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정원 선비가 거닐던 세계 한국의 정원 선비가 거닐던 세계 자연 인공
우리는 천혜의 자연환경 속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수용하며, 자연과 함께 우리의 생활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왔다. 한국인의 생활터전은 이렇듯 아름답고 풍요롭기 때문에 전원을 조성한다고 해서 특별한 꾸밈이 필요치 않았다. 하지만 필요에 따라 인공을 첨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자연 순응적인 조원방식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당시 일부 왕공과 귀족들이 경물을 인공적으로 조작하거나 배치하여 정원을 기묘하게 꾸며놓기도 했지만, 대다수의 선비나 일반인들은 자연그대로를 숭상하는 성향을 지녔다. 우리나라 정원 조성의 사상적 배후가 되는 것 가운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유학사상과 도가사상이고, 신선사상과 풍수사상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옛 사람들은 정원에 나무 한그루를 심어도 그것의 상징적 의미를 생각했다. 그래서 정원을 구성하는 경물들은 모두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인간의 입장에서 해석되고 의미가 부여된 상징적 존재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궁궐 정원이나 별서정원에서 방지원도 형태의 연못을 자주 접하게 되는데 이는 동양 고대의 우주관인 천원지방과 관련된 것이다. 삼심산과 관련된 유적 역시 현존하는 옛 정원에서 심심찮게 찾아 볼 수 있는 것 중 하나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실제로 어떤 산을 지정하여 삼신산 이라고 부르거나, 정원 내에 가산을 조성하여 삼신산으로 칭하는 경우가 많다. 옛 정원을 보면 도처에 크고 작은 동물상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두꺼비와 토끼가 일반적이다. 일반적으로 이들이 의미하는 것은 달이다. 광한루에 장식된 토끼와 거북에서 알 수 있듯이 광한루라는 이름은 달 속의 궁전인 광한전에서 유래된 것이다. 무산은 중국 사천성 기주 무현산에 실재하는 산인데, 그 산에 선녀가 살고 있다는 전설 때문에 선산으로 신비화 되었다. 이러한 무산이 정원의 경물로 현존하는 예로는 경주 임해전지의 무산십이봉과 경남진주 근교에 위치한 무산십이봉 정원을 들 수 있다. 바위와 괴석, 서양 사람들은 훌륭한 암산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바위를 감상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오히려 동양의 사람들이 바위를 애호했다. 동양 사람들은 먼 옛날부터 돌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돌이 삼라만상 중 가장 항구적인 것이라고 생각했고 자연의 모든 사물들 중에서 가장 완비되고 군더더기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정원을 조성함에 있어서 자연 상태의 바위를 본래 모습대로 정원에 포함시키려고 했고, 여의치 않으면 괴석을 옮겨 배치하기도 했다. 이렇듯 바위는 자연에 귀의하려는 마음을 깨우쳐 일으키며 마치 자연 속에서 자적하고 있는 듯 느끼게 하였다. 그래서 정원의 바위는 정원 전체 공간을 산수화 하는 기능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은행나무는 공자의 행적과 관련이 깊은데 이는 옛 유학자들이 공자를 추앙했고 그들이 정원에 은행나무를 심은 것도 공자의 행적과 사상을 상기하고 학행의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소나무, 대나무, 매화 역시 정원에서 빼놓을 수 없는 수목이다. 이 나무들이 사랑 받았던 이유는 그들이 지닌 상징적 의미 때문인데, 소나무는 선비의 절개를 나타내고 대나무는 군자의 인품에 비유되는 강인함과 겸허, 지조, 절개를 나타낸다. 매회는 추위가 덜 가신 이른 봄 가장 먼저 꽃을 피움으로 선비들의 유교적 윤리관을 보여준다. 국내 여행을 많이 다녀보지 못한 나에게 책 속에서 소개되는 여러 아름답고 고즈넉한 정원들은 다시금 우리나라에 숨겨진 아름다움을 일깨워 주기에 충분했다. 책에서 소개된 많은 정원들 중 내가 방문해 본 곳이라곤 고작 담양의 소쇄원과 경주의 포석정지가 전부지만 책 곳곳에 살아 숨 쉬는 정원의 모습들을 보며 잠깐이나마 그곳에 머물고 온 듯 한 느낌이 들었다. 평소에 산사의 사찰이나 우리나라 문화재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내게 책 속에서 보여 지는 많은 정원의 자연 경관과 그 배후에 자리 잡은 미의식과 생활 철학적 측면에 대한 깊은 설명까지 더해져 다각적 면에서 폭넓은 이해를 맛볼 수 있었다. 현존하는 지금의 옛 정원들은 선비 계층이나 왕궁, 귀족, 상류사회의 사람들에 의해 조선된 것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일반 민가에도 정원이 있었지만, 오늘날 그 원형이 제대로 보존되어 있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책 속에 소개된 별서정원 중 경주의 안압지는 내가 꼭 한번 방문해 보고 싶었던 유적지 중 하나인데 안압이라는 뜻이 기러기안과 오리압이 합쳐져 만들어진 이름이라는 새로운 사실에 대해서도 알게 됐다. 그리고 평소에 알지 못했지만 책에 소개되어 알게 된 명옥헌 역시 한번쯤 꼭 들르고 싶은 정원으로 꼽을 수 있겠다. 명옥헌에 가득한 배롱나무(목백일홍)가 자연경관과 장관을 이루어내는 모습이 무릉도원을 연상케 하며 도교의 선계요 이상향으로 볼 수 있다고 하니 배롱나무 꽃이 만발하는 어느 때 찾아가 그 속에 있게 되면 그 곳이 무릉도원이고 나 역시 신선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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