 타인과 자신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사랑하는 스카일라를 찾아 떠나는 것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이 과정 중간 중간에 램보 교수와 숀 교수과 ‘윌의 문제’로 큰 갈등을 일으키는 부분이 우리에게 시사하고 있는 점이 많은 것 같다. 이 두 교수는 서로 상반되는 입장으로 충돌하고 있다. 영화에서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숀 교수와 램보 교수의 대비되는 입장에서 인생의 실패자라고 낙인찍힌 숀 교수의 교육철학과 따뜻한 인간애가 한 인간에게 어떤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오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보여주는 것처럼 숀 교수의 가르침은 정말 대단하지만, 단순히 그렇게만 평가하기에는 램보 교수에 대한 평가가 상대적으로 절하된다.
램보 교수는 윌의 뛰어난 천재성이 허비되고 있다는 것이 사회적으로 또 윌 개인적으로 아깝다고 여겼기에 그가 수학에 매진할 수 있도록 물신양면으로 도왔다. 사실 램보 교수가 선인이 아니라면 가난하고 무례한 윌을 도와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윌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20년이 넘도록 수학을 연구해 ‘수학 보훈상’을 수상한 그였지만, 윌은 자신보다 더 뛰어나고 사회를 위해 더 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를 도운 것이다. 램보 교수가 윌을 도운 것은 자신이 종사하는 분야에서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최고이자 최선인 행동이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능력 안에서 사회를 위해 선을 행하였기에 그 역시 선인임이 분명하다.
그에 비해, 숀은 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의 방향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한 인간을 두고 보았을 때 이 두 교수가 취하는 행동은 달랐지만 결과적으로 그들 둘 다 윌에 대해 인간적으로 동정하고 있었기에 그렇게까지 희생하고 배려할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